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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에세이] 아이는 놀아야 한다

by 힙스터보살


아이가 태어나면 굉장히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갓난쟁이 아이에게 2시간에 한 번 꼴로 수유를 하고, 응가 기저귀를 갈아입히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난 다음에... 그로 인해 생겨나는 빨래와 설거지를 해결하고 난 다음에... 아이가 잠들지 않아있는 그 시간엔? 물론 아기는 바라만 봐도 미소짓게하는 놀라운 대상이지만, 그런 것도 하루이틀이지. 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뭐라도 엄마랑 상호작용을 해야할 시기가 오면,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갖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 오죽했으면 돌도 안 지난 아이 앞에서 야바위를 보여줬겠냐고...ㅋㅋㅋ;; (겨우 짜낸 아이디어가 이거였다 -_-)


그런 아이와 복닥복닥 지내다가 이제 같이 지낸 시간이 거진 40개월이다. 이미 TV보기는 애저녁에 오픈했고... 하필 요즘 내가 코딩수업 교안을 만드느라 바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바빠서 아이에게 TV를 보여주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만 노났지 뭐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랑 꽤 잘 놀아주는 엄마이다. 일단 놀기 시작하면 신나게 놀 줄 아는 엄마랄까? 그래서인지 아이 어린이집 친구들도 날 되게 좋아한다. 멀리서 날 보면 도도도도 달려와서 다리에 착 붙어서는 "○○엄마!"라고 외치며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아이도 있다. (제가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름 쫌 스타성이 있지 말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도 그럴 것이 내 나름대로는 아이들이랑 티키타카를 쫌 한다. 아이가 예상외 행동을 하더라도 '오~ 이건 뭐야?'하고 반응도 잘 해주고, 뭔가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 나랑 있으면 심심할 리가 없지! (문제는 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 있고 체력이 방전된 상태에서 애들을 만나니까 저전력 모드로 있다가 반응성이 떨어지는 것 뿐 ^_ㅠ...)



이런 멋진 엄마를 둔 아들램은 요즘 벌레잡이 식물에 폭 빠져있다. 유투브에서 벌레잡이 식물 노래랑 영상을 홀리듯이 보고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가 '벌레잡이 식물송'인데, 아이들용 컨텐츠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 (리듬감 하며 가사하며~ 이것이 K-컬쳐라니깐? ㅋㅋㅋㅋ) 브런치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공간이라 아들램의 초상권을 고려하여 공개를 못해서 그렇지, 그가 벌레잡이 식물송에 맞춰 춤추는 모습은 정말! 너무 신명난다 ㅋㅋㅋㅋㅋㅋ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난 누군가에게 뭔가 알려주는 걸 너무도 좋아한다. 그냥 단순히 설명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지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있다. (그래서 강사직으로 되돌아간다는 걸 매우 즐겁게 생각한다!) 이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벌레잡이 식물을 인체에 비유하고, 소화의 과정과 배변활동을 한큐에 설명하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나름 효과가 아주 쏠쏠했다.


"○○ 입은 파리지옥이지? 아~~ 벌리고 있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입을 콱! 닫지?" (이 때부터 이미 신나한다) "여기 밑에 파리지옥도 입을 아~~ 벌리고 있다가 여기 이 털에 파리가 닫으면 입을 콱! 닫네? 아 근데 우리는 이빨이 있찌만 파리지옥은 이빨이 없어. 우리는 으적으적 씹은다음 꿀~꺽! 삼키지만 파리지옥은 입 안에서 파리를 녹여먹지~"


(한 템포 쉬고) "○○가 으적으적 씹은 음식을 꿀꺽~ 삼기며어어언? 이제 음식이 통발에 들어간단 말이야?" (아이는 꺄르르르~~ 아이는 통발을 제일 좋아함ㅋ) "통발 안에는 물이 차있어! ○○ 몸 안에 있는 통발에도 물이 차 있네? 이 물에 음식이, 벌레가 빠지면 스르르르르륵~ 녹는단 말이지~~" (이 때 마치 배우와 같은 연기력이 좀 필요함ㅋㅋ) "○○ 위장에서 음식물이 장을 돌면서 영양소도 쏙쏙쏙! 물도 쑥쑥쑥! 빠지며으언?? 무엇이 되~~~게?" (아이가 웃으며) "똥!" (감탄하면서) "그러취 맞았어~~!!!!"

(이 때 배변훈련 연속기 들어갑니다) "응가는 변기에다가 끄으으응~~ 끄으으응~~ 하고 누는거야! 엄마가 선물로 간식을 주겠지?" (아이 눈이 빛난다) "응!!!" "간식을 손으로 착! 잡으면??? 그것은 바로 끈끈이 주걱처럼 음식을 착!!! 붙이는 거랑 비슷한 거라규~~ 끈끈이 주걱은 손가락이 없으니까 끈끈한 액체로 벌레를 붙이고, 우리는 손가락이 있어서 물건을 쥘 수 있는 게 다른 거지!!"


내가 쓰면서도 너무 재미진데?ㅋㅋㅋㅋㅋ 내용만 보자면 너무도 학습적이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마음이 1%도 안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마음의 99%는 이 아이와 벌레잡이 식물로 놀고싶다는 마음이었다. 저 그림 한 장을 그리고 아침시간이 말 그대로 '신나신나'였다. 시간도 쑥쑥 잘가고 ^^


이것이 아침에 아들래미랑 함께 즐겼던 벌레잡이 식물에 비유한 인체의 소화과정!


아이는 놀아야 한다. 100%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는 데에는 정말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노는 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노는 거다. 점토를 조물조물하는 것도 노는 거고, 엄마랑 벌레잡이 식물에 빚대어 소화기관을 아는 것도 노는 거다. 논다는 것은 논다는 것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즐거운 마음과 함께 뭔가를 익히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추구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e)'이기도 하지만, 행위를 놀이로 즐길 줄 아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기도 하다.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주창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인류문명의 발생과 발전은 놀이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아이를 키우다보면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든다.


물론 아이 교육에 열정적인 한국엄마들이 놀이가 왜 중요한지는 이미 알고 있을터다. 때문에 맘톡방에 뜨는 핫딜 중에는 하나같이 아이가 놀이하듯이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 도서가 많다. 세이펜만 해도 그렇다. 펜으로 콕 찍으면 소리가 난다니! 이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또 어디있으리? (진짜 K-에듀 자랑스럽다 증말~~!)


하지만 여기서 나는 살짝 다른 생각이 든다. 놀이라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도입부 정도야 '어 이거 뭐야? 우리 이거 해볼까?'라면서 넛지(Nudge)를 동원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정도는 할 수 있지. 하지만 엄마가 '이거는 꼭 알려줘야 해'라는 정신무장을 하고 '△△야~~ 여기 봐봐 여기! 이런 게 있네??'라면서 아이가 엄마가 전달해주고픈 컨텐츠로 드라이브 하려는 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그게 놀이처럼 보이는 형식을 갖췄을지언정 말이다. 때문에 '놀이같이 가르치는 학원'은 이미 놀이가 아닐 확률이 대단히 크다. 다행히도 아이가 좋아해서 몰입 해주면 감사한 건데, 그렇지 않으면 좋으나 싫으나 아이는 학원에 끌려가는 학습을 하게될 뿐이다. 뭐 그렇게라도 지식을 한 스푼 더 넣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내 아이는 좋든 싫든 집단학습에 내던져질 확률이 대단히 크다. 그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니까. 물론 그러한 경험도 소중하다. 무엇인가를 학습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여 무지를 이겨내는 인고의 시간은 인생에 있어 대단히 소중한 경험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뭔가를 알기 위해 탐구하고 도전하고 뛰어드는 것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적절한 학습 균형점을 이루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때문에 그의 어린시절만이라도 충분히 잘 놀고 원하는만큼 탐구하게 해주고 싶다. 그 행복이 또한 나의 행복일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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