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도플갱어는 영화나 문학의 소재로 등장하곤 하는데,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쌍둥이도 자신과 똑같은 자를 가리키지만 도플갱어와는 결이 다르다. 쌍둥이는 함께 태어났다는 것을 내포하지만, 도플갱어는 태어난 것과는 별개로 복제되어 있는 또 다른 자신을 가리킨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길을 걷다 도플갱어를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엔 놀라움이겠고. 그다음에는 무엇을 느낄까? 짐작 건데 경계심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라고 본다. 똑같이 길을 가다가 나의 쌍둥이를 만났다고 쳐 보자. 그때에도 도플갱어와 같은 결의 감정을 느낄까? 필시 아닐 것이다. 이렇듯 도플갱어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번엔,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누군가의 브런치를 방문했는데 내가 썼던 글과 똑같은 글이 게재된 것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엔 당연히 놀라움이겠고. 그다음에는 무엇을 느낄까? 확신하건대 분명히 긍정적이진 않을 것이다. 해당 복사판 글에 좋아요 수가 천이 넘어가고 찬사의 코멘트가 줄지어 달려있다면? 해당 작가가 복제글로 수익까지 내고 있다면? 그때 느낄 감정은 독자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들은 하나같이 '배타적인 사용'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내 허락 없이는 복제도 게재도 배포도 변형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내 창작물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보존하고, 허락 없이는 함부로 가져다가 쓰지 말라는 창작자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결과일 것임이 분명하다.
외에도 저작권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동발생을 한다는 점이다. 다른 권리들은 획득을 위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반면에 저작권은 창작물이 생겨나는 순간 자동으로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결과물만 보호한다는 점이다. 저작권은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지만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창작물'은 보호한다.
두 번째 특징을 가지고 누군가는 '이 생각 내가 제일 먼저 했는데요? 쟤가 내 아이디어만 쏙 베껴서 이득을 보고 있다니깐요?'라고 반박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어느 작가가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개요와 키워드로 정리하여 서랍에 넣어두었다 치자. 며칠 후 작가가 서랍에서 글감을 꺼내어 글로 완성시켰다. 두 활동에 들인 에너지는 어느 쪽이 훨씬 높을까? 비교할 것도 없이 후자다. 그만큼 창작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요한다. 그게 설령 동전 한 푼 받지 않는 게시글이라도 말이다.
하물며 대중의 인정과 금전적 이득을 위해 며칠을 고심하여 만들어낸 내 음악이, 글이, 영화가 누군가에 의해 복제, 배포, 변형이 된다면? 그동안 소모한 그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어떻게 보상받을까?
심지어 이러한 '저작의 권리'가 법으로 명시된 21세기에도 표절과 무단배포는 판을 친다. 만일 창작자들에게 저작권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없다면, 그들의 창작물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과 유사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오픈소스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뜬금포이지만 우화를 하나 들려주고자 한다 : 어느 양이든 드나들 수 있는 목초지가 있다. 수많은 양들이 오고 가며 풀을 뜯던 목초지는 어느 순간 헐벗기 시작한다. 새로운 목초지에 도달한 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풀을 뜯는다. 양들이 풀을 뜯는 속도만큼 창작의 마당에 어둠이 드리운다. 어느덧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깔리고 난 후에야 양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짚는다.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우리가 이 양들과 같아지지 않기를 바라기에 간절히 바라본다. 저작권을 지켜달라고.
** 본 글은 지난 글과마찬가지로 202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저작권 글 공모전 응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