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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곱하기 어른이날

by 힙스터보살


2025년 5월 장기연휴 중 이틀은 가족여행을 위해 썼다. 그럼 나머지 이틀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엄마의 고심이 깊어진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TV를 보고 싶다고 토로한다. 우리집은 책을 10권 읽으면 TV를 보여준다는 규칙이 있는데, 그 덕분에 아들램은 가끔 책을 산처럼 높이 쌓듯이 읽고나서 해맑게 말한다 :


"엄마, 나 책 이마아아안큼 읽었어!"


??? : 어어 열 권 다 읽었다고? 잠시만, 티비 틀어줄게~


이틀 내내 집안에 있을 수는 없지. 다른 엄마들을 통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진행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이모저모 입수했다. 그리고 따져봐야 했다. 어디가 대중교통을 타고 갈만한 곳인지.


아 근데 왜 꼭 대중교통이어야 하냐고? 그것은, 부처님 오신날이자 어린이날에 남편이 군산으로 낚시간다고 차를 가져가기 때문이지! 하하하


아빠가.

어린이날에.

낚시를 갔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 만난 다른 엄마는 이 말을 듣더니 잠시 표정이 벙찐다. 나도 남편이 처음에 어린이날에 낚시를 가겠다 했을 때 '읭?'스러웠다. 여행 다녀와서 피곤할텐데 바로 다음날 어딜 가겠다고? 방구석에서 드라마 보고 핸드폰으로 소설 보는 걸 제일 좋아하는 남편이 즐기는 몇 없는 취미생활이 낚시인지라 가고 싶다 하면 웬만하면 다녀오시라 하는데. 것도 하필이면 어린이날에 갈 거는 또 뭔가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 해 보니, 또 못갈 건 어딘가? 가족여행 동안 짧고 굵게 아빠랑 좋은 시간을 보낸다든가 낚시 다녀오고나서 놀아주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러시라고 했다.


우리 남편이 배낚시를 가면 대개는 꽝시어부가 된다...ㅋ


아니 근데 하필 남편이 낚시 간 때에 태안군 근방에 지진이 나 버렸다. 혹여 사고라도 당할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걱정스런 마음에 톡을 보냈더니, 남편은 배타고 나간 곳과 지진 진원지가 멀어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이 대화를 주고받은지 몇 시간 후. 그는 빵이 제법 큰 도미를 잡아 꽃처럼 활짝 핀 미소의 사진을 카톡으로 척 하니 보내왔다.


"오올~ 우리 남편 좀 치는데?"


그렇게 오늘은 자연산 도미를 아낌없이 숭덩숭덩 썰어넣은 도미회덮밥을 점심으로 먹고 있다. 이 기가 막히다. 초장없이 한 점 먹은 도미회는 비리지 않고 적당한 쫄깃함에 씹을 수록 감칠맛이 우러난다. 회덮밥에 곁들인 잘 익은 열무김치도 식사의 만족스러움을 더했다.




"소박하고 즐거운 불자의 삶"


붓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면서 개인적으로 참 좋은 점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가볍게 사는 삶이 습관이 된다는 점이다. 세상 일이 나쁘지만도 좋지만도 않다는 걸 어느 정도 알게된 덕분에 불유쾌한 일을 당해도 '어?' 스럽다가도 그 가운데 좋은 점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나선다. 능동적으로 사는 삶의 기쁨은 덤이고 말이다.


불교에 발을 들이고 '부처님의 가피'라는 말을 알았는데. 이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부처님이 베푸는 은혜'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남편이 잡아온 서프라이즈한 도미가 마치 부처님의 가피처럼 느껴지더라.


고마워요 부처님, 생일 축하해요 부처님, 태어나줘서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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