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짓는 게 광풍처럼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이나 했으면 'B형 남자'라는 곡이 다 있었을까. 그런데 나는 이런 혈액형 성격유형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기는 하냐고. 혈액형 구분방법은 ABO식 뿐만 아니라 RH+/-식, MNS식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방식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고 할텐가? 말이 안되도 정도껏 안돼야지.....
이제는 좀 더 과학적(?)으로 MBTI가 유행을 타고 있다. MBTI는 성격유형 검사의 하나이다.
1. 에너지의 방향 : 내향(Introversion) - 외향(Extroversion)
2. 정보 인식 방식 : 감각(Sensing) - 직관(iNtuition)
3. 판단방식 : 사고형(Thinking) - 감정형(Feeling)
4. 생활방식 : 판단(Judging) - 인식형(Perceiving)
4가지 기준에 경우의 수는 둘 씩 있으니, 2x2x2x2 하여 16가지 성격유형이 나온다. 각 유형별로 강점과 특징이 있고 이게 대놓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이 MBTI를 열광적이리만큼 수용하고 있다. '저는 인프피예요'라고 하는 순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파악한다. 같은 MBTI끼리 '맞아맞아 우린 이렇지'하면서 와글와글한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개개인이 파편화된 요즘같은 시대에, 낮선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MBTI 성격유형이 각광받는 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인 것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MBTI 결과를 보면 좀 갸웃하게 되는 게 있다. MBTI 유형 제목을 가리고 어떤 유형의 특성을 읽어보면, 내가 보기에 이것도 나 같고 저것도 다 나같다. 내가 바넘효과(Barnum effect)에 취약한 탓이라고 보기에는, 나에게는 이러한 모습도 있고 저러한 모습도 있어서 이게 딱히 내 모습이라고 정하기가 애매한 것같다. 나는 일부러 MBTI 테스트를 하면서 나와 반대라고 생각하는 것만 찍고나서 결과를 봤는데, 그것마저도 내 성격유형이라고 느껴지더라.
* 바넘효과(Barnum effect) : 표현이 모호해서 그 표현을 접한 사람이 다 내 얘기인 것같은 효과. 그 예시로는 '포춘쿠키'가 있다. 표현이 모호하니 내 얘긴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곤 한다.
그리고 이런 테스트가 '질문과 응답'에 의한 테스트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도 있다. 통계학에 큰 관심을 두던 대학생 시절. 통계자료를 만들려고 설문지를 만들면서도 체감했지만,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한 질의가 상대방에게 오해없이 전달되게 하는 질문을 만드는 게 의외로 어렵더라.
그렇게 고심해서 질문을 만들어도, 응답자의 상황에 따라 질문을 달리 해석해서 답변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질문 만들기에 치이다보면 하다보면 그려려니 하고 설문지를 만들게 된다. 덕분에(?) 통계가 중요하다고 생각에 더하여, 통계는 얼마든지 대중을 기만할 수 있는 왜곡정보를 만들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응답자의 상황에 따라서도 MBTI는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영업파트에 간 사람은 처음 보는 이에게 쉽게 말을 걸고 금방 친해지니, 그 상황 때문에 나 자신을 외향적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크다. 그런 사람도 요청을 받아들이고 응답해야 하는 포지션에 놓이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인식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또한 응답자는 '나는 이런 식으로 살고싶다'를 생활에 반영되어서 답변이 왜곡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공감을 많이하며 살겠다고 하면, 그 사람이 대체적으로 사고지향적인 사람일지라도 감정형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가 지향하는 모습으로 살아보면 그 모습이 또 내 모습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Feat. <큰 바위 얼굴>,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충족적 예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를 참고하는 건, 대체적으로 MBTI가 그 사람을 반영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ABO 성격진단과 비할 바가 아니지!) 혹,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좀 더 검증된 성격검사를 원한다면 'Big Five 성격유형 테스트'도 해 보시길 권한다. 더하여,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를 위해 나 자신을 파악하기 위한 팁을 좀 드려볼까 한다.
1.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 교내 취업진로 상담실을 찾아가보라, Big Five 성격검사를 무료로 받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 비싼 돈 주고 보는 찐 MBTI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도 있다 (기왕이면 돈주고 하는 게 질문지의 수준이나 해설의 엄밀성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
- 인간관계론/직업과 취업같은 교양강의를 수강하다가 운좋게 성격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 만일 당신이 대학생도 아니고 성격검사에 돈을 크게 쓰고프지 않으면 무료 인터넷 검사도 있긴 하다
- 내가 다녔던 학교도 무료로 검사 해 주는 게 있었다던데, 한창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이걸 몰라서 못 받은 게 못내 아쉽다
2.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 자신의 이야기나 시각을 반영한 글을 AI에 여러 편 붙여넣기 하여 학습을 시킨다
- AI에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분석 해 봐라'라고 명령한다
- 글에 반영된 나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 글에 반영된 모습을 기준으로 MBTI나 Big Five성격유형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역분석도 가능하다
MBTI가 됐든, Big Five 성격검사가 되었든 자기 자신이 이런 사람이구나 인식하는 건 꽤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여러 경험을 통해 '아~ 나는 이런 경험을 할 때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싫어하구나' 식의 파악은 매우 유용하다. 어느 정도 나 자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알고있어야, 평생에 걸쳐 내가 나를 잘 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짓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는 어딘가에서는 ○○○ 어린이의 엄마이고, 어딘가에서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어딘가에서는 ♡♡모임을 이끌었던 방장이었고, 어딘가에서는 수영을 즐겨하는 여성일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만 이럴까? 내 심리나 자아상의 지향점도 이럴 거라고 본다. 나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말하는 일은 약간 조심스러워도 될 것같다. 나는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여지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니까. 이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 Anatta, 나라 특정지을 것이 없다)이지 싶다.
** 이 글은 새로이 도반이 되어주신 마스터INTJ님에게 영감을 받아 남깁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