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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ludenshomo May 30. 2016

<캐롤>

캐롤예찬문: 사랑이 향하는 곳

 미리 경고하겠다. 이 글은 <캐롤>에 대한 감상평이나 후기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니 내 맘대로 예찬문이라고 하자. 개봉일보다 며칠 일찍 보게 된 <캐롤>은 순식간에 날 매혹시켰고, 결국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거북목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니 부디, 이런 종류의 글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라고 기꺼이 권하겠다. 이런 명작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싶지만서도, 좋은걸 보면 나누고 싶은 선한 의도(는 아니지만)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일단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그것도 그 보수적이라는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측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게다가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믿고 보는)'케이트 블란쳇'이니 말 다 했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을 통해 사회가 갖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거나, 그에 관련한 계몽적인 시사점을 보고싶은 사람이라면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이 작품이 그런 논점들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그를 통해 사회적 주제를 관객들 손에 쥐어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캐롤>은 분명하게도 두 주인공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것의 속성을 탐구하는데 집중하는 영화이다.


 실제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일견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백화점 여직원(남친도 있는)이 한 손님에게 매혹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니. 다소 터무니없게 들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 점이 바로 영화 속 둘의 사랑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테레즈는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시종일관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몇 안되는 친구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는데, 그 대사가 무척 인상깊어 내 오른손을 분주하게 만들었다(받아적느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우린 누군가에게 끌리는지 안 끌리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고 (끌린다는) 그 사실 자체만을 알 뿐"이라고. "그건 마치 물리학같은 것"이라고. 사랑의 보편적 속성과 테레즈의 상황을 정확히 관통하는 표현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영화가 둘의 정사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 또한 무척이나 맘에 든다. 내가 평소에 대부분의 퀴어 영화나 동성애 요소가 포함된 영화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점은 바로 '강조와 과잉'이다. 가령, 동성끼리 신체적인 접촉을 가질 때면 그 순간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어진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연출자의 편협한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캐롤>에선 그런 순간이 전혀 없다. 처음으로 둘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순간도 전혀 외설적이거나 과잉되게 연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만이 가질 수 있는 떨림과 복잡한 감정들을 정말 잘 표현해낸 탁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캐롤>은 수많은 멜로영화들이 성공하고자 했으나 그렇지 못 했던 것을 월등하게 성취해 버렸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를 찾으려는 간절한 눈빛에서부터 수화기 너머를 향한 그리움에 도리어 굳어버린 손과 입,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길만으로 그 사랑의 애틋함과 열정을 표현해내는 것 말이다. 사랑이 향하는 곳은 안정된 제도 속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도, 구혼자도 아니다. 나의 열정이 가리키는 곳, 바로 그 곳이란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사없이도 관객을 설득하고 이해시킨다.


  이 영화를 예찬하는데 이 두 배우가 빠질 수 없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나는 그 잔소리를 기어코 해야겠다. 만약 '우아함'이란 단어가 육체를 갖게 된다면 이 작품 속의 캐롤이 될 것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 위대한 여배우가 아니었다면 <캐롤>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루니 마라'의 연기 또한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관습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이 됐을수도 있는 테레즈란 역할에 입체감과 사랑스러움을 불어넣은 것도 오롯이 그녀의 공이다(영화를 보는 내내 오드리 햅번이 연상됐는데, 실제로 무척 닮은 것 같다). 이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두시간이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연기 뿐만 아니라 1950년대의 뉴욕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의상과 거리 등을 비롯해 이 작품은 흥미로운 점 투성이다.


 결말까지를 다 보고 어쩌면 이 영화는 두 주인공, 특히 '테레즈'의 성장 영화로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 몇 없던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영속될 지 아닐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치않다. 그녀들은 스스로 선택을 했고, 이제 그 결과는 오직 둘만의 문제인 동시에 그 둘의 손을 떠났으니. 우린 그저 그녀들의 사랑이 무사안녕하기를 빌어주는 수 밖에. 부디.                                    





※이 글은 저의 네이버 블로그 '뭐라도 되겠지'(blog.naver.com/hiceo1014)에 게시된 글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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