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램은 어린이집에 가기를 싫어한다. 막상 가면 잘 노는 것 같은데, 가는 길이 그에게는 이역만리 길이다. 이역만리 길을 헤치고 어린이집 정문에 다다른 그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그에게 보상으로 줄 작은 스낵을 들고 간다.
아이가 머리가 크면서 점점 고집이 세지기 시작했다. 엄마 입장에서도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들어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아, 가방을 맡기고 산책을 한 바퀴 돌자고 먼저 제안했다. 어린이집을 품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휘휘 돌다보면 재미도 있고, 기분이 좀 나아지면 어린이집으로 유도하여 입성하는 데 성공하곤 한다. 아 그런데 이게 역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늦게 들어가는 꼼수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아이는 오늘도 어제도 어린이집 근처를 뱅글뱅글 돌다 등원을 했다. (엄마 산책도 시켜주는 착한 아들램!)
지금 아이와 내가 사는 이 도시는 아파트가 가득한 도시이기에, 자연의 무언가를 경험하려면 단지 내 화단을 통해 경험하는 게 대부분이다. 전전 주 폭염에 이어 이전주 폭우를 경험하고나니 아파트 화단에 지렁이가 그렇게도 기어나와 있다. 이미 죽어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 죽은지 얼마 안 된 지렁이, 어떻게든 살겠다고 몸을 질질 끌고 가는 지렁이 등 다양한 지렁이를 발견한다.
걔 중에, 마르고 뜨거운 돌바닥을 지나가는 지렁이를 보면 내가 다 안타깝다. 저 얇은 지렁이 살갖은 이 바닥이 얼마나 뜨거울까. 게다가 촉촉한 데에 살아야 하는 지렁이의 특성상 이 바닥은 얼마나 거칠까. (T도 이런 사고를 합니다 여러분~!) 아이가 곤충과 벌레를 좋아하여 콩벌레며 딱정벌레며 잡아다 아이 손에 올려주는 것을 자주 했던 나는, 이제는 지렁이도 손으로 척척 잡을 있는 슈퍼 엄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 그래도 징그럽긴 해 ㅠㅠ...) 그래서 며칠 전에도 마른 땅을 기어가는 지렁이를 단단한 종이에 어찌저찌 올려서 흙으로 돌려보내주는 구조(!)를 아이와 함께 수행하였다. 아이가 어찌나 기뻐하던지! 나도 못내 이 활동이 자랑스러웠다.
오늘 아침에도 구조가 시급한 지렁이를 발견했다. 분명히 때깔은 산 지렁이의 모습인데, 바닥에 가만히 있기만 하다. 예상컨대 땡볕에 있다가 탈진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아이가 저 앞에 멀리 가 있었지만, 일단 냅다 집어서 흙이 많은 화단에 던져두었다. 그리고서는 아이를 불렀다 :
"◇◇아, 여기 구해야 할 지렁이가 있어!!!!!"
"응?"
"지렁이가 지쳐보여서 흙에 돌려보냈는데, 아무래도 물이 필요한 것같아! 여기로 와서 엄마 좀 도와줘!!!!"
"응, 알겠어!!!!"
재활용품 모아둔 데에서 적당히 깨끗한 플라스택 생수병을 하나 골라 물을 담았다.
"◇◇이가, 지친 지렁이한테 물을 줘야하는 거야, 알겠어?"
"응!!" (결연함이 뭍어있는 그의 표정이 새삼 귀엽다ㅋ)
"자 저기 나무 사이를 통해 화단으로 들어가, 그리고 땅에 있는 지렁이를 찾아봐"
"네!!!!!!"
도도도도 달려간 아이와 나는 지렁이를 찾아서 물을 주었다. 어째 물을 끼얹는 동안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게 좀 괴로워 보이긴 했다. 어쨌든 이 생수가 그 지렁이에게 활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렁이 구조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이와 나는 어린이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까 전보다는 훨씬 편한 분위기 (그래도 여전히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_ㅠ...)로 입성에 성공.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집 근처 담벼락에 한 두 뼘 되는 작은 공간을 깻잎밭으로 개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우왕~ 깻잎이다~'싶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의 경이로운 부지런함을 찬탄하고 싶어진다. 나는 동생과 함께 거의 매일 엄마와 함께 깻잎밭에 물을 줬다. 좀 더 넓이가 있는 땅에는 상추랑 고추, 호박도 심었다. 봄이 되면 상춧잎과 깻잎이 새로 돋는데, 엄마께서는 적당히 상추와 깻잎을 솎아내서 밭을 정리했다. 덕분에 봄철이면 늘 상추 깻잎 쌔싹으로 비빈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야들야들하면서도 향이 좋아 밥 한 그릇이 뚝딱이었다.
아마도 그 때 당시에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유흥시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랑 어디 시설같은 데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안 가서 없을지도 모르지만, 재미가 없어서 안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나에게 있어 남아있는 귀한 추억중에는, 엄마랑 텃밭 가꾸기, 아빠랑 오목두기, 아빠랑 같이 배드민턴 치기 등이 있다. 텃밭을 가꿔본 덕분에 초록잎과 기어다니는 벌레가 좋다. 덕분에 아이도 벌레에 관심이 많고 여러 곤충에 흥미가 있다. 식충식물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
나는 내 아이에게 1/2의 유전자를 준 엄마이기도 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문화를 전수하고 있는 밈(meme)의 전승자이기도 하다. 어려운 사상을 통해 생명존중을 설명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도저히 네 살 배기 아이에게 통할 것같지는 않고. 지렁이 구조대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뿌듯함을 경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명이란 소중한 것임을 알아주지 않을까? 그렇게 엄마의 아침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