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예술가

by 힙스터보살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말이다.


존재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는 것은 존재를 대하는 철학자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은 의미를 자꾸 곱씹게 된다. 생각한다는 것. 무형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그 온갖 상상과 논리화 추상화 등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이 통찰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그 무엇가를 믿는 사고작용 덕분에 쌓은 이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이렇게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존재가 찰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짧은 순간의 반짝임은 누군가에게는 우주와 같은 영감을 준다. 반짝이는 생각이 상상에 그치지 않고 구체화 되었을 때, 삶은 에너지 넘치는 생동감을 만들어 낸다. 상상력의 한 꼭지를 이루는 게 예술에 대한 열정이지 않나 싶고.


예술이여, 상상에 불을 밝혀라!


근래, 아주 오랫만에 전시회에 갔다. 각자 애 키우고 일에 매진하느라 소식이 끊긴 동아리 후배님이 개인 전시회를 연다 하기에 아니 갈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직업인으로서 가지를 하나 더 뻗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니,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마침 수업을 나가는 학교가 10월 10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했다. 동아리 사람들은 그녀의 개인전을 이유삼아 간만에 모이기로 했다. 개인전이 열리는 곳은 성수동이라 했다. 근래 핫플로 떠오르는 성수라는 곳이 궁금하기도 하였고, 아이랑 함께 근방에 수도박물관에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서 나들이를 계획했다.


비만 안 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다소 고생스러운 나들이기는 했다. 이때껏 내가 가본 갤러리는 문화의 거리 어디쯤에 있었는데. 그녀의 갤러리는 시장통 한가운데에 있었다. 몇 십년 전에 시공했을 법한 알루미늄 샷시창과 현관이 관객을 맞았다. 내부는 꽤 좁은 공간이었다. 추상성이 듬뿍 끼얹어진 작품을 보자니, 처음에는 상상의 즐거움보다는 낮선 동네에 외따로 떨어진 듯한 막막함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공간의 느낌이 변하는 경험을 했다. 꽤 즐거웠다.


전시공간은 1층과 2층에 걸쳐있었다. 2층의 맨 마지막 공간에는 설치미술이 있었다. 둥그런 판에는 가볍게 모래가 쌓여 있었다. 그 위에 빛을 내는 다양한 크기의 파란색 원구가 있었다. 원구를 건드리거나 들면 '지지지직' 소리와 함께 판이 흔들렸다. 처음에 아들램은 어두운 방에서 나는 낮선 소리에 무섭다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반복하여 그 장소에 노출되니 나중에는 모래놀이를 하며 작품을 즐겼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원구를 들면 지지지직 소리와 함께 판에 진동이 오는지. 하여 몸을 수그려 판 아래 장치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너무도 친숙한 기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블럭코딩 수업에서 다뤄보고, 작품까지 만들었던 그 아두이노(Arduino)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복잡하게 연결된 전선이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코딩을 배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화색을 띄며 답했다. 해당 작품은 남편이 도와준 거라 했다. 아무래도 미술전시다보니 이런 관점(!)으로 작품을 대한 관객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그녀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남편이 작품완성을 위해 헌신해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꽤 짠했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웠다.


Brain Lightening!!!!


나는 그녀에게 아두이노의 유래를 간단히 말했다. 아두이노가 요즘에는 코딩교구로 많이 쓰이지만, 본래는 예술인들이 만든 거라고. (아마도 설치미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걸 다시 예술인에게서 보다니.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아두이노의 모습에 새삼스러운 감동이 피어났다.


그리고 덧붙였다. 예술도 코딩도 결국 머릿속에 상상한 그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라고. 전자는 감흥과 메시지, 후자는 기능이라는 범주가 다를 뿐이다. 둘이 지향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결국 생각을 존재로 바꾸는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이 상통한다. 어찌보면 예술이 과학과는 거리가 떨어져있어 보이는 분야이지만, 그러한 분야에서 탄생한 아두이노였기에 기존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코딩에 접근할 수 있었기도 하다. 혁신에 있어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가 융합하려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그래서 재미있다. 이것이 괴로움(苦)으로 채워진 인생의 잔재미인가 싶기도?


생각하는 인간이 창조를 한다. 피조물을 창조하는 신이 찬사를 받는다면 인간이 찬사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반짝이는 즐거움을 만들 줄 아는 인간에게 희망 해 본다 :


"빛이 있으라"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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