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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프로그래밍의 공통점

by 힙스터보살


(이 글을 먼저 올린 다음 글쓰기 취미에 대한 글을 올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올릴 글을 먼저 발행하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버리다니. 근데 이거 마치,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셉타포드의 세계관 같아서 뭔가 쫌 멋있는데? ㅋㅋㅋㅋㅋㅋ 일단 글 시작!)


예전에는 아들램이 블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키운 지 삼 년이 넘어가니까 은근히 블럭놀이를 즐긴다. 놀이를 시작할 때면 리빙박스에 한가득 담아놓은 블럭을 바닥에 시원~하게 쏟곤 하는데. (...이걸 즐기는 건가?ㅋㅋㅋㅋㅋ) 나도 옆에 앉아서 비행기며 트럭이며 함께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여자아이 었긴 했지만 미미인형보다는 곰인형이 좋고 요술봉보다는 레고블럭을 좋아하긴 했었지.


그러고 보니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알던 개발자 분이 프로그래밍을 레고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게 떠오른다.


"프로그래밍은 쉬워요. 레고라고 생각하면 돼요. 장난감 레고보다는 조금 복잡하지만 똑같은 거예요."


당시의 나는 마음속에 '녜??'라며 물음표부터 떠올랐다. 그렇다고 하기에, JAVA를 배워봤던 그 시절에 허덕허덕하던 나는 뭔데 ㅋㅋㅋㅋㅋ 그래도 쿼리문 짜면서 '야~ 이거 다 집합 얘기하는 거네! 완전 쉽네! 나 천잰가봐 ㅋㅋㅋㅋㅋ' 하기도 했지만 ㅋㅋㅋㅋㅋㅋ


아들아, 제발 부탁인데 놀이매트 위에다가만 블럭을 쏟아주었으면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하게도 전남친 현남편 모두 컴퓨터 엔지니어이다. 그리고 나는 최근 코딩을 배운다. (오모나 오모나 운명이란 게 진짜 있나 봐? ㅋㅋㅋㅋ) 맨 처음 배웠던 것이 스크래치와 엔트리라고, 요즘 초딩들이 많이 하는 블럭코딩이라는 거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예전 그 코딩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바짝 긴장했는데. 첫 수업을 듣고 나서는 재미있어도 너허~~~무 재미있어서 수강하길 잘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버렸다. 심지어 코딩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강사님께 고백도 했다. 강사님이 내 이름을 적어간 것은 덤.


회사에서 정보처리기사를 따라길래 시험 전날 두어 시간 빡시게 공부하고 필기 합격을 받은 남편은 자축의 의미로 소주파티를 열었다. 승리주를 마시고 볼이 발그레해진 남편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귀여워 보였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그이와 말이 정말 잘 통한다는 것이다. 관심사가 엄청 겹치진 않지만, 그와 어떤 소재를 이야기 하든 티키타카가 된다. 내가 프로그래밍 개념을 조금 알고 있기에 그에게 컴공적 농담을 던질 줄도 안다는 행운도 있고.


남편과 이러저러한 대화를 하다가, 나는 요즘 프로그래밍과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브런치로 글 쓰는 플랫폼을 옮긴 뒤 내 글터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매우 마음에 들어 글을 더더욱 쓰고프다고 했다. 또 그런데 한편으로,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때 발휘하는 특유의 집중력과 글쓰기를 할 때 세팅되는 내 정신상태가 뭔가 미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이야기 역시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은 그리 말하더라 :


"둘 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잖아요."

(아 그렇네??? 우리 남편 천재 아니야?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밥 아저씨, 쉬워요! 알면 다 쉽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밥 아저씨는 저렇게도 멋진 그림을 쓱쓱 그리고는 '참 쉽죠?'라며 인자한 미소를 날리신다. 저 아저씨가 살았던 문화권에, 꽤 오래전에 살다 가셨던 몇몇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더란다.


어릴 때 위인전기 전집에 보면, 전기의 인물들을 한 권에 모아 간략히 소개하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책에 쓰여있는 위인들 중에 그리스 철학자 몇몇은 직업이 장난감 기차마냥 길~게 적혀있는 경우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형님도, 플라톤 형님도, 아리스토텔레스 형님도 다 그렇더라. (우리 형님들, 갓생을 사셨군요?)


그들이 거친 직업명은 달랐을지라도, 그중 몇몇 개는 어떤 속성을 공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발견한 보배를 그들의 삶으로 꿰어서, 어떨 때는 법학에 어떨 때는 윤리학에 적용했던 건 아닐까. 내가 위대한 철학자들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내 삶과 앎을 엮어 글을 쓰고 있다. 때문에 글쓰기 활동이 짐짓 명예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크~~ 한 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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