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코딩강사 양성수업을 듣기 시작한 이래로 화수목요일이 매우 바쁘다. 특히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 11시에 수영을 갔다 12시 반 쯤 샤워를 마치고, 요기를 하고, 1시 반까지 수업을 간다. 밥을 편하게 먹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 시츄에이션.
매 번 밖에서 뭔가를 사 먹어야 하는 부담도 있고. 음식을 뭐 먹을지 고민하며 이동하는 것도 하고프지 않다. 마침 남편이 어제 사놓은 분식이 조금씩 남고. 밥솥에 식은 밥도 쪼끔 남아서 남은 음식을 모이 가벼운 점심 도시락을 쌌다.
아뿔싸...! 아 근데 젓가락을 안 쌌네?
생각이 젓가락에 꼿혔다. 젓가락을 생각하니 포크와 나이프도 생각났다. 젓가락은 동양 꺼, 포크와 나이프는 서양 꺼. 더 심플한 건 젓가락, 더 복잡한 건 포크와 나이프. 푸드코트에서 애 꺼 내 꺼 음식메뉴 시킬 때 돈까스가 포함되면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다 챙겨야 하는 때도 있지. 이렇게 식기를 많이 챙겼는데 그 중에 뭐 하나 바닥에 떨구면 그게 그렇게도 싫을 수가 없지 ㅋㅋㅋㅋ (feat. 의식의 흐름)
개인적으로, 심플함은 유목민의 이미지와 좀 더 가깝고 복잡함은 정착농사꾼의 이미지와 좀 더 가깝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시아는 농사와 정주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데 반면에,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목문화의 흔적이 더 많은 것같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목자(양치기)에 비유함도 그렇고 낙농업이 발달한 환경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다면 젓가락의 등장이 아시아에서 있었던 건 왜일까? 아시아에 유목민족의 흔적을 접붙이기 해 보자고 생각하니 문제가 좀 수월하게 풀린다. 생각 해 보면 아시아에 유목의 전통이 없는 게 아니다. 중화사상에 입각해서 유목의 전통을 가진 무리들이 오랑캐 취급을 받아서 그렇지, 북방민족은 아시아 대륙을 자치하던 세력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 유목민이 세력을 규합하면 쩌는 위용을 보여주기도 하고 : 금나라(여진족), 원나라(몽골족), 청나라(만주족)
하지만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비교적 일찍 농사문화가 정착하였다. 유럽이 밀을 주식량으로 삼았던 데 반해 아시아는 쌀을 주식량으로 삼았다. 밀보다는 쌀이 인구부양력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일부지방에서는 이모작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급격한 인구증가와 그에 따른 사회발전의 속도가 빨랐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이 내용은 내가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 지식브런치의 내용이다.) 그래서 유럽에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시아는 유럽보다 앞서있었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아시아에 농경이 완전히 정착을 하더라도 젓가락을 사용했던 '문화'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라는 게 그런 면이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시아권 나라들의 상당수가 젓가락을 사용한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아빠가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면서 콩 집어 옮기기를 하며 압도적으로 정교한 한민족 젓가락 컨트롤을 익혔지 말이다. (엣헴!) 이제는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시기이기도 해서 외국인들이 젓가락으로 식사하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역시도 나에게는 꽤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한편 유럽의 경우 포크와 나이프가 대중화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고 알고 있다. 찾아보니 포크가 소개된 때가 11세기 비잔틴 공주가 이탈리아로 시집오면서 시작된 것이였고, 이 포크가 16세기 프랑스에 전파되어 궁중문화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럽 왕정시대를 묘사한 영화를 보면 테이블에 가득히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져 있고 에피타이저-본식-디저트 순으로 각기 다른 포크/나이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식기의 기원이 이러하다 보니 서민이 본격적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 건 18세기 쯤이라고 한다. 지금이 21세기니까 대중화 된지가 3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라는 것.
애굳이 문화의 우월성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내가 학생시절 역사를 좋아했던 것은, 현재의 상태가 어떤 과거의 사건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게 재미있었을 따름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까 말이다.
젓가락은 체육센터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익혀온 직원분께 어찌어찌 얻어서 밥은 잘 먹었다.
밥은 아침에 아이가 좀 먹고싶다 해서 좀 먹여주고 남은 2/3을 싼 거고, 분식은 남편이 먹다 남긴 튀김과 순대이다. 남들이 먹다 남긴 걸 모아서 먹다보니 약간 그 뭐랄까 분위기가 탁발승 밥 얻어먹고 다니는 기분도 나고 좋다. (부처님이 진지 드실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요? ㅋㅋ)
공부와 과외 동아리 교내장학생을 하면서 시간을 빠듯빠듯하게 쓰던 대학교 시절이 있었다. 어찌나 시간이 부족한지 등굣길에 김밥한 줄을 사서 가방에 넣고, 강의와 강의시간 사이에 먹으며 이동을 했더랜다.
한동안 그렇게 지냈더니 늑막에 결핵이 와서 추석을 대병원 병상에서에서 보냈다. 링거 꼿았던 손등이 팅팅 부어서 결국 엄마께서 머리를 감겨주셨다. 하하! 엄마는 요즘 세상에 결핵 걸리면 못먹고 사는줄 안다고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하지 말랬는데, 내 나름대로는 열정을 불태웠던 대학생 시절의 훈장인 것같아 나름 자부심도 있었다. (미련한 건 인정ㅋ)
요즘 내가 사는 모양새가 그 빠듯빠듯하던 시절과 비슷하다. 수업에, 운동에, 법회참가에, 글쓰기에, 집안일과 육아를 버무리니 장 볼 시간이 없어서 냉장고 파먹기를 하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 내 곁에는 남편이 있다. 남편님아 남편님아, 7월에 강의 끝날 때까지 나 좀 적극적으로 도와주라~ 그동안 아이랑 잘 안 놀았던 거 이번에 집중해서 놀아주우라~ 주라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