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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이 울고 있다

대자연은 어디에?

by Bein

비스킷 & 그레이비

한국 사람들이 바쁜 아침에 된장국에 밥 말아먹듯, 미국 남부식 아침식사는 비스킷에 소시지 크럼블이 들어간 소시지 그레이비를 듬뿍 끼얹는다. 벌써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번의 사계를 보내고도(말로는 짧은 시간 동안 미국 남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서), 나는 여전히 이 흔한 남부의 아침 메뉴를 피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비스킷 위에 흘러내린 연한 회색빛 소스가… 딱히 먹음직스럽지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비스킷 위에 회색빛 그레이비가 흘러내리는 모습, 처음 보면 정말 “이게… 약간 개밥 같기도 하고, 뭔가 소화된 느낌(?) 나는 그런 색이다. (죄송합니다, 남부 사람들. 하지만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아마도?)


테네시에서 아침을

테네시는 남부의 심장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지리적으로는 무려 8개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교통, 문화의 중심을 잇는 길목이고 (켄터키,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아칸소, 미주리), 역사적으로는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트레일 오브 티어스”(눈물의 길) 같은 원주민 강제 이주의 아픈 흔적을 품은 땅이다. 또 테네시는 “Volunteer State”(자원봉사자의 주)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전쟁 때마다 자원병으로 앞장선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 내슈빌, 블루스와 록앤롤의 탄생지 멤피스(엘비스 프레슬리, B.B king 등), 테네시 대학교가 있는 대학 도시 녹스빌에 이어 차티누가는 테네시에서 인구면에선 네 번째 도시지만, 자연경관과 문화적 상징에서는 결코 다른 도시에 밀리지 않는다. ‘네 번째 도시’라는 건 그냥 인구 숫자일 뿐, 내 마음만은 테네시의 주인공이라고 우겨도 될 것 같다.


이번 채터누가, 테네시 여행에서는 남부의 혼이 담긴 비스킷 앤 그레이비를 한 접시 주문해야 남부의 심장의 맥박을 조금은 느끼지 않을까 싶다. 돼지기름에 밀가루와 우유를 풀고, 잘게 부순 소시지를 넣어 만든 회색빛 소스를 비스킷에 끼얹어 한 스푼 떠먹는 것. 그깟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 나에게는 남부의 어려운 숙제다.

편식쟁이의 결심과 핑계는 이만하고, 아침을 먹어야 한다. 구글 맵을 뒤적이다 숙소 근처 Maple Street Biscuit Company를 찾아냈다. 이름에서부터 달큰하고 끈적한 단풍나무 향이 난다. 구글맵에 후기도 많고, 이른 아침 시간에 오픈해서 일정이 바쁜 우리에게 적격이었다.


아침 7시 반, 매장은 이미 메이플 향을 머금은 베이컨 냄새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직원들은 무척 친절했고, 메뉴는 무척 복잡하다. 이제 주문만 하면 된다.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언제나 롤러코스터다. 잘 안 들리다가, 갑자기 들려 마음을 놓으면 예상 못한 질문이 날아온다.

아이들은 Little grace 와플과 Maple pepper bacon, Sunny side up eggs를 주문했다. 매장 안의 테이블에는 하나같이 그레이비소스를 끼얹은 비스킷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손님들은 소스에 촉촉하게 적신 비스킷을 평온하게 떠먹고 있었다.


나도 남부식 아침식사를 경험해 보겠다며 비스킷 앤 그레이비를 주문해보려 했으나, 메뉴판의 사진을 보니 또 망설여져 아이들과 같은 와플을 주문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겠다면서, 밥과 된장국을 안 먹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 비스킷 단독으로는 열 개라도 먹을 수 있답니다.


와플은 바삭하고, 촉촉했고, 메이플향을 잔뜩 머금은 베이컨도 달큰하고 짭짤했다. 숙소 조식 대신 시도한 로컬 맛집 탐험은 성공이었다. 다만, 비스킷 앤 소시지 그레이비는 귀국 전까지 꼭 한 번은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나 자신도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마주한 체로키의 땅

다음 목적지는 룩아웃 마운틴 산악 케이블 열차(Lookout Mountain Incline Railway). 전날 미리 티켓을 예약해 두었기에 우리는 순조롭게 아침 첫 차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승객용 철도 중 하나라는 명성답게, 최대 경사도는 무려 72.7%. 마치 절벽을 곧장 기어오르는 듯한 아찔함이 전해졌다. 룩아웃 마운틴 정상에 서니 광활한 풍경에 절로 “복 받은 나라구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땅의 역사를 알면 마음은 금세 무거워진다. 불과 150여 년 전, 이 산자락은 전쟁의 연기로 가득했다. 1863년, 북군과 남군이 맞붙었던 룩아웃 마운틴 전투. 짙은 안개와 구름 속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자,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이들은 마치 병사들이 구름 위에서 싸우는 듯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전투는 지금도 “구름 위의 전투(Battle Above the Clouds)”라 불린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경치를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자리지만, 그 시절 이곳은 병사들은 총검을 움켜쥐고 총성과 포연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또 다른 아픔이 겹쳐진다. 채터누가(Chattanooga)라는 이름은 원주민 언어로 ‘솟아오른 바위/산’을 뜻한다. 이 강변의 Ross’s Landing은 실제로 1838년 체로키 원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시작한 출발점 중 하나였다. 지금은 산책로와 기념비가 들어선 공원으로 변했지만, 그 당시에는 수천 명의 체로키족이 강을 건너 서쪽 오클라호마로 이동하기 위해 배에 올라 떠나야 했던 곳이다. 그 길이 바로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끝없는 여정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숨진 이 곳은 누군가에게는 눈물과 이별의 강가로 남아 있다.


룩아웃 마운틴은 그래서 단순한 경치가 아니다. 자연의 축복은 여전하지만, 그 이면에 전쟁의 포화와 원주민의 피눈물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들 대신 이 자연을 누리고 있는 자들은 이 땅을 꼭 아름답게 보전해야 하리라. 그래야만 자연의 축복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피전 포지 — 자연 위에 유흥을 짓다

테네시강과 룩아웃 마운틴을 뒤로하고 피전 포지(Pigeon Forge)로 향했다. 지명은 리틀 피전(Little Pigeon) 강과 아이작 러브가 세운 대장간(Forg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어보면 비둘기들이 평화롭게 모여드는 시골 마을을 상상했지만 실제 풍경은 비둘기 대신 현란한 상업적인 간판으로 가득했다. 피존 포지의 첫인상은 어린이들의 ‘리틀 라스베이거스’처럼 여겨졌다.

가수 돌리 파튼

피전 포지의 상징은 단연 달리우드(Dolleywood)다.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이 참여해 1986년에 문을 연 테마파크로 지역 최대 관광명소이자 고용의 축이다. 그녀는 스모키 지역의 문화, 음악, 삶을 기념하고 고향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이 테마파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달리우드는 자부심이자 여행의 필수 코스다. 인근에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정이라면 달리우드를 안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학교 현장 체험, 가족 여행의 정석 코스로 자리했다. 여태 안 가본 사람은 우리 같은 비주류 이방인 은따(?) 또는 초보 방문객일 뿐일 것이다.

달리우드. 출처, getty image

광고에선 “Dollywood! Love Every Momnet!” 라며 호들갑스럽게 떠들지만, 입장권 가격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꽤 사악한 가격으로 차라리 그 돈이면 플로리다에 있는 올랜도 유니버셜이나 디즈니랜드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굳건해졌다. 그렇지만 내가 머무르고 있는 헨더슨빌에서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니 시간과 비용면에서는 훨씬 저렴할 수 있겠다.

wax museum 입구 조형물

피존 포지 중심부에 들어오니 놀이공원, 미니골프, 밀랍인형, 유령의 집, 회전그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식당이 즐비하다. 게다가 아웃렛까지 있으니 이곳이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의 초입이 맞기나 한 건지 혹시 길을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구글맵을 다시 확인했다. 대자연의 나무와 산과 신선한 공기를 생각하며 찾아온 사람에겐 곤혹스러운 풍경이다. 정말이지 대낮인데도 번쩍번쩍 현란한 상업 간판에 눈이 아플 지경이다.


점심은 Mellow Mushroom에서 피자를 먹었다. 우리 모두 배가 무척 고파서 첫 조각은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두 조각째부터는 느끼했다. 피자에 진심인 미국인들은 1인 1 피자를 거뜬히 해치우지만, 치즈 러버가 아닌 우리 가족은 개인당 두 조각이면 족했다. 그래도 매장 밖 버섯 모양 의자는 매우 귀여웠다.

식사 후 타이타닉 박물관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티켓은 모두 솔드아웃이다. 그래서 피전 포지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올드 밀(Old Mill)에 들렀다. 1830년대에 세워진 오래된 방앗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곳은 지금은 관광 명소이자 쇼핑 단지이다. 기념품 가게와 아기자기한 소품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의 상징 같은 문샤인 위스키 매장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테네시 동부, 특히 스모키 마운틴 일대(개틀린버그·피전포지)는 문샤인의 본고장이다. 첩첩산중이라 숨어 술을 빚기 좋았고, 가난했던 농가들에게는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금주법 시대 달빛 아래 몰래 빚던 술이 이제는 당당히 관광 상품으로 진열되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선반 가득 진열된 술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냥 위스키만 있는 게 아니라 , 애플파이·피치·체리·시나몬 ·커피등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다양한 색깔과 맛의 술들이 줄지어 선 광경은 꽤 이색적이었다. 그때 작은 메이슨자에 든 위스키 한 병 하나쯤 사 와서 밤에 기념 삼아 홀짝였더라면 꽤 괜찮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대신 나는 레드페퍼젤리와 마그네틱을 들고 나왔다. ;;;;


피존 포지 근처 어딜 가나 사람들의 긴 줄의 행렬이 눈에 뜨인다. 전부 흥미롭지만 정신이 없는 풍경이다. 산이 우리를 부른다더니, 시끌시끌 관광객들의 등쌀에 ‘날 좀 내버려 둬~’ 하며 오히려 산이 울고 있는 것 같다.


개틀린버그 - 충격적인 인기

드디어 테네시주 동쪽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의 관문이라는 개틀린버그(Gatlinberg)에 도착했다. 이제 장엄한 자연을 만나는구나 기대했는데, 국립공원 앞마당이 이렇게 요란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미국적인 개틀린버그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끝판왕인 상업지구였다.

내 실망과는 달리 아이들은 젤리, 아이스크림, 솜사탕을 먹고,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과 오락실에서 신나게 놀며 거리를 꽉 채운 관광객들 무리에 섞여 거리를 떠돌았다. 친구들이 테네시에 자주 놀러 가는 이유가 바로 이곳 때문이었구나 싶다. 개틀린버그나 피전 포지로 놀러 온 인파를 보니 이곳의 충격적인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다.


스카이 파크

이대로 허무하게 테네시 여행을 끝내기 싫어 개틀린버그 스카이파크에 갔다.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잠깐 눈을 찔끔 감고 스카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정상에 있는 스카이 브리지를 건너고 싶었다. 하지만 스카이 리프트를 타는 순간부터 심장은 두 배로 뛰었다.


안전장치도 없는 듯한 허술한 리프트에 덜덜 떨며 올라갔고, 두 장난꾸러기 아들 녀석들은 앞에서 까르륵 거리며 웃어댔다. 흔들리는 리프트는 갑자기 산 중턱에서 중간에 멈춰 서기까지 했다. “미국은 안전에 철저할 거야”라는 내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

아찔한 스카이 리프트는 무사히 스카이 브리지 입구까지 데려다줬다. 스카이 브리지 위에서 내려다본 스모키 마운틴은 장관이다. '그레이트'하다. 겹겹이 쌓인 초록의 능선들, 안개처럼 흐르는 산자락, 깊고 조용한 숲을 바라보니 경외심이 느껴졌다. 비록 주변에는 여전히 유흥의 기운이 넘실거렸지만, 산은 묵묵히 서 있었다. 자연은 그 자리에, 아무 말 없이 있는 모습을 보니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한결 고요해졌다.



헨더슨빌, 마음속 고향

채터누가에서 시작하여 피전 포지와 개틀린버그를 거쳐 헨더슨빌로 되돌아오는 이번 테네시 여행은 미국에 대한 내 환상을 조금 걷어냈다. 미국은 자연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은 피전 포지와 개틀린버그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여행을 통해서 본 것은 자연 ‘보호’보다는 자연의 철저한 ‘활용’이었다.

집을 향하는 길목의 울창한 나무와 빽빽한 숲의 싱그러운 풍경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이번 여정에서 이상하게도 헨더슨빌이 자주 떠올랐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플랫락(Flat Rock)은 '자연의 품'에 폭 안겨 있는 마을이다. 그곳엔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 번쩍번쩍 네온사인 간판도 없고, 오락 시설도 없다. 새소리와 신선한 흙냄새가 배경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이 좋아졌다.


나는 화려한 겉모습과 요란한 말들 속에서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 그곳에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쉽게 긴장하고 불편해진다. 소박하고 솔직한 진심 속에서만 비로소 안심한다. 사람도, 자연도 꾸밈없는 그대로일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답다.

자연은 너그럽지만 동시에 단호하다. 무조건 모든 이를 품지 않는다. 스스로를 낮추고 조화를 이루려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만 진짜 자연의 편안함을 선물한다.


나도 그런 단호함을 배우고 싶다. 무례한 말과 불평, 끝없는 경쟁심 속에 오래 있으면, 내 마음은 금세 피로해지고 지쳐버린다. 날이 선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같이 날카로워져서, 함께 비난하며 도무지 낯선 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하게 흔들리지 않고 진짜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존중할 줄 알고, 절제 속에서 겸손을 잃지 않는 이들, 곁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사람과 머물고 싶다.


여전히 뿌리가 얕아 미풍에도 흔들리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나무 같지만, 언젠가는 뿌리를 깊게 내려 중심을 단단히 잡고 나답게 바로 설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 주고,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집에 돌아와 개틀린버그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사온 도넛과 마그네틱을 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드디어 이곳이 편안해졌음을 느꼈다. 잠시 머무르고 있는 곳일 뿐이지만, 자꾸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면 — 아마도 헨더슨빌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 고향이 된 건 아닐까.



기대했던 대자연을 끝내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당신에게, 클링먼스 돔(현재 공식 명칭은 Kuwohi)을 소개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는 역방향이라 차를 돌려 올라가 보지 못했고, 그래서 저에겐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페이지처럼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스모키 마운틴을 찾아 저 전망대 위에 서게 된다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문장을 그때서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Kuwohi (옛 Clingmans Dome)

https://maps.app.goo.gl/hJ1X5WujLfp6jjBe7?g_st=ipc

Kuwohi는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 경계에 걸쳐 있는 스모키 마운틴의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해발 2,025미터로, 미시시피강 동쪽에서도 손꼽히는 고봉이지요.


체로키 사람들은 이곳을 Kuwohi, “mulberry place(뽕나무의 땅)”라 불렀습니다. 오랫동안 Clingmans Dom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산은, 2024년 전통 체로키 명칭이 공식적으로 복원되어 이제 Kuwohi라 부릅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일곱 개 주가 발아래 펼쳐진다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구글맵 리뷰에서 본 어느 한국인 방문객의 짧은 한 줄 ― “첩첩산중.” 낯선 미국 산정을 표현한 한 이 단어가, 어쩌면 이 풍경을 가장 정확히 담아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짙은 안개는 춤추듯 산허리를 감싸고, 겹겹이 이어진 검푸른 능선이 "그레이트 스모키"라는 이름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줄 듯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놓쳤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은 이름 — 클링먼스 돔, 혹은 Kuwohi.

인근에 계신다면 꼭 한 번 그 위에 서 보시길 권합니다.


반드시 다시 와서, 스모키 마운틴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미처 닿지 못한 풍경이지만, 그 길을 숨 가쁘게 오르며 고요한 스모키 마운틴의 공기와 숲을 차곡차곡 눈에 담고,

“아, 이래서 첩첩산중이라 했구나” 하고 스스로 중얼거릴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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