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늘을 봐주는 사람
예상치 못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와
누나 집에 얹혀살며 불안정한 삶을 사는 '알리'의 사랑을 다룬
<러스트 앤 본>은 특별한 점이 없어 보입니다.
신체적 결핍이 있는 여성과 정신적 결핍을 지닌 남성이 만나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흔하디 흔한 통속적 멜로드라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 이 영화에는 분명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어떤 영화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다루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자신이 원해서 즐기며 하는 일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하게 된 스테파니에게
삶은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기 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남자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뜨겁게 만드는 것을 즐겼지만
이제는 클럽에 가도 누구 하나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찾아오는 친구들이 내색하지 않으려해도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연민은 스테파니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죠.
어쩌면 그런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알리 같은 사람일 겁니다.
자신을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않고 무던하게 대해줄 사람 말이죠.
(실제로 그녀가 영화 속에서 가장 분노하는 순간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다리를 보고는 미안하다고 물러날 때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은 인물들의 전사(前事)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건 알리와 스테파니 둘 다가 과거보다는 현재,
하루 하루 앞에 놓인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알리는 과거와 내일 모레 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고
스테파니는 과거와 내일 모레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녀의 지인들이 스테파니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모두 그녀의 과거를 알고, 그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알리는 (그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녀의 과거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그녀를 현재의 모습으로만 바라봅니다.
스테파니에게 알리는 자신의 과거나 내일이 아닌 오늘을 봐주는 사람인 것이지요.
<러스트 앤 본>에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햇빛을 담아내는 카메라와 그 빛을 받은 두 배우의 얼굴은
장황한 대사 없이도 감정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그런 장면들이 차근차근 쌓이고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도 모르게,
또 보는 이들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가슴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의 대사와 장면은 실로 뭉클하지요.
어떤 과거는 몸에 박힌 유리조각처럼 절대 치유되지 않고 계속해서 따끔따끔 아파옵니다.
그러나 그 아픔 또한 나의 일부이고, 결국 우린 그 아픔을 안고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겠죠.
추천지수: ★★★★ (4)
※이 글은 저의 개인 블로그 '뭐라도 되겠지'(blog.naver.com/hiceo1014)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