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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노래이다. 노래도 시다.

by 힙스터보살


중학교 때 종합보습학원을 잠시 다녔다. (엄마께선 공부를 할 때 학원에 의지하면 안된다 하셔서 1년 정도 다니고 혼자 공부해야 했다.) 수업 교과 중에는 국어도 있었다, 배움의 시작 시였다.


시에는 서정시, 서사시 등이 있고, 시에는 리듬감을 주는 장치가 있는데 여기에는 음수율, 음보율 등이 있다. Blar blar~ 새로운 개념을 가득 탑재하고 나서 고등학생이 되면 고전시가, 향가, 고려가요, 가사, 시조 등을 거쳐 현대시에 이른다. (이걸 기억하는 나도 대단한데...? 나 공부 열심히 했구나? ㅋㅋㅋㅋ) 작품을 수능 프레임에 맞춰 해석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시는 내게 있어 분석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음수율, 음보율을 배웠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닌데, 고걸 고렇게 배웠다는 게 아쉬울 때가 있다. 그냥 시를 접할 때, 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려 하기보다 이게 어떤 운율을 썼는지, 화자는 어떤 심상을 갖고 있는지 등등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든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시를 노래 듣는 것처럼 온전히 즐기지를 못하게 된다. 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전환할 작은 계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대는 어떤 틀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우?


내 젊은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여러 뮤지션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 패닉(panic)이다. 아직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이적과, 이제는 레이싱 선수로 활동하는 김진표가 만든 듀엣이다. 여기서 김진표는 랩을 담당했는데, 그의 랩은 그때 당시 다른 랩들과 비교했을 때 뭔가 다른 느낌이 확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가사는 일정한 형태의 단어가 끝나는 패턴이 있다. 예를 들면,


난 너를 사랑해

이 사랑이 영원해

영원이 행복해

같이 슬퍼해

그리고 또 똑같이 즐거워 해

서로가 웃-기만해

지금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네


<사랑해 그리고 생각해> 김진표 작사 작곡


다른 랩들은 다소 각설이 타령의 느낌이 있었는데, 그의 랩은 리듬감으로 장난을 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가 번뜩 알아챘다.


"노래도 시로구나!"


즙(JP)군, 은근히 귀염상이다. 패닉 이후 노바소닉 활동도 좋았는데!


이후 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학 장르가 되었다. 책을 잘 안 사던 내가 시집을 몇 권 샀다. 그리고 시 덕분에 소설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긴 글을 읽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여전히 시가 더 좋다. (그런데 지금은 독서토론방 운영자이다? 허허~) 남편은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때문인지 퇴근하고 한 잔 하면서 드라마 보는 걸 자주 한다. 그는 애니메이션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애니메이션은 꽤 봤었는데! (카우보이 비밥 만세!) 드라마는 다 보는 데 쓰는 시간이 못내 아까워 지금도 즐겨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폭삭 속았수다>는 보고싶다ㅋ


오래간만에 시를 이야기하니, 내 인생시를 들려주고 싶다 :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이 시는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다. 사실 학생으로서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시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일제강점기 시로, 그 프레임에 맞춰 분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이 시를 마주했을 때, 현실의 고통을 딛고 푸른별을 마주하는 감사함을 지닌 작가의 태도를 보고 나는 기어이 눈물을 왈칵 쏟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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