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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하지 않는 연습

by 힙스터보살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라' 말씀하신 건 이미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느 불자는 스님께 여쭈어보았다. 지금 내가 느낀 이 것이 깨달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요? 스님은 '내가 완연히 깨달았다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내 나름대로는 얻은 깨달음이 있다고 본다.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겠노라 확신하는 나만의 그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깨달음의 피안으로 넘어온 후에도 아직도 더 넘어가야 할 피안이 있음을 알았다. 그게 나의 업장이겠지만... 녹여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지친다.


56390_79435_4749.jpg 낙숫물은 오늘도 바위를 뚫지 못했다. 뚫지 못하는 낙숫물은 1패일까?


아집(我執)은 필히 고통을 낳는다. 아집은 내 의견이 옳다는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 고통이 아집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고 있는 이상 가볍게 뛰어넘거나 돌아가면 그만인데, 나는 좀처럼 그걸 못하고 있다.


방하착(放下着) 하라 하였다. 마음 속에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 하였다. 달궈진 쇠가 뜨거워져서 고통스럽다면 내려놓으면 될 일이나, 아직은 버틸만해서 그런 건지 내려놓지 않고 있다. 내려놓지 않고 기꺼히 고통스럽기로 했으면 차라리 다행인 일이려나? 마음수련으로 맷집만 는게 오히려 독(毒)이려나.


나는 어려서부터 '저건 나쁜거야'라고 생각이 드는 건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이었다. 소심했던 어린이었음에도 가끔 당돌하다는 말을 들었던 건 아마도 저런 태도 때문이었을 거라고 본다. 성인이 된 지금에는 어렸을 적보다 적극적으로 쾌활하게 산다. 좋아보일런지 모르지만 걱정도 된다. 어쩌면 그게, 배척하는 태도를 삶에 적극적으로 녹여낸 결과물일까봐.


최근에 어떤 분과 격한 언쟁을 벌인 일이 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아직도 내 안의 업장(業障)이 소멸되지 못하였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수행법회에서는 도반님들과 '각자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이야기 나누었는데, 나는 여전히 내 어린시절 부끄러운 모습을 다 씻겨내지 못한 그냥 일반인 1에 불과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 분은 어떤 특정한 사안을 좀 강하게 배척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러한 성향을 강하게 배척하고 있다. 그 사람의 성향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 행동은 오롯이 내가 조정하는 영역 안에 속한다. 무시를 하든 수용을 하든 극복의 방법이 여러 가지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내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서는 화가 일어난다. (어...? 쓰다보니 그 분이 나인가 싶은데...?)


아집. 방하착. 업장과 참회. 그리고 수행정진. 알고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아는 거라고는 할 수 있을까. 붓다께서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도 바위를 뚫지 못한 낙숫물은 1패가 서럽다.


img.png 위로의 말씀이 너무 고맙습니다. 말로 포옹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와중에 우연히 보석같은 글을 발견했다. 작가께서 올리신 글이 노래처럼 내 머릿속에 바람을 일으켰다 :


"때때로 우리는
서로를 견디지 못해 멀어지지만,
그 견딤 안에 이미
완성으로 가는 선이 그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거센 저항이
가장 갚은 윤곽을 만든다.
그래서 가장 강한 맞바람이
가장 실속 있는 동반자가 된다"


담담한 문체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였다. 마음이 동하여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좀 더 욕심을 내어 나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여쭈었다. 작가께선 '그저 버텨내고 기회가 온다는 믿음으로 해볼 때까지 한다'는 정석적인 답변을 들려줬다. 아 맞지맞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할 따름이지.

덧붙여, 작가님께서는 오늘도 바위를 뚫는데 1패를 했다고 낙심한 낙숫물에게 1패는 아닐 거라고, 0.1%만큼의 전진이 있었을 거라고 답변 해 주셨다. 아까 전에는 저 답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는데,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읽어보니 까닭없이 눈물이 흐른다.


잘 안 울다가도 한 번 울면 오래토록 찔찔 짜는 것도 어릴 때와 다름이 없네?

이 역시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고있는 과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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