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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오계(五戒) 고찰 : 취하지 말라

by 힙스터보살


불가에서는 세상에 이렇다 할 것이 없다고 (= 無常苦無我, 무상고무아)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라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한자로 쓰면 오계(五戒)라고 한다. 오계는 한국인 대부분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내용이다.


- 불살생(不殺生) :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 불투도(不偸盜) : 남의 물건을 빼앗지 말라

- 불사음(不邪淫) : 성추행하지 말라

- 불망어(不妄語) : 거짓말 하지 말라

- 불음주(不飮酒) : 술먹고 주정부리지 말라


한자어로 쓰면 그럴듯한데, 와닿는 건 한국어로 풀어쓸 때이다. 한자어로 쓰면 본래 의도한 그 뜻이 온전히 살아있지 못하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홍익인간(弘益人間)'이 그렇고 '오계(五戒)'가 그런 것같다. 여하튼 위의 계율은 굳이 불가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하지 말라는 행동들을 모아놨지 싶다. 그 중에서도 나는 '술먹고 취하지 말라'에 대해 요즘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공부] refrain from R.Ving : R.Ving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자제한다, 공손하게 권장할 때 쓰는 표현


나와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 심지어 남편은 거의 매일 반주를 하신다.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뭐라고 한 적도 많지만, 이제는 그냥 내가 술을 몇 병 구비 해 둔다. 힘든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한 잔 하는 것마저 막는다면 집이 오죽이나 갑갑하랴 싶고. 술 마시고 기분 좋아진 남편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의 소소한 기쁨이기도 하다. 그는 취하더라도 과한 행동이 없다. 단지 얼굴이 좀 불그스레 해질 뿐이고 행동이 굼뗘진다. 꾸준한 음주가 건강에 그렇게 안좋다 하니 지병을 얻는 두려움이 생기지만, 그에게는 당장 현실이 중요한가보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한다. 적당히 ㅊ하 한 병 정도를 마신다. 사실 술을 안 마셔도 술마신 것마냥 흥겹게 놀 줄 알지만, 술을 핑계로 흥겨워지는 것도 있다. 긴장된 하루를 내려놓고 약간 흥청망청 분위기를 즐기는 게 싫지 않다. 하지만 술을 마신 날은 벽에 깨서 잠을 깊게 들지 못한 일을 자주 겪는 바, 되도록이면 술을 안 마시려고 한다. 따로 술 사오는 것도 귀찮고, 안 마셔도 잘 노는데, 굳이 마셔서 깊게 자지 못하기까지 하면 마시는 게 손해인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불음주(하지마不 술먹기飮酒 = 술 마시지 마)'가 단지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 뿐인 걸까?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역시나 한자어를 써서 표현하면 압축되고 생략되는 표현이 많아 조금만 신경쓰지 않아도 풀이에 왜곡이 생기는 것같다. (그놈의 손실압축률 때문에 영어나 한국어를 병기하는 게 다소 귀찮음이 사실이다. 오롯이 한국어로만 쓰는 말이 많았으면....) 한국어로 풀어쓰면 술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취해서 주정부리지 말라'가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술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에 취해서 살지 않던가? 음악에 취해서 내가 듣는 음악이 최고라고 주정부리기도 하고, 국뽕에 취해서 우리나라만이 최고라고 주정부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분야에 취해서 상대방이 관심이 있든 없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주절거리기도 한다. 특정 운동에 심취해서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무시하고 만용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술이 문제인 걸까, 취하는 게 문제인 걸까?


버팔로 트레이스 맛있던데! 혹시 괜츈한 서양 술 추천 해 주시렵니까?


즐기되 취하지 않으려면 절제함이 필요하다, 우리 남편처럼. 울 남편은 반주를 하더라도 본인 주량이라고 생각하는 그 수준 이상은 앵간해선 먹지 않는다. 그래서 소주병에 한 2cm 정도 소주가 남은 채로 소주병이 냉장고로 회귀하는 때도 간혹 있다. 그의 놀라운 자제심에 리스펙. (역시 우리 남편이야....!) 그의 행동을 본받아야 할터인데 나는 '나는 어느 정도 술을 마실 줄 알지'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뜻하지 않는 과음을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치면 즐기는 건 즐기는 대로 누리되 과음에 도달하지 위해서라도 '나 자신'이란 변수가 중요 해 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일반적인 범위, 내가 어떤 대상에 도취되어 있어도 자제심이 온전히 발휘되는 경계점에 대한 인식, 이 모든 것을 감시하는 메타인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취하여 주정부리지 말라'는 계율은 쉽게 깨져버릴 수 있다. 돌고돌아 '현재에 깨어있기'는 답을 찾는다.


아울러, 즐기되 취하지 않는 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더 잘 알 수 있겠다 싶더라. 각자 인생의 지향점이 있으시겠으나,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지향점은 '온전한 나에 다다르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삶은 '나 자신 사용설명서'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취하여 주정부리지 말라, 그러기 위해 항상 현재에 깨어있으라'는 나를 제약하는 계율이 아니라 나를 시험하는 기준점이자 내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같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계율에 갖힌 수행자가 아니다. 계율을 이용하는 수행자이다. 깨달은 자는 자유롭다는데, 오늘은 내가 쫌 자유로운 자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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