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브런치며 유투브며 여하튼 어디든 본인의 창작물을 올린다. 유투버들은 영상 앞 뒤에 좋아요/댓글/구독을 요청하는 것이 다반사고, 브런치든 블로그든 좋아요와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걍 쓰고 말 일인데 왜 굳이 반응이 필요하지?
타인과의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서?
본인의 훌륭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그것마저도 다 '인정'받기 위해서?
그럼 당신이 하는 모든 창작이, 그 표현이 그저 인정욕구를 자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유투브 피드에 뜨면 일단 클릭하고 보는 분이 몇 분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이동진 영화 평론가이다. 남편이 이 글을 혹시 본다면 뭐랄지 모르겠지만, 이동진 평론가 이 분 좀 사랑스럽다. 꺼병한 눈에 빨간 뿔테안경 하며, 말하는 데 어려있는 강단까지. (아 그래두 우리 남편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거 알쥬?)
이 분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 서점가에 도서구매량이 폭증한 일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게 인상깊었다. 이러한 현상이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문화도 돌아가는 거라고. 본인도 있어 보이는 거 좋아한다고. 털털한 것도 맘에 든다. (울 남편도 털털하지!ㅋㅋㅋㅋㅋ)
'허영'이라고 하면 뭔가 좀 기피해야 할 것같은 이미지가 있다. 우화같은 데서도 허영심 있는 캐릭터는 꼭 끝이 안좋지 않던가. 그래서 아이에게 전래동화나 유명 우화를 읽어주는 게 너무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건가 약간 경계도 되는데, 이건 결이 다른 이야기고 여튼.
내 음악을 들어줄 이가 죽어서 거문고를 끊어버렸다는 백아의 마음에 '인정욕구'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인정욕구'만' 있었을까? 자기 음악에 대한 자부심, 음악에 담은 핵심을 알아보는 종자기에 대한 애정, 그러한 자와 소통할 때 맛보는 쾌감 등.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는 이러한 욕구가 버무려진 채, 후대에는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로 남아 손손히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인정욕에 굶주린 것마냥 치부하는 건, 좀 에바지 않을까?
일반 대중들은 개인PC에 MS를 깔아서, OS(운영체제)라고 하면 MS window를 주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 세계에서 OS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법한 게 리눅스(LINUX)이다. 지금 독자분의 폰에서 돌아가는 안드로이드(Android) OS도 리눅스를 뼈대로 삼아 만든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북한이 만들었다는 OS도 있었는데... 그 이름이 '붉은별'이었을 거다. 붉은별도 리눅스 커널로 만들었다고 ㄷㄷㄷ)
그 리눅스(LINUX)가 대표적인 오픈소스이다. 누구나 보고, 수정하고, 배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Python)도 오픈소스이다. 이들이 오픈소스로 세상에 있어준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참고하며 발전하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공진화(共進化)를 하는 거 아닐까?
내 글이 리눅스(LINUX)나 파이썬(Python)처럼 대단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내 20년 넘는 글쓰기 생활이 결국 인정욕구에 지나지 않았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 막말로 내가 인정욕에 휩싸였다면, 독자를 모으기 위해서 못할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에 연연하지 않고 20년 동안 이렇게 재미없는 글을 쓰는 나도 어찌보면 지독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만들어진 상처, 기쁨, 놀라움 등을 글로 담아내는 건 나에게 너무 재미있는 일이다. 나를 재료삼아 만든 글을 올린 다음에, 그 글을 통해 마주한 누군가와 반짝반짝 빛나는 소통을 하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또 혹시 모르지, 어느 날 어떤 분이 내 글을 읽고 의외의 희망과 기쁨으로 멋진 하루를 보낼런지도. 냉철한 사고로 살아가려는 내 의지와 대조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취미 정도는 좀 누려도 되지 않을까? 아 그것마저도 인정욕구라구요? 에이 좀 봐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