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남미 사랑’이라는 유명한 한인 민박집에 묶었다. 종직이가 숙소 위치를 검색했었는데, 하필 이사 가기 전 옛날 주소로 확인해서 택시비를 날리고 길을 헤매는 등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서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도시였기에 여유롭게 쉬면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서로 부딪혔다.
마침 토레스 델 파이네부터 일정이 겹쳤던 소정이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어 같이 둘러볼 곳을 정하자고 했다. 우리는 먼저 ‘엘 아테네오’(El ateneo)라는 유명한 서점에 들렀다.
과거의 오페라 공연장을 개조하여 서점으로 만든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손꼽힌다는 곳이었다. 카페로 개조된 중앙 무대에서는 느긋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멋진 옷을 빼입고 허세 가득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객석에는 관객을 대신해 수천 권의 책들이 책꽂이에 가지런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서점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소 지루해하는 우리에게 소정이는 생뚱맞게 공동묘지에 구경 가자고 했다. ‘우리 집안 조상님 성묘도 못 간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썩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기에 흔쾌히 동의하는 척 따라나섰다.
‘레콜레타‘는 아르헨티나에서 방귀 좀 뀌었던 사람들이 죽어서까지 그들의 가오를 살리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고인들의 비버리 힐즈였다. 지금도 그곳에 묻히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 매장지 가격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가격보다 높다고 한다.
인간은 정녕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걸까? 생전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최종 목표도 결국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세계 반대편에 있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주길 바라며 영원한 심연의 공간에서 통렬히 울부짖고 있는 듯했다.
다소 늦은 시각이라 몇 몇의 서로 손을 맞잡은 연인들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만이 다소 무심히 그들의 인생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잠깐 벤치에 앉아서 한 고인의 동판을 쳐다보았다. 세줄 조차 되지 않는 그의 삶에 대한 짧은 서사와 더불어 근엄한 표정의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순간 ‘왜 무덤의 대부분 조각들은 모두 노년기의 모습을 담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생의 순간에서 영원히 나를 대표할 상징이 반드시 생의 마지막 시절의 얼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쯤 저분도 ‘아, 나도 머리숱 많던 젊은 시절에는 여자 꽤나 울렸었지. ’라며 한창때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영정 사진은 내 삶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의 얼굴로 선택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그 시절이 오지 않았기를 바란다.
저녁에는 와인을 한잔 마시며 유명한 탱고 쇼 공연을 보았다. 긴 여행의 끝이 다가오니 마음이 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