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x학벌주의x과거제도

by 힙스터보살


현대 한국의 경제 불평등 정도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보다 더 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능력주의'. 한국인은 현재 본인이 겪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개인 차원의 능력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때문에 내 자신을 갈아넣어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해결책을 잡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방향의 움직임이 잘 나오지 않는 거라고.


그러고 보면 그렇다. 한국에서 유난히 학벌에 대한 열망이 높다. 수영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내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몇 년이 지나면 얘가 공부로 승부를 볼 아이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언니만이 내 아이가 그렇다는 걸 알았을까. 많~은 부모님들이 그 점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를 놓기 힘들 것이다. 한국사회가 능력주의 사회라는 것을 아는 이상, 내 아이가 출세 기준점에 해당하는 능력을 쌓아야 살아라도 남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알테니까. 내 아이의 학습효율이 낮다? 그렇다면 투입량을 늘려서라도 누적량을 많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렇게 능력의 절대량을 취하면 되지 않은가. 그러라고 돈 버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엄청난 수요를 끌어모읍니다.)



그렇다면 한국(을 아우르는 극동아시아 특유)의 학벌주의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나는 그 기원 중 하나로 과거제가 문득 떠올랐다. 조사를 좀 해보니, 과거제를 기반으로 능력주의에 기반한 관료선발제도를 유지했던 나라가 중국, 한국, 베트남 이정도이다. 일본은 세습귀족의 힘이 강하여, 인도는 카스트 제도에 막혀서 관료를 뽑는 공적인 시험을 마땅히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유럽도 비슷하다. 유럽에 보면 자작 남작 뭐 이런 귀족의 지위가 굉장히 세분화되어있다. 어떤 문화권에서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 갯수가 다양하다는 건 그 대상과 관련한 문화가 융성해 있음을 방증한다. 그만큼 유럽의 귀족문화는 융성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아 물론 그런 면도 있기는 하다. 이미 귀족(또는 양반)인 가문에서 태어나면, 태어날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유사한 계층끼리 인맥을 쌓으며 능력을 키우기 좋았을 수 있다. 시험이라는 게 한 번 제대로 치르기 위해 물적 인적 인프라를 상당히 소모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당히 귀족 자제분 중에 현격하게 능력이 떨어지지 않은 애를 앉혀놔도 기본은 한다~ 이 정도로 나라를 운영했을 수도 있다. (나름 가성비를 챙긴 매니지먼트일 수 있다.) 또한 과거제를 운영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농사일 짓기 바쁜 양민은 관직에 오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과거의 과거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도 없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고 노비제도가 사라졌다. 헌법으로도 1항, 2항, 3항에 걸쳐 온 국민이 평등하다고 공표 해 놓았다 : (제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 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제 3항) 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하급 계급이 아니라고? 나도 능력을 키우면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아 이건 못참지. 불살라야지. 내 대에서 하지 못하면 내 다음 대라도. 그렇게 우리 family가 살아남아야지. (family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집단주의도 '스위치온'이다. ) 그렇게 아이의 성적에 관심이 쏠린다. 나의 경우에는 우리 부모님이 딱히 공부에 터치를 하지 않았기도 했다. (다행이게도 썩 못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도차도 공부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학교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애를 냅둬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하니까 걍 냅둔 거라고. 그런 우리 부모님 역시 내 성적이 잘 나와서 싫어할 리 없으셨고, 못 나와서 좋아하지 않으셨을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상장을 다 모아두셨겠지 ㅎㅎ)



뭔가를 익히고 생각하는 훈련은 굉장히 의미있는 경험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배우는 것을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지 않던가. 배운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보는 시험은, 시험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테스트 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서 보충하는 계기로 이용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테는 약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시험이 능력을 측정하는 공정한 수단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시험을 통해 능력을 평가하는 종류와 깊이가 한정되어 버리는 것같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는 '설명을 시키면' 확실히 나온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논술시험이 권위를 얻으려면 꽤 많은 장애물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AI가 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학벌도 그렇다. 누군가는 학벌을 노력과 성취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노력과 성취의 원인으로 삼으려 하는 것같다. 후자가 되면 배움의 즐거움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목표를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내 자신이 존재만으로 오롯히 인정받는 게 아니라, 학벌이라는 필터를 통해 2등 인간, 3등 인간 취급을 받는 건 진짜 유쾌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학벌이라는 필터로는 잡아낼 수 없는 능력군을, 필터로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등한시 여기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대단히 무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서울대 법대를 나와도 헌법 해석을 지멋대로 하는 작자들이 생기는 게 현실인지라) 같은 선상에서 내 학벌이 좋아서 1등 인간의 만족감에 취해있는 게 적잖이 위태로운 일인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나의 비판이 학벌주의를 없애고 능력주의를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용할 거라면 제대로 이용하고 부작용은 최소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누군가가 수도권 안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다면, 응당 그 노력을 인정 해 줘야지. (물론 노력을 안해서, 또 다른 이유로 더 좋은데에 갈 수 있었는데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머물러버리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사회제도의 불합리함은 불합리함 대로 고쳐나가고, 능력주의를 표방한 시험과 학벌주의도 제 나름의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개선이 쌓여야 진짜 내실있는 학벌주의, 능력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게 또한 대한민국이 내실있는 강국이 되는 길이 아닐까?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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