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마다 비전을 홈페이지에 적어두지만, 걔중엔 보여주기식 비전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없으면 안 되겠고, 그럴싸 해 보이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홈페이지에 명시된 비전을 보면 뜬금포같기도 하고 '뭐 어쩌라고?'싶은 비전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은 중요하다. 예전에 전략경영 수업을 들으면서 비전이 왜 중요한지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비전이 있는 기업이 비전이 없는 기업의 기업보다 돈을 잘 번다고 하셨다. (시간이 오래되서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는다. ^^; 여튼 좋댔다ㅋ) 비전이 경제적 가치라는 측면에서만 의미있겠냐마는, 비전의 중요성은 충분히 전달되었지 싶다.
몇 달 전에 유튜브에서 비전과 관련된 재미있는 영상을 봤다. 영상에 등장하는 분은 다수의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 해 보신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먼저 일했었고, 미국에 건너가서도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셨다. 한국에서 일할 때에는 여느 한국인 회사원처럼 비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이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면서 희한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회사는 주기적으로 '비전회의'를 진행했다. 스타트업은 자원이 부족한지라 특유의 기동성을 바탕으로 재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고객 분석하고 제품 리뉴얼해서 커뮤니케이션에 공들이는 게 중요한 이와중에 '비전'을 회의한다고?
의아함을 이겨내지 못했던 그 분은 어느 날, 동료에게 비전회의는 왜 하냐고 물어봤다. 동료의 답변은 근본 그 잡채였다 :
"우리는 대기업에 비해 자금도 딸리고 인프라도 딸려. 우리가 그들에 비해 차별화할 수 거의 유일한 게 바로 '비전'이야."
영상의 주인공 분이 동료의 답변을 말씀하시는 그 순간 눈이 빛났다. (물론 내 착각일 수 있다.) 아마도 저 말을 들었던 당시에 머릿속에 불이 켜진 듯한 순간이 재생되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영상을 보던 내 머릿속에서도 불이 켜지는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비전에 대해 내세우고 싶은 또 다른 예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홍익인간'이다. 대개 어느 문화권이든 건국신화는 비슷비슷한 경향이 있다. 어떤 대단히 권위있는 신적 존재와 연관된 자가 이러저러한 스토리를 거쳐 나라의 대장이 됐다는 식. 단군신화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천신의 후손이면서 자연현상을 조정하는 쩌는 동료들(풍백, 우사, 운사)이 있고, 곰이 사람이 될 수 있는 변신레시피를 제공할 줄 아는 환웅만 봐도 ㅎㅎㅎㅎ
하지만 '홍익인간'은 다르다. 홍익인간으로 명명지어진 고(古)조선의 국시(國是)는 고조선이 세워진 기점 전후로 성립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 해 봤을 때 파격적이리만큼 뛰어남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잘 세운 비전 하나 열 신화 안 부럽다.
그러고 보면 고(古)조선 단군왕검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메시지나, 조선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내 이런 백성을 어여삐 여겨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다'는 표현이나 지향점이 비슷해보인다. (나만 그리 보이는 걸까? 심지어 둘 다 '조선' 출신이네? 내가 만일 단군왕검이었다면 후손 이도(李祹) 군을 보고 때단히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은데!)
나는 어려서 장래희망이 딱히 있던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장래희망을 내라고 했는데, 마침 그 때 당시에 한일어업협정을 보고 '무슨 협정을 저따위로 했어? 내가 외교관이면 절대 저런 결과따윈 내지 않을거야!!!!'라고 흥분하여 잠시 외교관이 되보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반면에 우리 부모님의 내 장래희망은 3년 내내 선생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선생님이 되려는 준비중이네? 캬~ 역시 울 엄마아빠야 ㅋㅋㅋㅋ)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되보고 싶었던 게 있다. 윤리책에서 접하고 마음에 들어서 비전으로 세웠지 싶다. 그건 바로 '지덕체를 갖춘 인간'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 낳고나서 한창 독서모임도 이끌고(知), 힘든 시기를 거쳐 종교도 생기고 그 때 갈고닦은 정신을 육아에 반영하기도 하고(德), 애 어린이집 보낸 시기부터는 지금까지 수영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體). (이렇게만 보면 갓생을 살고 있어보이는데? ㅋㅋㅋ) 내 포지션이 가정주부라서 소비 중심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뿐이지 삶의 만족도는 높다. 돈 벌어다주는 남편에게 감사 ^^
아직은 지덕체(知德體)를 갖춘 '된사람'에 도달하기까지는 한참 먼 것같다. 그래도 추구 해 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온 거 아닐까. 소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가 볼테다. 마침 내가 소띠이기도 하니까, 완전 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