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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에세이] 악당엄마

by 힙스터보살


2025년 6월을 기준으로 내 아이는 41개월만큼 늙었(!?)다. (He's 41 months old....ㅋ)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 아이가 말하는 사고의 깊이가 한층 깊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걸 말로 잘 풀어내지 못하겠는데, 옆에서 같이 생활 해보면 그냥 알 수 있다. 이 아이가 인간으로서 어떤 질적 성장을 계속 겪고있다는 것. 순간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게 이토록 멋진 일이였을 줄이야. (엄마도 행복하셨죠?ㅎㅎㅎㅎ)


그래서 아들램이 더 이뻐보이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이틀 전부터 '엄마는 좋지 않아, 아빠만 좋아'라는 말을 듣고있다. 예전에는 '아빠 엄마 누가 더 좋아?'라고 물어보면 너무도 해맑게 '엄마 아빠 다~~ 좋아!'이랬는데! 우리 아들, 변했어....? ^_ㅠ.....! 물론 그만한 이유가 다 있지만....


맘같아선 우리 이쁜 아들램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그에게도 초상권이 있어 이런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ㅋㅋㅋㅋ


약간 섭섭하긴 한데, 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나는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아이 생활의 전반적인 훈육을 맡고 있다. 그런데 하필 요즘 수업을 듣기 시작하고 집안일이 너무 빡빡하게 굴러가는지라 피로한 상태일 때가 많다. 때문에 지치고 힘든 가운데 아이가 내 말을 잘 안들어주면 (예 : 이리 와, 밥 어서 먹자 등등의 상황) 한 세 번 참다가 폭발한다. '야, 빨리 와서 먹으랬지!!!!!!!!"

게다가 최근 배변훈련 심화기가 되어 이제는 아예 기저귀를 입지 않고 24시간 생활에 돌입했다. 이제 오줌은 웬만하면 실수하지 않는데, 문제는 응가이다. 그는 여전히 변기에 응가싸기를 심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는 팬티에다 응가를 싸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치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숨기지를 못하고 있다. 그 표정을 보는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자면... 그래, 결코 편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팬티에 응가를 싸는 것을 용인할 수도 없다. 그럼 배변'훈련'이 아니게 될테니.


반면에 아빠는 아이에게 꽤 관대하다. 남편은 통근을 하는데 편도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를 오간다. 하루에 세 시간을 길바닥에서 버리는 남편의 하루가 피곤함에 절여지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이런 시간소비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이랑 노는 시간이 적고, 아이가 놀자고 다가오더라도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취하려 침대에 누워만 있으려는 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때문에 아빠는 아이와 놀아줄 기회가 생기면 마음을 다해 친절하게 놀아주고 해달라는 대로도 잘 해준다. 엄마는 가급적 TV를 안 보여주고 같이 뭔가 체험을 하려고 낑낑대는데 아빠는 쉽게쉽게 TV를 보여준다. (그래도 책 10권 읽기 or 퍼즐 2번 맞추기의 룰은 지켜줘서 다행 ㅠㅠ) 그러니 아빠를 안 좋아할 수 있겠나! 나라도 좋을 것같다.


(냠냠냠) 그래서 우리 호두가 왜 호두였냐면 말이야 (냠냠냠)


비록 내가 간간히 보이는 강압적인 태도가 그에게 시련이 될지라도 나는 이 악당 역할을 관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내 선택이 그에게 어떤 결핍을 낳더라도, '필수 불가결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최소한의 가이드는 잡아줘야 하고, 그를 때에는 그르다는 피드백은 줘야한다. 다만 그 피드백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한다든가, 실수 대비 너무 큰 벌을 내리는 등의 과잉조치가 되지 않도록 내 나름대로 세심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 살뜰히 작물을 보살피는 농사꾼처럼 말이다.


내가 뱃속에서 아이를 기를 때, 아이의 태명은 '호두'였다. 왜 호두였냐면, 호두와 관련한 어떤 이야기 때문에 그렇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와 같다 :


신이 인간과 함께 살던 시절, 어느 호두 농사꾼이 신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신이시여 저에게 딱 1년만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처음에는 신이 그 청을 거절했으나 농사꾼이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결국 능력을 주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1년 동안 농사꾼은 따뜻한 햇살을 비추고, 천둥번개 강풍 따위는 없는 온화한 나날을 만들어 호두를 키웠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호두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이윽고 추수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그는 기쁜 마음으로 호두를 깨뜨려보았는데.... 호두는 모두 알맹이가 하나도 없었다. 농사꾼은 신을 찾아가 따졌다, 왜 내 호두가 이모냥이냐고. 그러자 신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도전과 시련이 없는 것에는 알맹이가 차오르지 않는 법이다. 폭풍우같은 방해도 있고 가뭄같은 갈등도 있어야 껍데기 속의 영혼이 깨어나 호두를 여물게 하는 법이다."


아이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부터 나는 악당이 좀 되어야겠다. 악당이 된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짝사랑에 빠진 악당이라는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흥미진진한 소설을 써 내려가 보자고. 지금까지는 주로 내가 주인공 했으니까, 이번에는 니가 주인공 한 번 해 봐봐. Boy, come up to the stage,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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