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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사랑한다

by 힙스터보살


25년 5월 13일 아침 현재, 작가의 서랍에 쌓여있는 초고를 세어보니 스물 네 개다. 대충 개요만 쓴 것과, 어느 정도 살붙임을 한 것들이 섞여있다. 너무 오랫동안 보관만 하다 발효가 되어버릴까 싶어 얼른 발행하고 싶은데, 강의듣고 애보고 집안일 하다보면 글 쓸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아이가 자는 침대를 빠져나와 PC를 켠다. 고요한 아침에 글을 쓰는 것이 큰 행복일 뿐더러 집중도 잘 된다. 하지만 꼭 이 글만큼은 얼른 발행하고 싶을 땐 저녁에 글을 쓰기도 한다. 다행히 모니터가 두 개라, 왼편에는 텍스트 에디터를 켜놓고 글을 쓰고 오른편에는 아이를 위해 내 친구 꼬모를 틀어준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먼저 눈을 떴다. 무슨 글을 올릴까 서랍을 쇼핑하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하며 글을 와다다다 쓰기 시작하는데. 멀리서 '엄마~'하는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램이다. '엄마 여기있어~'라니까 쪼르르 와서는 '꼬모 꼬모, 꼬모 틀어줘' 이런다.


너는 시방 나에게 몬스터 볼을 던져븐 것이여


소중한 아침시간에 아이에게 유투브를 틀어 꼬모를 보여주는 건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식판도 닦아서 건조기에 넣어야 하고 잘잘하게 처리할 것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집은 TV를 보기 위한 규칙이 있다. 책 10권 읽고 칠교놀이 퍼즐로 모양 1개 만들기. (원랜 책 10권 읽기만 있었는데, 아이가 만 3세가 된 기념으로 할 일을 하나 더 추가 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룰은 내가 먼저 어긴 셈이긴 하다. 일전에 글 쓰겠다고 아이를 내버려두다, 아이가 옆에서 멀뚱히 있는 거 보고 뭔가 좀 미안해서 유투브 틀어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내가 글을 쓰면 옆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학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단호하게 '안돼'를 시전했다.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계속 보고있을 자신이 없어 식판을 닦으러 갔다. 다 닦은 식판을 건조대에 올리고 돌아와보니 바닥에 뭔가가 흥건했다. 오줌이었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오줌도 한 번 싼 거 같은데, 울고불고 난리치는 와중에 오줌을 또 쌌다고? 심지어 오늘은 기저귀도 빵빵한 것이 새벽에 이미 배출도 한 거 같은데. 엄마가 꼬모 안 보여주겠다고 하니까 혹등고래 그려진 종이를 찢어발겼던 아들래미가 바지라도 벗고 오줌을 싼 건가?


(나중에 보니까 오줌이 샌 것같다. 그래도 바닥에 고인 오줌 양이 꽤 흥건했는데... 어제 그렇게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던 것 같은데 ㅠㅠ 아 신비로운 그의 방광이여...)


대략... 미친 건가?


와중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나는... 미친 건가 싶게도, 섹스와 폭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찢어발긴 혹등고래와 바닥에 흥건한 오줌에게 미안할 지경이지만. 떠오른 김에 글을 싸 보자면.


꽤 많은 나라들이 성매매를 불법으로 정한다. 대한민국도 불법이다. 나는 한때 성매매를 굳이 불법이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성매매는 상대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처지에 있던 여성들이 비교적 손쉽게 경제적 기반을 만들 방법이기도 했다. 그도 그렇고, 성인간에 자발적인 행위가 나라의 규제대상에 묶이는 것이 조금 지나친 처사는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성매매가 합법화 된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음지에 있던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올려 성범죄를 예방하고 성병의 확산을 막아 공중보건에 기여한다고 들었다. 때문에 성매매 합법화를 내 나름대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매매 합법화 반대에 약간 더 마음이 기운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사례는 다큐멘터리로 접했는데, 다큐 내용중에 실제 성매매 종사자 분의 인터뷰가 여러 번 나왔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손님들 중에 가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성(性)의 세계를 좀 들여다 보면, SM(Sadist, Masochist)이란 것도 있고, 배가 고플 때 성욕이 더 치솟는 말도 있다. 식욕-성욕-폭력은 인간의 생존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들이면서 또한 어떤 모종의 성격을 공유하는 욕구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당장의 성매매가 성폭력과 기타 폭력을 야기한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성매매 합법화가 폭력의 노출을 방조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굳이 섹스가 아니더라도 폭력적인 성향은 일의 성취, 운동, 언쟁 등으로 얼마든지 녹여낼 수도 있는 일인데. 아주 원초적인 행위를 방관하게 되면 조장과 방조 그 어딘가의 미묘한 지점에서 비극을 만들 확률이 낮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폭력의 사례를 보면 신체폭력과 성폭력이 함께 등장하는 점도 심심찮고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이는 울음이 길지 않은 편인데, 오늘 아침 울음은 유독 길었다. 규칙은 규칙이고 여기에 너도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겨우 3년 좀 넘게 살아낸 아이에게 엄격한 규칙준수를 요구하는 게 조금 지나치다는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때 마침 남편이 사둔 X코파이가 생각났다. 나는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우리 초코빵 먹을까?'하고 물어봤다. 아이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응'이라며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 하나, 나 하나~ 엄마 한 입, 나 한 입~ X코파이를 우물거리는 아이 얼굴에 미소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난 너를 사랑해

이 사랑이 영원해

영원이 행복해

같이 슬퍼해

그리고 또 똑같이 즐거워 해

서로가 웃-기만해

지금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네


아이가 리듬에 맞춰 둥실둥실 춤을 춰 주었다. 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속삭여주었다 :


"엄마는 울 아들이 울어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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