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차 교육과정의 가장 마지막 세대 사람이다. 때문에 나는 심지어 고등학교 때 교련이라는 과목도 배웠다. 교련이라는 과목 덕분에 남자분들은 학생 때 제식훈련을 해봤고, 여자분들은 삼각건이나 붕대로 응급처치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고 보니 학교 운동장이나 군대 연병장이나 생긴 것이 비슷하다던데. 6.25 이후에 분단을 겪는 나라의 한 면이 교육에 녹아져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슬프기도 하다.
다시 6차 교육과정으로 돌아와서, 이 때까지만 해도 '한문'이라는 과목이 공식적으로 있었다. 내가 알기로 다음 교육과정부터 빠졌다고 한다. 한국어의 80%는 한자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한문교육이 사라짐으로 인해 한국인의 독해력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책을 잘 못 읽는 아이가 되기 싫어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마법 천자문>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하튼 한국사람들 교육열은 대단해....ㅋㅋㅋ 이런 열정은 인도인, 유대인 못지 않아....)
나는 한문 과목을 좋아했다. 엄마가 모아주신 상장집에 보면 한문으로 성정 우수상도 받았다. 한자가 그림같이 생겨서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한자의 조어원리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한자는 글자의 종류를 6가지로 나눈다. 이를 육서(六書)라고 한다. 육서를 나눈 기준은 그 글자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냐이다. 사물의 글자 그대로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글자는 상형(象形)이라고 하고 불 화(火), 나무 목(木), 사람 인(人), 해 일(日), 달 월(月)같은 글자가 상형에 속한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든 글자는 지사(指事)라고 하는데, 한 일(一), 위 상(上), 아래 하(下), 근본 본(本) 자가 여기에 속한다.
다 설명하기는 번거로우니 나머지는 직접 찾아보시고. 내가 흥미를 느꼈던 조어방식은 '회의(會意)'이다. 회의(會意)의 會는 '모으다'라는 뜻이고, 意는 '뜻'이라는 건데. 회의자는 말 그대로 뜻을 모아서 만드는 글자이다. 예를 들어 쉴 휴(休)자는 좌변에 사람 인(人)이 있고, 우측에 나무 목(木)자가 있다. '나무 옆에 있는 사람'이 곧 '쉰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사내 남(男)자도 그렇다. 밭(田)을 가는 힘(力)을 가진 사람은 '사내'라고 불릴 수 있는 거다. 그 아이디어가 너무 귀엽지 않은가? (참고로 논 답(畓)은 심지어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밭(田)에 물(水)을 대서 만든 게 논인데, 그 글자를 아예 한국인이 만들어버린 것. 그러고 보니까 최근 기사중에 가장 오래된 볍씨가 한국에서 나왔다지? 논 답(畓)자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여....)
여하튼 이런 재미진 구석 때문에 나는 한자를 좋아했다. 지금도 처음 보는 한자, 그 중에서도 번체자를 요모조모 뜯어보면 재미있는 구조가 보여서 좋다. 간체자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생략되는 거 같아서 아쉽다. 나라 국(國)은 성곽 안에 이러저러한 게 옥신각신 들어있는 모양새라 나라다운데, 이 글자가 쓰기 번거로워서 일본 사람들이 쓰라고 한 간체자 국(国)은 본래 '나라 국' 자가 가진 매력을 십분 잃어버린 것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진 한자라도 나는 한자가 참으로 싫어질 때가 있다. 그것은 한자표현 특유의 생략성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이 그렇다. 한자로 쓴 글자의 뜻만 나열하면 '넓은+좋은+인간'이다. 하지만 한글로 표현하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이다. '넓은 좋은 인간'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의 간격이 너무 크지 않나? '격물치지(格物致知)'도 그렇다. 한자 뜻을 나열하면 '사물을 탐구+앎에 이름'이다. 대강은 어떤 뜻인지는 알겠지만 격물치지라는 말이 핵심을 건드린다는 감이 안선다. 하지만 한국어로 풀어 써보자.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궁극적인 앎에 도달하는 것'. 이게 제대로 된 해석이지.
한자어의 이러한 특징이 어쩌면, 중국인 특유의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 빼고는 모두 생략해야 하는 그들의 언어구조상 주변을 덜 신경쓰는 사고방식이 어쩌면 좀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인들이 과학분야에 집중하면서 윤리분야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기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뜻의 표현이 애매하다보니 상황을 지 멋대로 해석하는 일도 잦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 쓰는 언어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이 글이 중국을 비하하고 한자를 비하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쓴 글은 아니다. 한자어는 분명히 내가 애정하는 글자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한자어가 갖는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쓰임도 제대로 갖출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어떤 기준에서는 한국어가 한자어가 가진 특징에 비해 우월하게 쓸 수 있는 면도 분명히 있다. 한국이 작은 나라 대비 과학강국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는데, 한국어가 갖는 서술의 명확함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내 스스로는 짐작 해 본다.
나는 언어를 꽤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국어도 좋고 영어도 좋고 한자어도 좋다. 영어 단어를 배우면서 어원을 근간으로 단어외우기를 하는 게 그렇게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언어가 담아내는 인간의 사고도 흥미롭고, 언어가 제약하는 인간의 사고도 흥미롭다. 이 두 언어관이 서로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둘 다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모순적여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자연스럽다. 마치 양자가 입자이자 파동으로 존재하는 것이 모순적여 보이면서도 자연스럽듯이.
언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심리학이든 어떤 분야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렇게도 즐겁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알게 된 점과 느낀 점을 글로 빚어내는 건 더더욱 즐겁다. 그래서 내가 글쓰기를 놓지 못하겠다. 평생 이렇게 재미진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