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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Oct 22. 2019

'보통의 농구'는 바로 우리의 것!

플레이어F, 페미씨어터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을 중심으로

관람일시: 2019-10-18 (금) 20:00

공연장: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기고자: 조혜인


  '보통의 농구연극'에 대한 단상을 나누기 전에 필자의 마음가짐을 몇 자 적어본다. 본 공연은 제1회 페미니즘연극제에서 만났던 <이방연애>(김문경 작/연출)의 기푸름, 라소영 배우가 출연해서 더욱 애정이 가는 공연이다. 공연장에서 나온 뒤 글감을 다듬는 과정 가운데 가장 큰 고민 하나가 들었다. "과연 이 글을 '레몬 사이다'의 농구플레이처럼 역동적으로 쓸 수 있을까?" 공연에서 배우들이 보여준 땀방울 송글송글 맺힌 다이내믹처럼, 필자 또한 독자로 하여금 익사이팅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코트(키보드) 위를 뛰는 한명의 플레이어(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역동적인 글'에 대한 도전을 가져다준 올해 플레이포라이프의 베스트다.


  무대 바닥에는 농구 코트를 연상시키는 마킹이 있고, 농구골대가 하나 세워져있다. 그리고 업스테이지 상수에는 벤치 하나가 조촐하게 놓여져있다. 무대는 운동장을 연상시키며 아주 단순하다. 공연이 시작되면 재영이 말한다. "저기요, 레몬 사이다는 무슨 맛이에요?"


재영, 연정에게 말을 걸다 (C) 김희지


   재영은 시민리그에 함께할 농구 팀원을 모집하는 중이다. 총 다섯 명이 모여야하는데 한 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재영은 벤치에 앉아 레몬사이다를 마시며 적적한 마음을 달래고있는 연정에게 말을 건다. 연정은 탐탁치 않아하며 자리를 피하지만, 마음을 바꿔 팀에 합류한다. 그렇게 하여 농구팀 '레몬 사이다'가 결성된다. '레몬 사이다'는 각자 다른 배경과 농구에대한 이해도를 가진 여성들이 모인 농구팀이다.


  본 공연에서는 캐릭터 다섯명이 서로 다른 연령대, 처해있는 환경, 하는 일이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러한 공통점을 통해 '농구'가 담고있는 남성화된 프레임을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즉, 본 공연은 '농구는 보통 남성들이 즐긴다'는 인식의 틀을 깨려 한다. 아래는 기획자 나희경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기획의도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기획의도 (C) 나희경 페이스북


  본 공연의 기획의도는 나희경의 어린시절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개인적 기억으로부터 극 중 인물인 환희가 그려진다. 환희는 농구를 정말 좋아했다. 학창시절에는 프로 농구선수를 꿈 꿨다. 하지만 농구를 포기하고싶은 고비를 맞이한 뒤, 현재는 지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환희가 농구를 포기하게 된 계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생략된 전사 속에 기획의도가 채워진다. 또한 "요즘도 농구, 축구 다 남자들만 하는데 환희언니가 좀 특별해요."라고 재영이 말한다. 환희라는 인물을 통해 농구에는 자연스럽게 성별 이데올로기가 씌워져있음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농구를 하는 여자'는 여전히 특별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본 공연이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는 '보통의 농구'는 남성만의 것이 아니라 성별을 초월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즐기는 자는 당연히 내가 즐거이 하는 것에 대해 아는 자다. 농구를 사랑하는 극 중 인물 '환희' 덕분에 관객들 또한 농구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레 습득 할 수 있다.


농구 포지션의 역할

1. 포인트가드: 코트위의 사령탑. 코트위의 상황을 읽어내고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작전을 짜는 역할을 한다. 결단력이 있는 자가 하기 적합하다.

2. 슈팅가드: 포인트가드를 보조하며 끊임없이 슛찬스를 만들어낸다.

3. 스몰포워드: 농구의 모든 요소를 거의 다 잘해야한다. 득점률이 가장 높은 포지션이다. 물론 슛을 잘 던져야한다.

4. 파워포워드: 힘에 강한 포지션이다. 막기를 잘 한다.

5. 센터: 골밑 플레이를 주로 책임지며 팀의 기둥같은 존재다.


   관객들은 게다가 '스크린(막는 기술)'과 같은 농구용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농구와 같은 스포츠는 대개 남성을 통해 배움을 얻고, 그 훈련의 계보가 이어진다. 그 안에서 스포츠에 대한 지식은 맨스플레인(MENSPLAIN)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농구경기에 같이 간 이성애 커플 중, 농구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이 남성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를 생각해본다. 그는 '잠깐, 지금 중요한 순간이야.'라며 설명을 생략하던지,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태도를 깔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던지 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여성이 스포츠에대해 무지하다는 전제로 인하여 여성은 침묵당한다. 유독 '스포츠'라는 카테고리를 만났을 때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다. 그러나 본 공연은 이러한 맨스플레인으로부터 철저히 자유하다. 환희는 농구에 대해 가르쳐들려고 하지 않는다. 농구에 대해 문외한인 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종속관계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며 모르는 부분을 자세히 알려준다. 서로 아는 것이 공유되어야 한 팀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공식사진 (C) 김희지

  시합을 준비하며 '레몬 사이다'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날짜가 다가오며 '레몬 사이다'는 초등학생들과 친선경기를 한다. 그러나 0:39로 참패를 겪는다. 패배로 인해 '레몬 사이다'는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다. 농구를 함께 해오며 속에 쌓였던 것들도 폭발되고, 왜 패스를 제대로 안해줬는지와 같은 자잘한 부분들도 터진다. 결국 혜준, 재영이 차례로 자리를 뜨며 팀은 분열 위기에 처한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코트 위에 한 명, 두 명 농구공을 든 채 다시 모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차례대로 슈팅을 한다. 비록 골을 넣지 못할지라도 "나이스!"하며 큰 소리로 격려해준다. 물론 골을 넣는 순간에도 함께 기뻐한다. 이 때 재영은 외친다. "우리 다시 해봐요!" 드디어 '레몬 사이다'는 시민리그에 출전하고, 코트 위 마지막 6초를 남겨놓고 연정은 클린샷을 날리며 막이 내린다.


  극은 기존의 스포츠 성장 드라마 플롯을 충실하게 따른다. 이들은 '농구'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며 골을 향해 나아간다. 주로 남성 캐릭터들의 여정인 '모임의 성사-갈등-성장-승리'의 플롯을 여성 캐릭터들이 차곡차곡 밟는다. 그리하여 '보통의 농구'가 더이상 남성의 것이 아님을 외친다. 이것은 언제나 남성을 보통으로 상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해나간 스포츠물에 대한 도전이다. 여기에서 '보통의 농구'는 그 누구의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위해 여성 배우들이, 여성 캐릭터들이 땀흘려 뛰었던 이유가 존재한다.


  본 공연에서 개별 인물들의 전사가 더 자세히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연정이 팀에 합류하기까지 내적고민의 과정을 장면화해서 보여주었으면 개연성이 더욱 매끄러웠을 것이다. 싸늘하게 합류 제의를 거절했던 연정이 갑자기 나타나 농구를 하겠다고 결심을 한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환희가 왜 농구를 포기했는지 관객이 장면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역동적인 움직임과 농구씬이 존재하므로 배우들의 농구 플레이 그 자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섯명의 선수들의 움직임 가운데 각자의 삶의 흔적이 묻어나있다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전사의 부족함이 못내 아쉬운 공연이다.


  사실 필자는 작년 3월8일 세계여성의날에 참여한적이 있다. 본 공연을 보고 난 뒤, 그 때 만났던 농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청소년이 떠올랐다. 그녀의 발언 또한 기획의도와 매우 흡사했다. 그녀는 농구를 좋아하는데 여자라서 마음껏 못한다는 말을 했다. 어느날 운동장을 뛰는데 남학생에 의해 도촬을 당하고, 농구를 하고 나면 땀이 나서 옷을 벗고싶은데 남학생들처럼 시원하게 옷을 벗을 수도 없다는 말들이 기억난다. 마음껏 즐기는건 가능하다고 쳐도, 그 뒤에 또 다른 불평등함을 여성은 마주한다. 하지만 '보통의 농구연극'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에서 보여준 '보통' 역전시키기는 '우리 모두 농구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그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브이로그 1부 - 연습 끝!

https://youtu.be/A7OLdUMxY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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