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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의 맹점 (Feat. 남편님 싸랑합니다)

by 힙스터보살


내가 의외로 굿 리스너다. 뭔가 같잖은 소리를 들어도 일단 열심히 들어는 본다. 듣다보면 진짜 같잖은 소리일 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듣기를 거듭하다 보면 그 속뜻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게 리스너의 희열이라면 희열이리라. (듣다가 기부니가 좋아지면 나도 신나서 말이 많아지는 건 덤ㅋ)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날 꽤 좋아한다ㅋㅋㅋㅋ 술 한 잔 걸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절이 주절이 뭔가를 말하게 마련인데. 그걸 하나하나 다 듣고 맞장구로 치고, 유관하게 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뽑고 이러다보면 술자리 흥이 고조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맥주와 전통주의 세계를 알려준 중딩동창 ☆선생은, 내가 자취를 하던 시절에 틈만 나면 나를 그녀의 술상에 초대했다. 마침 우리집 앞에서 타면 딱 그녀의 자취집 앞에 서는 버스가 있어서 그녀는 나를 참 자주 불렀다. (반대로 개소리도 다 들어준다. 그리고 빡쳐해서 더 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다 브런치에 글을 싼다. 좋은건가?ㅋㅋㅋ)


게다가 울 남편도 술을 좋아한다. 주량만 보면 나보다 약한 것 같은데, 본인이 힘드셨을 때 극복했던 방법 중에 하나가 술이어서 그런지 뭔지 꾸준히도 마신다. 그가 지인과 외식을 하고 얼큰하게 취하여 집에 들어오면 유독 말이 많다. 벌개진 얼굴로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귀엽고 똑똑한 울 남펴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도 치고 내 의견도 나누다보면 한 두시간은 금방 흘러가버린다.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2CC9365AAA13C50C 이런 풍류를 아는 자들 같으니라고~!


어제 토요일에 남편이 정보처리기사 시험을 치뤘다. 시험이 끝난 해방감을 만끽한 남펴니는 역시나 친구들과 외식 약속을 잡았다. 점심에 나가더니 밤늦게까지 노시더라.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때에, 하필 모임을 가진 곳에서 집으로 올 때 택시가 잡히지 않아 나에게 헬프를 넣으셨다. 내가 직접 차를 끌고 그를 데려왔다. 그 때가 10시는 충분히 넘은 시각이었는데, 그는 갑자기 떡볶이를 먹고싶다 하였다. '으잉? 이 시간에 떡볶이를???'이라며 내 마음은 물음표를 날렸지만, 군소리 없이 떡볶이를 만들어 드렸다. 내가 요리를 하는 중에 바깥에 나갔다 들어 온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김밥과 햄벅을 사 왔다. 아니 선생님, 오늘 하루종일 친구들과 맛있는 거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시간에 뭘 또 드시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남편은 얼큰하게 취하고 들어온 날, 또 그 날 하필 나도 죠금 한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서로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장을 열곤 한다. 내가 우리 남편을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단연 핵심은 귀엽고 똑똑해서이다. 나는 그의 음주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다행히 그는 술 몇 잔이 들어가도 매우 귀엽고 여전히 똑똑한 탓해서 보기에 흐뭇하다. 취해서 뭐라뭐라 열심히 얘기하는 모습은 특히 왜 이리 귀여우신 건지! 그는 프로그래머이기도 한데, 일전에 내가 그에게 (것도 반주자리에서) "글쓰기와 프로그래밍이 둘 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요!!"라고 할 때, "둘 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잖아요."라는 답변을 하셨음이 기억난다. 하.... 치인다 치여, 역시 울 남편이 킹왕짱이다.


이번에도 흥겨운 이야기시간은 또 벌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가 다른 소재로 확장을 하고 그는 또 좋다고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휙휙갔다. 야식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여흥이 끝나지 않아 수다를 조금 더 이어나갔다. 이때 나는 '제가 의외로 굿 리스너예요. 저랑 이야기하면 재미있죠?'라고 물었더니 그가 대뜸 대답하더라 '그게 장점이에요. 근데 그게 장점이라는 걸 알게되면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되어버려요'라고 말씀 하시더란. 아 흥미롭네, 이래서는 잠들수가 없잖아! '왜요, 오빠?'하고 되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


"그것이 장점인지 모르고 있을 때에는 그냥 장점이 ('효과'라는 측면에서) 발휘돼요. 그런데 그게 장점으로 인식되면, 인식한 본인이 (그 장점에 매료되어) 장점처럼 행동하려고 해요. 그러면 타인을 향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던 내 장점이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 돼요. 그래서 장점이 맹점이 되는 거에요."


2018112914485763180.jpg 캬~~~~~!!!!!!!


앞으로 봐도 옆으로 봐도 뒤로 봐도 내가 결혼은 참 잘 한 거 같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만나서 사람 부르기는 뭣하고, 애부터 생겨서 스드메를 알아보러 가기는 귀찮고. 그래서 결혼식 하지 말자고 제안했을 때 '좋아요'라고 쿨하게 수락할 때도 매력이 터지던 그였는데. 함께 살고 난 지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난 듯도 한데, 시간이 지나도 문득 나를 설레게 하는 재주가 있네, 이사람? ㅎㅎㅎ


세상에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그게 구체화되는 데에는 경험과 사유가 필요하더라. 경험과 사유가 부족할 때 참 좋은 게 도반과의 대화이다. 내 남편은 무신론자에 무교이기는 하지만, 내 맘속에 그는 이미 나의 도반이다. (도반 : 불교에서 이르는 용어로, 함께 수행하는 수행메이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남편 도반께서 말씀하셨듯, '장점'이라는 좋은 것도 어느 순간 좋지 않게 작용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 변질이 이런 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사고의 구멍을 그가 채워주니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고맙고 또한 감사하다.


수행자는 나쁜 것을 보고 지나치게 부정적이지도 않기를, 좋은 것을 보고도 지나치게 흥분되지 않기를 요구받곤 한다. 그게 1도 부정적이지 않게 되고 1도 흥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긴 하다. 쾌/불쾌애 계속 휘둘려있지 말고 마음이 평온한 자리로 금방 돌아오라는 것이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 쉽지 않아서 함께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쉽게 돌아오려면 '깨달음'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보건대, 깨달음 얻은 상태에서는 (깨달음을 얻는 딱 그 순간 느끼게 되는 굉장한 희열이 지나간 시점에서) 쉽게 화를 내지도 쉽게 좋아하지도 않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냥 평온하다.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나는 우리 남편을 보며 '남자는 크든 작든 다 애야'라는 말이 반례가 있음을 느낀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꽤 경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편은 좀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까지 남펴니에게 이모저모 칭찬을 많이 했는데! 남펴니 스스로도 '이게 내 장점이구나'라고 인지가 될만한 많은 긍정의 말을 꼿아넣어드렸는데. 이 분 이거이거... 고거이 좋은 거 알고서 자기만족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한테 말했던 그랬던 것인가?


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 같으니라고........!

싸랑합니다~ 나의 남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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