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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Dec 20. 2022

응원할게요

감정 언어 [그냥]

사전적 의미: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대학농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나의 엄마는 내가 우지원 선수와 결혼할 줄 알았고, 그 사윗감은 인기 아이돌이 되기도 했었다. 대학농구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해성같이 등장한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팬클럽이라는 문화에 발을 담그면서 난 나의 전 재산을 바쳐가며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려 노력했고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함께 울고 웃었다.

20대가 되고 나서야 자연스레 그때의 행동들이 참 부질없었구나를 깨달았었다. 하지만 더 나이를 먹고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보니, 머리 굴리며 내 이득을 재볼 생각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내 일이 바빠서, 나의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응원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응원보다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에 더 휩쓸렸던 시간이 많았으리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시기와 질투보다는 응원할 일이 많아졌다. 하얀 백지상태의 아이가 하나하나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가끔 반자동적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응원은 힘찰수록 좋다. 이렇게 다시 응원하는 힘이 길러진 탓일까.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보여줄 책을 고르다가 그림책 하나를 보게 되었다. 여느 그림책들과는 달리 어두워 보이는 그림체에 끌려 뽑아 든 책은 한 장 한 장 쉽사리 넘길 수가 없었다. 책장을 모두 넘기고 다시 앞으로 넘겨서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작가: 고정순’, ‘죽음을 다룬 그림책 이라니…,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에는 “그림책 만드는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작가 소개글이 실려 있다. ‘노동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

이 작가님의 이름으로 검색을 한다.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한 그림책과 그림만 작업한 경우, 자신의 삶을 담은 산문집까지. 여러 권의 책이 있었다. 책의 소재들이 어두운 게 많다고 느껴서 작가님도 좀 다크 할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 본 그녀는 굉장히 예의 바른 해맑은 웃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 작가님의 세상을 더 알고 싶단 생각에 바로 산문집을 주문했다.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다른 누군가를 응원해본 게 얼마만인지.

작가님~ 그냥 전 작가님 응원할게요!^^

‘그냥’이라는 단어가 책임 회피용으로 무책임하다 생각했었는데, 차(車) 떼고 포(砲) 떼고 다 떠나서 ‘무조건’적인 단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마음이 소중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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