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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평등?

by 힙스터보살


나도 여자지만 페미니즘이 수용이 안되는 지점이 있다. 왜 굳이 여자를 '특별취급'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여자 입장에서 특혜받는 게 싫은 건 아니다. (여성전용 주차장 조으다! 근데 몇몇 남자들도 여성전용 주차장 좋아하더라? ㅎㅎ)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성만 특혜를 줘야한다는 식으로 간다면 남자들 기분은 어떨까? 여자가 소중한 만큼 남자도 소중하고, 남자가 소중한 만큼 여자도 소중하다. 그리고 여자에게 치우쳐진 특혜가 오래갈 것이라 보나? 상대편 성별에 대한 반목만 늘어나지. 평등은 여자라서 누리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시절은 분명히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받던 시절 말이다. 아침에 택시 탔을 때 택시기사가 안경잽이(안경 쓴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면 하루가 재수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딱 그 수준처럼 여자를 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들이 식사를 하는 메인밥상을 차지하면 여자들은 한켠에 작은 소반을 두고 밥을 먹는 게 당연한 처사였다. 친족 통틀어 최고참 장녀(!)였던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사촌 남동생과 똑같은 세뱃돈을 받았고, 내 여동생이 제일 적은 세뱃돈을 받아야 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자로서 2등 인간 취급당했을 때 당사자가 느끼는 설움과 불쾌감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때문에 요즘 젊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역차별로 인한 불만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잘 생각 해 보시라. 그대들의 엄마, 이모는 지금 당신이 받는 차별보다 대놓고 차별을 받던 세대였다. 그게 그냥 당연했고 당사자가 차별에 수그리지 않으면 지적받는 시대였다. 자신은 불쌍하고 이 시대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역지사지하여 상대방을 바라보는 정도의 아량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가 됐든 남자가 됐든 남녀가 교합이 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건만, 하는 짓은 어디 혼자 태어난 것처럼 굴면 곤란하다.


2등 인간 취급받는 거, 그거 상당히 불쾌해요. 그렇다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동성애자든 평등은 이런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냥 다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고 갈구는 것도 그냥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시키는 것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하는 것이다. 일전에 차별금지법과 함께 언급했던 웹툰 무차별 강팀장에서 처럼, 그 사람이 가진 장애나 차별 성적지향 따위는 무시하고 오로지 그가 해내야 하는 프로젝트에 적합하냐/마냐만 가지고 차별대우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플한가. 이렇게 하면 누군가를 차별대우하는 이유가 명백해질테니 그 외의 조건들로 딴지를 걸 이유조차 사라진다.


이미 그런 시도는 시작되고 있는 것같다. 내가 일전에 유튜브에서 장애인 스탠드업 코메디언을 접했다. 처음 딱 봤을 땐 내가 흔히 보는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아니라서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함께 나온 일반인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그를 대중에 소개하고 서로 장난을 쳐서 금방 마음이 편해졌다.


비장애인 코메디언이 한껏 장애관련 이야길 했다. 꽤 의미있는 내용이였다. 한참 이야길 듣던 장애인 코메디언은 갑자기 그만하라고 하더라. 비장애인 스탠드업 코메디언이 조심스럽게 '왜 그만하라는 거야? 내가 좀 지나쳤어?'라고 물으니까, '아니, 차별이 그리웠어'라는 드립을 치는 게 일품이더라. 이게 진짜 장애인 평등 아닐까? 장애인인 본인이 장애 코메디를 하겠다는데 그걸 막는 것이 과연 평등한 걸까?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도 그냥 소수자인 것 뿐이다. 물론 이 사회의 다수가 이성애자이고 사실 생물학적으도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다수가 이성애자 조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소수자가 인류 역사부터 동물세계까지 없던 것도 아니다. 그들이 다수가 아니다 뿐 꾸준히 존재했고 심지어 그 명맥조차 짧지 않다. 이미 사장된 기술이나 직업 등도 많은데 이만하면 경쟁력(?)이 있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정도 인정도 하고,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든가 진급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세상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성소수자들을 특별히 대하고 싶은 맘도 없다. 퀴어문화축제를 보면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축제'를 벌이는 형식을 갖추는 건 얼마든지 낼 수 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들의 축제의 목적 대비 축제 진행방식이 너무 일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기들끼리 신나서 룰루랄라할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뭔가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그들의 의도와 진행내용을 세심하게 전달하지 않는 언론 탓일런지도 모르겠지만, 기사로 접하는 퀴어축제를 보면 나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뭐 어쩌란 거지'라는 생각부터 든다.


페미니즘도 그렇다. '여자라서 특별하다'라기보다 '여자도 똑같은 사람입니다'의 관점으로 접근하자면 많은 논란이 없어진다. 따지고 보면 여자도 군대에 못 갈 이유가 없다. 물론 군대 문화가 개판이라 굳이 가고 싶어하는 개인이 드물다는 게 제일 문제이긴 하지만, 달리보면 군대도 남성들이 누리는 특수한 권리 중 하나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여성도 힘이 세고 전략전술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보병으로도 못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 꼭 부사관, 장교만 뽑아 그래? 대학교 때 군대 갔다 온 선배들이 여자들은 군대 문화를 모른다며 자기네만 알아들을만한 뭔가를 말할 때 옆에서 듣자니 은근히 부아가 올라와서 그럴 거면 내가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필 또 그 때 당시 내가 운동도 못하진 않았기에 ㅎㅎ (근데 키가 작았지 -_-...)


인간으로서의 여자, 인간으로서의 남자가 이룩할 남녀평등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될까?


여자들이 여자들끼리만, 남자들이 남자들끼리만 살아갈 수는 없다. 예외로 아마존 여전사 부족을 든다지만 그녀들 역시 때가 되면 남자를 데리고 와서 생식을 한다고 한다. 좋든 싫든 여자와 남자는 인류 차원에서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의지해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게 지낼 수만은 없는 순간이 오기는 하지만, '의지?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쟤는 싫어' 식의 태도는 도대체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쓸모의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견뎌내야 하는 부정적인 댓가가 훨씬 더 크다면 굳이 존중까지는 안 해도 되지 싶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남녀 모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걸 디폴트로 삼는 게 심플하고 효과도 좋지 않나? 서로 다른 두 가지 무엇인가가 이질감 없이 융화하면 그 시너지는 얼마나 또 클런지. 그래서 이를 방해하는 갈라치기는 정말 말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불쾌하다. 갈라치기를 통해 본인의 표를 얻는 대신 이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얼마나 크던가? 갈라치기 하는 놈들은 세금 좀 더 내라.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사실 그 말도 맞다. 같은 체급에서 남자를 이기는 여자는 찾기 힘들정도로 여자는 남자만큼 근력이 좋지 않다. 수학(math) 성취도도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좋다는 통계가 있다. 그 결과가 사회문화적 영향인지 사회문화적인 변인을 제거해도 동일하게 나오는 결론인지는 통계 전문가의 심층진단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본연히 다른 것에 대해서 다르게 대하는 것 역시 정의로운 것이다. 그래서 법에서도 이런 유명한 말이 있지 않던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른 것을 다르게 접근하는 층위에서 이룩해내는 평등도 있는 법이다.


남자고 여자이기 이전에 둘 다 사람이다. 평등의 가치는 남자를 위해서 있는 것, 혹은 여자를 위해 있는 것에 앞서 '인간'을 위해 있는 거다. 투입물이나 산출물이나 나랑 다를 바가 없는 저 자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가면, 그 대상이 여자든 남자든 화가 나는 거다.


그런데 이것을 꼭 성별문제로만 바라보는 건 왜인 건지. 그러니까 통계도 성별위주로 분석하는 것같기도 하다. 물론 진짜 성별 문제일 수도 있기에 통계가 아주 의미가 없다 보진 않지만, 접근에 있어 '본질을 탐구한다'는 기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알고보니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투입을 한 거고, 혹은 일의 효율을 높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든가, 실제로 더 크고 가치있는 산출물을 냈다면 성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척 갈라치기를 한 그 자가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갈라치기 하는 놈들은 세금 좀 더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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