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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불교에 이르게 되었나

by 힙스터보살


나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좀 의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즐겨보는 유투브 채널이 과학, 경제, 정치, 역사, 철학, 심리 뭐 그렇다. 평소에 말하는 관심사도 저 주제가 대부분이다.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여 세상을 읽으며 살려고 한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불교에 이르렀냐면....


나에게 닥친 인생의 파도를 건너다 보니...?


1. 발단


7년간 교제를 지속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의 첫 연애상대이기도 했다. 언제 사귀기 시작했는지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2008년도 전후였을 것이다. 첫 연애라 설렘이 대단히 컸지만, 첫 연애라 그런 건지 삐그락 빠그락 했던 것도 많았다. 나는 그것이 내 부족함 때문일 거라며, 내가 훠어얼씬 잘하면 우리의 관계가 점차 나아질 것으로 믿으며 힘든 연애를 계속 해 나갔다.


이름을 들으면 '오, 거기?' 소릴 듣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바로 사회로 나가는 게 두려워 가볍게 학원강사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을 의외로 꽤 오래했다. 한 4년쯤? 그리고 그 4년쯤 되던 해에 나는 기어이 홧병을 얻고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했지만 때마침 시작된 불황 덕분에 최종합격은 단 한 곳도 이뤄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남친의 제안으로 JAVA 코딩을 배워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 하려고 했지만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개발자 취업은 포기하고 말았다. 겨우 IT솔루션 회사를 들어가서 고객센터 기술상담원이 되었다. 그래도 강사 경력이 유효했는지 꽤나 인정받는 상담원이 되었다.



2. 전개


쉽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나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 자부한다. 하지만 인생은 만만치 않은 법.


내가 더 노력을 하면 나아지리라 믿었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더 뒤틀어졌다. 아마도... 연애 약 6년쯤 되던 해였을 것이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꽤 불안 해 보이는 소기업에서 즐거운 듯 즐겁지 않은 듯한 아리송한 나날을 보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자와의 대화는 벽창호와 대화하는 것과 다를 게 없게끔 변해버렸다. 나는 화가 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의 상태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에게 여러 번 심리상담을 받아보라 권했다.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상담원으로서는 꽤 많은 성장을 했다. 고객센터는 자사 솔루션을 이용하는 대리점들이 주로 문의전화를 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찾는 대리점이 월등히 많아졌다. 사무실로 간식을 보내주시는 대리점 사장님도 계셨다. 후배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쳤고, 메뉴얼도 도맡아 만들었다. 그리고 약 6년쯤 되던 해에, 같은 부서의 과장님과 함께 IT부서의 기획자로 발탁되어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3. 위기


연애가 막바지 시점에 이르니, 만남의 순간은 애저녁에 기쁨보다는 피로로 가득 찼다. 그러던 어느 날, 남친은 질소통을 구했다는 톡을 보내고 세상을 등질 것 같은 프로필 메시지를 남기고 잠수를 탔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그의 어머니께 연락을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어머님은 이 사건에 무관심해 보였다. (그가 처음 나를 어머니께 소개시킨 그 날, 그는 어머니와 옥신각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여긴 아니다 알아채고 헤어졌어야 했다. 세상경험 부족으로 미련한 연애 이지경까지 끌었지 뭐야. 하하하하하!)


나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관은 나에게 남친이 마지막으로 입고 나갔던 의상과 (혹시라도 변사체로 발견될 걸 대비하여) 몸에 흉터나 점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그때의 참담한 기분은 오래토록 잊기 어려웠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그때의 착잡함이 떠오른다. 매일매일이 우울했다. 행히 그는 살아(!)돌아왔지만, 난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 우울함 속에서 한 가지 강렬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를 아끼는 나도, 소중한 사람이야"


옮겨간 IT부서도 헬이었다. 차라리 상담원은 상담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퇴근이 일정한 편인데, 기획자로 일하는 동안 6시에 퇴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8시면 감지덕지이고, 대개는 9시, 11시에 퇴근하는 날도 적잖이 있었다. 개발부장과 대화하면 이게 안된다 저게 안된다 반복. 영업담당자는 본인의 일을 기획자에게 던지기 일쑤. IT본부장은 지 말은 다 옳은 줄 알고 틈만 나면 일장연설. (개발자로서는 능력이 있을지 모르나, 관리자로는 앉히면 안 되는 딱 그런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도대체 일들 하는 꼬라지가 이런데 어떻게 회사는 굴러가는지 신기했다.


회사의 연봉테이블은 상담부서보다 IT부서가 단연 높았다. 처음 IT부서로 옮길 때에는 연봉은 상담센터 시절의 그 액수로 동결이었다. 나는 '그래, 기획자 경험이 없으니까 아직은 상담원 연봉으로 시작하는 게 맞겠지'라고 스스로를 수긍시켰다. 하지만 기획자로 1년을 일 한 때에도 연봉이 동결이더라. 고객사 대표 소통채널이 나였는데도 말이다. 더는 뒤 돌아볼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정뚝떨.


불행은 겹친다 했던가. 새 일자리를 알아보려 개설한 링크드인을 통해 사기를 당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당했던 사기 유형이 로맨스 스캠이더라. 액수는 밝히고 싶지 않지만 홀로 모았던 돈의 상당수를 날렸다.


첫 직장을 학원강사로 시작한 게 잘못이었을까? 거기서 만난 남친은 ㅈㅅ쇼. 겨우 자리 잡은 회사 보직이동은 심각한 워라밸 붕괴 및 스트레스 야기. 막타로 경제적 손실 끼얹기. 내 삶이 짓이겨지는 경험이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광야에서 느낀 기분이 이랬을까?



4. 절정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답답한 개인사를 토로할 곳도 필요했고, 내 삶을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내 줄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때만치 절실하게 내 삶을 나아질만한 방법을 구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유튜브로 정말 여러 영상을 봤다. 그 중 가장 와닿았고 유용했던 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다. 정말이지 즉문즉설은 피드에 뜨는 족족 다 들었던 것같다. 어찌저찌 친하게 된 분과 함께 독서모임도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세상은 그 모양인지, 책을 통해 배우고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이 모임은 2025년 5월 현재까지도 유지 중이다.


나는 특히 법륜스님이 언급하는 '붓다'의 일생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스님의 부처님 이야기를 연이어 들었다. 영상 갯수가 꽤 많은데도 계속계속 들었다.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그 '광명이 있으라'인가?ㅎㅎ) 그러다 문득 바라게 되었다 :


"내가 만일 부처와 같은 모습을 갖춘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5. 결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독서모임에 들어온 언니가 소개시켜 준 분은 어느새 남친이 되어있었다. 새 남친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가 생겼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정토회 온라인 불교대학을 수료했다. 지금까지도 웬만하면 수요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려고 한다. (법회를 온라인으로 하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인지!) 보면, 불교라는 게 나에게 있어서는 종교라기 보다는 일종의 '삶의 방식'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탐진치를 피하고 정견을 갖추려고 애쓰고 있다. 세상을 무상고 무아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님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다면적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원하고 또한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내 삶 전반이 가볍고 자유로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렇게 나는 불교의 길에 이르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그 언젠가는 성불하기를. 반야바라밀.




내 삶을 나아지게 만들 방법 하나 제안 중 :

https://www.hihappyschoo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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