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어에 담긴 세계

by 힙스터보살


나는 외국에 나가 영어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만 공부한 사람 치고는 영어를 아주 조금은 할 줄 아는 편이다. (조금이라고 했어요, 조금! 많이 아닙니다 ^_ㅠ...) 지금까지도 영어를 꽤 애정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급적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상주 영어쌤께, 아이에게 영어를 들려준다는 핑계로 일부러 영어로 대화를 해 보기도 한다. (신나고 재미있다 ㅋㅋㅋ)


내가 영어와 인연을 맺은 것은 내 인생의 첫 학원인, 나의 유치원 옆 피아노학원에서 시작된다. 피아노 학원에서 웬 영어인가 싶지마는, 피아노와 영어를 둘 다 공략하여 원생을 모집하려는 원장쌤의 신묘한 전략이 탁월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쌤께서는 공책을 하나 가져오라 하셨고, 그 공책에는 그날그날 따라 써야 하는 영/한단어가 붙여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매일매일 영어를 따라 쓰기만 했던 나는,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다.


"Piano. 피...아..노? 선생님, 이거 피아노라고 읽는 거 맞아요??"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방과 후 영어수업을 들었다. 학교수업 시간에는 문법을 중심으로 독해와 작문을 주로 하는 데 반해, 방과 후 영어수업은 회화표현 위주로 진행되었다. 전자도 흥미로웠지만 후자는 더 흥미로웠다. 내가 내 생활에서 표현하고 싶은 말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겠구나. 만일 내가 영어를 잘 쓸 줄 알게 된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 서라도 친구를 만들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샘솟았다.


그래서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던 나의 중학교 시절에는, 국제 펜팔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엠파스라는 검색엔진에서 계정을 만들어,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때 당시에 주고받았던 내 이메일 데이터는 살아는 있을까? 편지를 주고받았던 아이가 남아공 사람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좋았던 느낌만 남아있다.


나는 또한 팝송을 참 좋아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참 좋아한다. 한창 음악에 흠뻑 빠져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국에서 듣는 음악은 뭔가 '거기서 거기'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팝송은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활력제였다. 당연히 따라 부르기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영어는 한국어와는 완전히 다른 리듬감을 가진 단어라는 점, 조음체계도 한국어의 그것과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하도 팝송을 불러대다 보니 발음도 좋아졌다!)


한국어와 영어는 그 각각의 언어에 담은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영어가 어렵다. 영어가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적인 문화에서, 한국인의 개념으로, 한국어를 했던 사람이기에 영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익숙해질 기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내가 오래토록 '대체 쟤들은 왜 저렇게 표현하는 거야 그래?' 싶었던 표현 중에 하나가 가산명사/불가산명사이다. 셀 수 있는 명사는 앞에 'a/an'를 붙일 수 있고, 셀 수 없는 명사는 'a/an'를 붙일 수 없다. 셀 수 있는 명사는 2개 이상이 되면 명사 뒤에 (e)s를 붙이거나 예외적인 복수형을 쓰고, 셀 수 없는 명사는 'a piece of cake, a cup of water'와 같이 가산명사의 도움을 받아 불가산명사의 양을 센다.


이걸 알아도 내 마음속에는 반발심만 들었다. '케이크도 한 개 두 개 셀 수 있잖아? 물 자체는 세기 힘들지만, 한 컵 두 컵 세면 되지 왜 그래?'


그 의문은 몇 년 전에 갑자기 풀렸다. 그때도 '쟤네들에게 분필의 수량을 표현할 때 왜 a piece of 라는 표현을 가져다 붙이는 걸까'라고 자문을 던지다가, '아!!!!!! 분필은 쪼개지지!!! 그럼 그 한 조각 한 조각을 갯수로 치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빵도, 케이크도 동일하게 설명이 되는 것이로구만?' 하는 깨달음이 번뜩 들었다.


다시 말해, 영미 문화권에서는 물건을 셀 때 있어서 아예 쪼개지지도 못하는 것이나(물, 쥬스, 모르타르..), 큰 덩어리에서 떼어내야 하는 것(케이크, 빵, 분필...)을 구분하는 문화가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a loaf of bread, a piece of choke'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영어를 깨작이듯 배운 탓일까... 영어를 유창히 하는 영미권 어린이를 보면 그게 당연한 것임에도 가끔 현타가 온다 ㅋㅋ


영어를 배울 때 문법을 배우는 것은 꽤 유효하다. 문법만 알아도 그 규칙을 통해 다양한 문장을 만들 수 있으니까. S(주어)+V(서술어)의 어순, 문장의 5형식, to RV와 RVing (to부정사와 ing), 수동태, 사역문, 현재분사(ing)와 과거분사(ed) 개념을 어느 정도 알면 기본적인 문장은 다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문법을 안다고 모든 문장을 다 쓸 수 있는 것도, 영미권 사람들이 보기에 납득 가능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법은 영미권 사람들이 반복하는 언어습관 중 그 '일부'만이 영어적 세계관을 내포하고 표현에 있어 규칙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남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일상의 잔잔한 개념이라든가, 아직 틀을 갖추지 못한 idiom들은 문법을 통해 학습자에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일이지만, 어쩌겠나. 배우려면 책을 읽든 영상을 보든, 회화구문을 찾아 학습하든 몸으로 부딪혀야지.


부딪혀도 빨리 늘지 않는 것 같아 조급함이 오는 순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놓지 않고 뭐라도 접해보려 했던 그 모든 지난 시간의 노력을 좋게 본다. 가장 좋았던 건, 영어 덕분에 영미권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가볍게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영어로만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한국어 개념이 묻어있는 경우도 많겠지만) 내가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달라져버린다. 한창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이미 해외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난다.


때문에 나는 영어나 그 외 기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권장한다. 배우는 과정이 꽤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지만, 어느 정도 선에 다다라면 오히려 자유를 선사하는 게 언어학습인 것 같다.


이와 별개로, 우리 그뤠잇 그뤠잇한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한글' 말고,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터 들었다. 국시(國是, 국가의 이념이나 정책의 기본방침)가 홍익인간이라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한민족인데. 천 년 불교 오백 년 유교로 형성된 한국어와 그 안에 녹아든 한국인의 세계관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었기에 6.25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학구열을 지펴 정진하고,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내 한 몸 불살라 개인과 국가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자유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언어를 통한 문화의 여정은 이렇게 또 이어진다.




덧붙임) 수학은 수학기호를 통해 표현한다. 컴퓨팅은 프로그래밍 랭귀지를 통해 표현한다. 이들 또한 언어다. 이들 언어에는 인간이 멋진 세계가 담겨져 있고 이를 탐구하는 자들이 있다. 인간의 문화를 탐구하든 우주의 문화를 탐구하든, 그 과정이 멋져보인다. 늘 응원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팔정도(八正道) 고찰 : 정견(正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