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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도바 슈퍼스타

산마을 사람들 (5) 어느 은퇴 부부의 이야기

by Bein

처음 정착했던 친구집의 이웃에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나이는 친정엄마와 같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옷차림과 생각이 훨씬 젊어 보였다.


친구집에서 나와 새로운 집에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필요한 거 없어요?” 하시며 그릇과 숟가락, 믹서기, 스탠드, 의자까지 내어주셨다. 그 덕분에 새집에서 아이 생일 파티도 무사히 치르고, 손님 초대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로 바쁜 M 아주머니와 두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꽤 바쁜 우리 부부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집 근처 Season’s at Highland Lake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담당 서버가 오늘의 수프를 추천했고, 아주머니는 새우가 올라간 하우스 샐러드를, 남편은 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나는 연어에 스위트포테이토 프라이를 주문했다.

이곳의 채소는 모두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부드럽고 신선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먹어서일까,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 내내 아주머니는 헨더슨빌의 맛집과 가볼 만한 장소를 알려주셨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늘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그 마음이 참 고맙다.

M 아주머니의 남편은 은퇴한 미군 장교이시다. 은퇴 후에 몰도바의 아이들을 위해 교육과 의료 활동을 후원하는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계신다.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1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그냥 돌아가지 말고, 식당 앞 정원에서 산책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헨더슨빌에 있는 동안 여러 경험을 해보세요.” 하고 다정한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아주머니의 제안대로 그네를 타고, 숯불 앞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평화롭고, 어찌 보면 지루하기도 했던 이곳의 생활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영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싶어 한국 사람들을 피하듯 시골 마을을 왔다고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가장 마음이 편한 순간은 같은 한국인과 함께 있을 때였다.
타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낯선 타인이 아닌 ‘우리’가 된다.


일라이의 초대

ESL 수업에서 같은 반인 일라이가 자주 “우리 집에도 한 번 와요. 아이들이랑 닭도 보고, 허스키도 봐야죠.” 하고 말했다. 드디어 주말에 약속을 잡고 그의 보금자리를 방문하게 됐다.

인상이 좋으신 일라이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얼굴 생김새며 웃는 눈까지, 일라이와 판박이였다.


잠시 후 일라이가 아이들과 함께 들어왔다.
“치킨을 보여줄게!”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닭장으로 향했다.
닭들이 몇 마리나 될까? 궁금해서 닭장을 들여다보니, 스무 마리는 넘는 것 같다.


닭 먹이를 주는 일라이의 손길이 정성스러웠다. 아이들이 꾸민 놀이 공간, 온실, 강아지들의 공간을 둘러보니 삶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아도 그 안엔 행복이 가득했다.


이민자로 살며 힘든 순간이 많을 텐데도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들의 모습에서 ‘사는 법’ 다시 돌아보았다.


일라이는 우버 기사이다. 먼저 미국에 와 있던 큰형이 운영하는 애틀랜타 목재소에서 2년간 소처럼 일하다 너무 힘들어서 나왔다고 한다. 그때 배운 기술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여러 곳을 직접 만들고 수리도 할 수 있으니 모든 배움은 언젠가는 쓸데가 있는 것 같다. 일리이가 형의 목재소에서 나오고 얼마 안 되어 고국에 있는 아내를 미국으로 불렀고, 막내이지만 일라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아내 밀라는 고국에서 어린이 교사로 일했다. 지금은 약국에서 일하며, 틈틈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노인 건강과 복지를 공부 중이다.
“같은 일을 해도 학위가 있으면 더 나은 대우를 받잖아요.”
그녀의 눈빛엔 열정이 가득했다.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내가 가져간 오이김치에 흥미를 보이며 발효음식 이야기를 유쾌하게 이어갔다.


일라이의 어머니이자, 밀라의 시어머니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본다고 했다.
“집에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일도 하시네요?”
“며느리랑 같은 시간대에 일해서 같이 출퇴근해요.”

거의 영어를 못하시는데도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의 몫을 해내며 사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헤어지기 전 일라이의 어머니가 직접 구운 양배추빵을 싸주셨다. 빵이 정말 맛있어서 네 조각이나 먹었더니,
“집에 가서 또 먹으라”며 한 덩이를 포장해 주신 것이다.


대화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식탁 위에서 한 장의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Moldova World Children’s Fund – A Report to Friends.’
사진 속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M 아주머니의 남편, 레이 아저씨였다.

“이 분 혹시 레이 웨스트?”
내 질문에 일라이가 반갑게 웃었다.
“맞아요. 우리도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은퇴 후에,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 인생을, 한 가족의 삶을 바꾸는 결심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꼭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


며칠 뒤, 미아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트밀 쿠키를 구웠어요. 아이들 주려고요. 다리가 좀 아파서 미안하지만, 가지러 와줄래요?”

쿠키 향이 은은한 거실에서, 드디어 레이 아저씨를 정식으로 만났다. 동네를 오며 가며 짤막한 스몰토크는 했지만 차분히 앉아서 롱토크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문에서 본 그 미소 그대로,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상이었다.


Q. 몰도바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레이: 몰도바에 파견됐을 때, 너무 가난한 마을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흙길을 걷고 있었어요.

돌아와서도 그 눈빛이 계속 마음에 남았죠. 그래서 1999년에 Moldova World Children’s Fund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엔 작은 모금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여러 곳에서 후원자들이 함께해 주고 있습니다.


Q. 요즘에도 현지와 연결되어 있나요?
레이: 물론이죠. 지난 25년간 ‘Fortuna Family Home’을 지원해 왔어요. 아이들이 자라서 고아원을 떠날 때,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학이나 기술학교 진학을 돕죠. 우리 목표는 간단해요. “아이들이 도움받는 존재로만 남지 않게 하는 것.” 입니다.


Q. 아내분도 늘 함께하시죠?
M : 네. 남편이 몰도바에 있을 땐 저는 미국에서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써요. 쿠키를 굽는 일도 그중 하나예요. 단순한 제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죠.


Q. 이 일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요?
레이: 사람은 결국,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의미가 생깁니다.
은퇴했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해져요 —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Q. 가족이 필요할 때 곁에 없을 때도 많았다고요.
레이: 네. 그게 늘 마음에 남아요.
한 번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작 저는 몰도바에 있었죠. 정작 내 아이들이 아빠가 필요한 순간에는 같이 없었죠. 그때 한참 울었습니다.

내 가족이 희생한 만큼,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길 바랄 뿐이에요.


Q. 아주머니는 그런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M : 미울 때도 있었죠.
아들 둘을 거의 혼자 키워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아이들을 돕는 일은 결국 우리 가족이 함께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죠.
한인회 통역 봉사, 저소득 어르신 점심 배식, 교회 봉사까지.
다리가 아파도 멈출 수 없어요.
몸이 불편해도 마음이 멈추면 더 아프니까요.


Q. 재단 대표로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레이: 이제는 젊은 세대가 이 일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재단은 더 이상 ‘내 이름의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연결’이 되어야 해요.
앞으로는 현지 청년들을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꾸준히 Moldova Children’s Week를 개최하려 합니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이런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면 좋겠네요.
단 한 사람의 관심이 한 나라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지구촌 이웃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레이: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선한 마음은 어디서든 통합니다.
M: 그리고 사랑은 꼭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동네, 이 거리, 이웃 한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짧은 대화였지만, 그날 나눈 대화가 오래도록 한편에 묵직하게 남았다.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바꾸는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손끝에서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아주머니께 크리스마스 꽂다발과 편지를 전했다.
맛있는 김치가 생기면 늘 우리를 떠올려 주고,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묻던 M 아주머니,
타국에서 우리의 안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역 봉사에 늘 앞장서는 아주머니, 몰도바 어린이재단을 이끄는 레이 아저씨
진심으로 남을 위해 사는 두 분, 항상 건강하세요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헨더슨빌의 겨울 하늘은 유난히 맑고 고요했다.
멀리서 보이는 교회 십자가, 그리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이 순간의 평화로움.
이국의 낯선 땅에서 만난 부부 덕분에 나는 ‘사는 일’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 Moldova World Children’s Fund

Since 1999 — Supporting education, healthcare, and community rebuilding for children in Moldova.


* Website: www.moldovawcf.org

* info@moldovawc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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