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살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음을 안다.
그 덩치만큼
경험과 생각이 쌓여있음을 안다.
따끔한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따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따끔한 순간 때문에 곱씹은 많은 생각 덕분에
먼 훗날 그 순간에게 감사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지금 움켜쥐고 있는 이 가시를 내려놓으면
가시가 붙잡고 있는 순간에서 벗어나
감사의 미래가 다가올 것임을 안다.
다행히 나는 그 시절의 어린아이는 아닌 덕분에
하지만 어린아이와 어른 그 어딘가의 사이에 있기에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시간이 흘러 어른에 더 가까워지면
그 때에 비해 어린이였을 지금보다
삶이 더욱 평온해질 것을 안다.
'~싶다'는 가시를 내려놓고 평온에 이르자.
내려놓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걸 안다.
그래도 다행이다.
기다리는 법은 배워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