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인간이 숨쉬듯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언어는 그 특성상 존재의 모든 면을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고 봤다. 하나의 개념은 시간이 지날 수록 변하게 마련이고, 우리가 하는 어떤 서술은 특정한 관점을 녹여낸 것 뿐 전체를 아우르지 않는다. 이게 이야기하는 바는, 언어로 표현하는 그 모든 것은 의도치 않은 왜곡과 생략을 야기한다고 봤다. (This is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그런데 뇌과학 관련 도서를 보니... 정작 거짓말은 뇌가 하고 있더라. '거짓말을 한다'는 표현이 조금 거칠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 뇌는 실측치를 보여주지 않고 예측치를 보여준다. 우리 감각기관(눈, 코, 입, 귀, 피부)이 받아들인 감각은 뉴런세포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뇌에다가 그 데이터를 전달한다. 하지만 뇌는 이 데이터값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뇌는 늘 우리에게 감각의 '예측치'를 보여준다. '실측치'가 아니라, '예측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뇌는 거짓말을 자동탑재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실측치를 반영 및 보완하여 아주 정교한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이긴 하지만.
AI에 대해 흥미를 가지면서 알게된 사실 중 하나가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다. 할루시네이션은 AI가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이 마치 있는 것마냥 설명하는 작동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AI에게 'A4용지 부대찌개 레시피 알려줘'라고 하면, 실제 A4용지 부대찌개라는 게 있는 것마냥 레시피를 알려주는 게 대표적인 할루시네이션 증상이다. 이게 AI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주장할 여지가 충분히 있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을 '속임수(Deception)'가 아니라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이름붙인 데에는, AI의 이 행위에는 고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도성이 없는 거짓은 그래도 이쁘게 봐주나보다. 그런데 의도성이 다분한 거짓을 이 사회는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얀 거짓말(White Lie)같이 개인 간 관계를 돈독해지기 위한 방편의 경우를 제외하면, 사회문화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의도적인 거짓말은 용인되는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왜 그럴까? 나는 거짓말의 존재가 대단히 큰 사회적인 비용증가를 야기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본다. 이 사회에 거짓이 만연하게 되면 쉽사리 거래가 일어날 수가 없다. 일어난다고 해도 그걸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검증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신뢰사회라면 그러지 않았어도 됐을)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는 곧 상당한 기회손실로 이어지게 되고 사회적인 부의 효용(Minus Welfare)를 야기한다.
역사적으로도 정보를 왜곡하고 대중을 기만한 것은 그 과정부터 종결까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나치정권 하의 괴벨스가 그랬고 사이비 종교가 그랬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심리적 취약성을 공격하여 목숨을 빼았거나 금전을 갈취하는 건 용인할 수 없는 범죄이다. 정치는 어떠한가? 있지도 않은 사실로 상대방을 비방하여 분열을 가중시키는 게 좋아보이던가? 이러저러한 청문회를 보건대, 피청문자가 용어의 의미를 미묘하게 왜곡시켜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방어를 하는 모습을 보면 내 속이 다 뒤집어지더라.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육체의 유전정보를 번식과정을 통해 후대에 전달하는 한편으로 문화적 유산은 밈(meme)의 형태로 후대에 전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율은 우리 사회가 전승하고 있는 밈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거짓과 왜곡은 우리의 두뇌와 언어체계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긜고 자주 일으키는 행위임을 감안하더라도, 종교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는 거짓말을 대할 때 야박하기 짝이 없다. 그만큼 거짓말이 가지는 파괴적인 속성을 역사적으로 경험했고 또한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나만 해도 그렇다. 어쩌다보면 아이에게 '우리집 까까 다 떨어졌어'라는 가벼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 나름대로는 가벼운 방편으로 거짓말을 사용한 것이지만, 일단 한 번 사용하면 들키지 않아야 하기에 거짓이 연기를 부르고 또 다른 거짓을 부르는 등의 파급효과가 나타난다. 한 번 하게되면 그만큼 들이는 에너지가 많아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규칙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규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규약은 신뢰사회를 만드는 데 각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신뢰사회가 구축되면 거짓으로 인한 부의 효용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의 거래비용을 떨어뜨려 외주를 쉽게하고 거래를 활성화시킨다. 개인간 자율적인 거래가 사회적인 효용을 증대시킨다는 건 이미 애저녁에 경제학계에서 증명이 끝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거짓말 좀 하지 말아라. 선전선동하고 왜곡하지 말아라. 내 눈에 딱 걸린 몇 몇의 선동가들아, 걸리면 말로 아주 그냥 후드려 패 줄테야. 재가 수행자가 들고 있는 언어적 죽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 오계 고찰 시리즈
1. 취하지 말라 : https://brunch.co.kr/@hibosalnim/114
2. 훔치지 말라 : https://brunch.co.kr/@hibosalnim/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