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과 대화가 마치 벽창호와 같이 변해가던 때에, 주변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권유로 그는 결국 상담실을 찾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했다는 것으로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지금 이 상태가 상담으로 처리할 상태가 아니라며 바로 병원을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그는 치료약을 먹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의 병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것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나, 그동안 그가 겪었을 힘듦을 상상하니 무엇이라도 도와주는 게 맞았겠다 싶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돕는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날, 그가 어머니와 옥신각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여친을 소개시켜주는 첫 날부터 이렇게도 못난 모습을 보이다니. 나중에 그를 따로 불러 '엄마한테 좀 잘 해'라며 핀잔도 주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그의 어머니가 그를 대하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았기도 했다. 어머님은 '쟤는 저것밖에 못해, 니가 뭘 안다고'를 뭍혀 그에게 말을 던지곤 했다. 평생에 걸쳐 말로 돌팔매질을 당했던 그에게 분명히 다 낫지 않은 살갖이 남아있었을텐데. 그 살갖에 조금이라도 가시가 닿으면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다고 그의 어머니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잠시였지만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어머니가 띠뜻한 마음씨를 가진 분이라는 것은 모를 수 없었다. 다만 누군가는 잘못된 장소와 잘못된 시간에 만남을 가지어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마주했을 뿐이다.
약을 먹은지 1년이 된 해, 그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약을 줄이는 쪽으로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는 질소통을 어디선가 구해와서 생의 작별을 고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기고 잠수를 탔다. 나는 괴로워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침내 헤어짐을 선택했다. 너를 아끼는 나역시 소중한 사람이기에.
오랫동안 내 마음이 괴로워했던 어떤 이가 있다. 단순히 의견이 다르다고 하기에는 뭔가 결이 달랐다. 불자로서 분별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되뇌어도 가시를 잡을 때 고통을 느끼듯 조건반사적으로 그의 언행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악의 화신도 아니다. 그는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탐독하려는 자이다. 흥미로운 주젯거리를 가져올 줄도 알았다. 때문에 그가 보이는 음과 양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이 그의 음적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탓하고 탓하고 또 탓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 과정은 내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머리가 알아도 도무지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하다보면 되리라 생각했지만, 바위에 막힌 낙숫물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했다. 폭풍같은 감정이 흐른 후에 한 생각 돌이켜보면 그 때는 마음이 조금 나아져서 여유를 가지고 나를 다듬을 영상이나 글을 찾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색수상행식으로 인해 생겨나는 분별심은 곧 생물의 인지과정에서 발현하는 정동과 다름이 없을 것일진대. 생물이 생존하고 번성코자 그런 매커니즘을 형성한 것일 텐데도 이를 내려놓는 게 온당키는 하냐는 반문이 들었다.
이미 2주 전에 즉문즉설 질문자로 선정되어 스님께 직접 질의응답을 할 기회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 질문은 참을 수가 없어 욕심인 줄 알면서도 질문을 올렸다. 질문은 법사님들이 선정하여 스님께 전달하는데, 통상 한 번 질문했던 질문자는 6개월 내로는 다시 선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사님들께서는 내 질문을 선택 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법사님!!)
질문을 다 들으신 스님은 "책이나 유투브나 그런 거 보고 있음직한 소리하지 말고 진짜 문제가 뭐요?"하고 단박에 질문을 바꿔버리셨다. 나는 놀라기도 놀랐거니와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전국 정토회 불자가 모두 보고있는 생방송에서 공식 울보가 되는 상황이란 ㅎㅎㅎㅎㅎ) 생방중이라 그간의 사연은 간략히 말하였다. 스님은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참으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더라.
"좋아하는 것도 고백하는데 싫어하는 것을 고백하면 왜 안돼요?"
같은 질문을 해도 분별심을 내려놓으라고 답변하실 때 있고, 싫으면 관두라고 하시는 답변하실 때도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건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여쭤보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 어떤 때에 분별심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떤 때는 내 마음을 쫓아야 하는지 어떤 분기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법회가 끝날 때까지 찔찔이가 되어있었다.
그 분이 내 전남친과 같은 상황일지 뭔지 나는 모른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알게 되더라도 그걸 알기 이전과 이후에 대하여 딱히 차별하여 대우할 것도 없다. 그 이전의 나나 그 이후의 나나 같이 있으면 괴로워할 건 매한가지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그 분이 말못할 고민이 있는 분이시라면 늦지 않은 때에 적절한 조치를 하셨으면 하는 것이다.
괜히 머무시라고 한 건가싶다. 언젠가 나는 그분께 헤어질 고백을 해 볼 요량이다. 그 분이 소중한 만큼이나 나도 소중하니까. 그 고백에 그가 응하든 응하지 않든 그것은 그 분의 자유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순연히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아 그리고 전남친 소식을 아주 우연히 접했는데. 그는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 그의 전공을 십분 살려 근무중이였다. 그가 그의 인생에 드리웠던 고난을 잘 헤쳐나가길 빈다. 우리 모두 성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