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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이상한 천재 이상

by 힙스터보살


역사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역사는 개개인의 공헌으로 인해 이만큼 발전했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는 역사라는 건 거스를 수 없는 큼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이 아니었더라도 그 일은 언제가 발생했을 거라는 관점이 있다.


나는 두 관점 모두 수긍이 간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 때의 흐름을 읽는 것은 꽤 훌륭한 방편이지 않던가. 하지만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아니었어도 그 시기즈음 되어서 미적분학은 태동이 일어날만한 여러 조짐이 있었을테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아니더라도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을 집어삼켰을 것같다. (양자역학하니까 이 영상이 생각난다. 꼬옥 보시길 추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슴이 벅차는 감동을 느꼈다!)



양자역학 얘기를 듣다보면 불교적 그 무언가의 냄새가 난다. 참 희한한 일이다.


한국문학사도 보면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많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상을 탔다. 다시 한 번 아주 축하드린다!!! 김구 선생님, 보셨습니까??) 만큼 한국에는 생각의 탁월함을 아름다운 글로 빚어낸 장인들이 많다. 그래서 K-culture가 각광을 받는 것이지 않을까 싶은데, 여튼.


그만의 간결한 문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비주얼적으로 내 최애 문학가는 황순원 옹이다. (잘 생겼어....) 백석 시인이 BTS의 RM 느낌이라면, 황순원 작가는 신화의 김동완 느낌? 정도 얼굴이라면 시골로 내려온 서울 여자아이도 홀딱 반할만 하지 않았을까? (Feat. 황순원 <소나기>, 아아 역시 잘 생겼어....) 하지만 비주얼을 뛰어넘어 요즘 내 마음에 최애로 부상한 문인이 있다. 그는 바로바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다.


그가 쓴 시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 그의 시가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이상의 시를 교과서로 접할 학생의 기분은 1도 고려하지 않은 수록이였지 싶은데. (편집자의 고집이었을까?) 수능처럼 시를 분석하여 그의 시를 들여다보면 이게 뭔 소리야 싶다가, 이게 시라고? 못내 조소를 날렸던 내 부끄러운 과거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상이 달리보인다. 그는 괜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아니었다. 그의 시 중에는 오감도라는 시가 있는데.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가 바로 이 시다. 출품한 당시에도 '이게 뭔 소리야?' 소릴 들었만, 출품한지 약 9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이게 뭔 소리야?' 소릴 듣는 작품이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은근히 많은 것같다. 천재가 쓴 작품은, 천재적인 독자가 나타나야 그 베일을 벗길 수 있나보다. 최근에 나는 이 시를 과학적으로 재해석한 해설을 접했는데. 놀랍고 멋지고 할 거 다한 꽉찬 시와 이를 알아봐준 독자의 만남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해설에 의하면, 그가 쓴 시가 적힌 종이를 잘라 원기둥으로 만들고 이를 도넛처럼 늘리면 규칙적인 수열이 보인다고 한다. (이걸 말아서 도넛으로 변환한 위상수학자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그 수열을 연결하면 수많운 폐곡선이 보이는데, 이게 도넛 표면에서 반복된다고 한다.


근데 더 놀라운 건, 이게 MRI의 원리랑 같다고 한다. MRI는 몸 겉에서 신호를 보내서 몸 안을 들여다보듯이, 이 시 역시 겉면에 보이는 숫자의 나열로 그 내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물리학의 스토크스 정리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쇼츠에 의하면 스토크스 정리란 경계면의 정리만으로 내부를 파악할 수 있는 수식이라고. 스토크스 방정식-MRI-이상의 시는 이와 같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아, 그래서 이상이 전달하고 싶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냐고?


"시인은 겉으로 보이는 사회현상 말고 사회 내부를 진단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직접적으로 말을 못하니까 이렇게 숨겨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와........)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지만, 해몽이 이정도라면 과히 압도적인데?


의정부고 코스튬 졸사의 원조가 바로 이 분들 아니오! 동그라미가 시인 이상이다.


학생시절에, 일제강점기를 배울 때면 가슴이 돌덩이를 얹은 것마냥 답답하고 때로는 눈물이 날만큼 서글프기도 했다. 아마도 이 시기는 한민족의 후손에게는 꽤 오래토록 마음에 남아있을 아픔이지 싶다. 하지만 내게는 이상이 이 시대에 살고갔다는 것만으로 시대의 어둠이 어느 정도 빛으로 채워진 것만 같다.


참으로 이상적으로 이상한 시인 이상이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그에게 반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할만한 이상을 제시한 시인 이상. 그가 부르는 노래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교과서에 싣은 편집자와, 꾸준히 관심갖고 탐독한 독자에게 감사하다. 지금 이 글을 재미없다고 나가지 않고 봐주신 독자께도 감사하다.


아아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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