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쓸 때마다 참 의문인 부분인데. 왜 취미랑 특기를 쓰라는지 모르겠다. 면접 때 이야기나눌 소재거리를 찾고 싶은 심산으로 그럴까? 칸은 채워야겠다 싶어 어설프게나마 할 줄 아는 걸 특기로 적었다가, 면접관이 최종면접에서 특기를 얼마나 잘 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얼마나 난감할까?(...이 질문이 신뢰성 검증용 질문인가 싶기도?)
나는 다행히 특기로 내세울만한 게 있다. 그것은 ppt 만들기. ppt를 통해 내가 상상한 것은 웬만하면 다 만들 수 있다. 애니매이션 효과 포함해서 말이다. 하하! 이런 나라도 ppt 세계의 고수를 심심찮게 본다. 그들의 스킬을 볼 때마다 놀랄 노자가 자동발사된다. 고수분께서 운영하는 유툽영상을 보면 감동마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난 휘파람도 엄청 잘 붊!)
나에게 문제는 취미였다. 족저근막염이 없던 시절에는 복싱도 하고, 간간히 배드민턴도 쳤는데... 이제는 수영이라고 써야 하나? 취미라고 하기에는 일주일에 두 번 겨우 나가는 것 같은데.
아 맞다. 나에게는 요즘 그 무엇보다 핫하게 나를 달구는 취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
예전에 코딩을 레고블럭에 빗대어 남긴 글이 있다. 재미있는 건, 글쓰기 역시 나에게 레고블럭놀이 같은 느낌이 강하게 있다는 것이다. 내 일상의 경험이니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이미 예전에 접했던 지식이나 개념과 접붙여 덩어리를 만드는 것. 이 과정이 내게는 마치 블럭놀이 같다.
레고 블럭은 물리적으로 상자에 담아놔야지 되는데, 생각의 블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벤토리(뇌)에 들어있다. 레고블럭은 상자에 접근해야 가지고 놀 수 있지만 생각의 블럭은 내가 원하는 때가 되면 언제든 꺼내서 결합을 시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취미이다.
길을 걷다가, 청소하다가, 유툽을 보다가 생각이 번뜩하고 떠오르면 바로 텍스트 에디터를 꺼내서 써 재끼기 시작하면 된다. 글 쓰는 속도가 더디면 보이스 레코더에 녹음을 해도 좋다. 활동하며 누군가 만나야 하지도 않다. 새벽이든 심야든 점심 저녁 가릴 거 없이 바로 시작 가능하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취미란 말인가!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한 문장 안에서 주어 동사의 연결이 맞는지, 문장이나 개념이 대조적으로 어울리는지, 호흡이 너무 긴 문장은 없는지, 문단미다 하나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스스로 검토하게 되는데. (....디버깅?) 이것은 또 시를 쓸 때 은유와 상징, 문장의 호흡과 리듬감, 함축적 의미와 전반적인 심상을 생각하며 쓰는 느낌과도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나를 감정적으로 강하게 흔들거나 꾀나 강한 영감을 주는 소재거리를 만나면, 수필을 쓰고도 그 감상이 못내 남아 시까지 쓰게 된다.
신기한 건 내가 요즘 블럭코딩을 배우면서 글을 쓸 때 전혀 낮선 두 개념을 접붙이기 하는 게 예전보다 더 활발히 된다는 점이다. 글쓰기와 코딩은 분명 다른 분야인데, 둘 다 언어를 재료삼아 결합하고 결과물을 만들어서 그런가 달리 보면 둘의 유사성이 의외로 높다. (그래서 컴퓨터 엔지니어링 하시는 분들 중에 브런치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걸까?)
인간의 두뇌는 한 가지 사고를 차근차근 하는 직렬적 사고도 가능하고 (like computer) 여러 생각을 다각적으로 하는 병렬적 사고 (like AI)역시 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랑 AI도 인간의 두뇌를 흉내내어 나온 결과물인데.
인간을 흉내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어마무시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면, 인간이 각잡고 두뇌능력을 십분 발휘했을 시 니체가 소망한 위버멘시(Übermensch, 초인)가 현실에 구현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건 아닐까? 이미 인간들이 그 점을 감지하고 있었기에 코믹스와 영화에서 끊임없에 초능력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