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혜인 Feb 08. 2020

한 개인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서정완 작/연출 <앵커>를 중심으로

본 비평문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상반기 비평워크숍에서 발제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공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2020 상반기 비평워크숍

관람일시: 2020-01-30 (목) 20:00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발제일: 2020-02-08 (토)

발제자: 조혜인


<앵커> (C) 뉴스컬처


1.   들어가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소설의 연극화


   <앵커>는 기자 보조 생활을 했던 서정환 연출의 경험이 녹여진 공연이다. 그는 취재를 위해 예고 없이 찾아가는 기자의 모습을 통해 ‘나도 언젠간 취재를 당하면 어쩌지?’라는 물음과 ‘페이스북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퍼지는 상상’으로 인해 본 공연의 창작을 결심했다. 특히 그는 본 공연의 모티브가 된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를 안준원 드라마터그와 함께 연극화 하는데 중점을 두고 형식을 창조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정부이자 이혼녀인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날 파티에서 한 젊은 남자를 만난 뒤 그녀의 아파트로 데려온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갑자기 경찰이 아파트를 급습하고 그녀는 조사를 받게 된다. 지난밤 그녀가 데려온 남자는 경찰이 찾는 테러범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며 그녀는 갖가지 고난을 겪게 된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삶을 몰락시킨 신문기자를 총으로 쏜다.

  본 공연은 소설의 서사를 그대로 취한다. 심지어 소설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극 중 기자를 살해한 여인 K[2]가 주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설에서는 카타리나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은 것이 중요하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이 74년도에 쓰여졌기때문에 당대의 문제의식이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고민도 안고 가야했다.


2.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폭력성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소설 속 카타리나에 대한 근거 없는 보도는 현재의 핫이슈인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가짜뉴스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거짓, 거듭 반복되는 거짓의 겹을 통해 조회수를 올리거나 물타기를 하는 요컨대, 이득을 취하는 권력이 반드시 존재한다. 본 공연은 이러한 황색언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황색언론은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보도를 함으로서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는 저널리즘의 경향이다. 황색언론 자체도 폭력이지만, 이것이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된 또 다른 폭력을 만났을 때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본 공연에서는 다룬다.

  특히 TV NEWS를 진행하는 앵커는 팩트를 흐리는 언론의 핵심권력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말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고 믿는 인물이며, 언론인이 지녀야 할 중립의 태도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K와의 인터뷰가 심화 될 수록 스스로 만들어놓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앵커가 뉴스를 전달 할 때의 연출 전략을 살펴보자. V자 형태의 테이블 가운데에 앉아있는 앵커는 왼쪽, 오른쪽 그리고 정면을 이용해 시선을 다각도로 분산화하며 뉴스를 진행한다. 그리고 삼 면에 객석이 놓인 무대구조에는 특히 정면에 앉아있는 관객이 볼 수 없는 프롬프터가 양 사이드에 놓여져 있다. 즉, ‘다른 각도에서는 다른 어떤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연출의 의도가 존재한다. 앵커가 다각도로 시선을 바꾸며 뉴스를 진행했던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상상한다. 앵커는 실제로 권력을 쥐고 있으며, 그 권력이란 자신이 입을 떼면 온 국민이 ‘진실’로 믿는 엄청난 괴력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앵커는 국민 보다 다른 각도와 층위에서 볼 수 있는 것(정보)이 많은 인물이다. 극 중 그는 결국 진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전달한다.

  이것은 무형의 폭력이다. 결정적 증거영상을 입수한 앵커는 피살당한 A기자가 K에게 성적으로 추근거렸음을 대화를 통해 명백히 알게 된다. 하지만 영상의 소리를 제거한 채 K가 A기자를 총으로 쏘는 장면만 보도했다. 국민은 결국 앵커가 보여주기 원하는 진실을 보게 된 것이다. K는 도망자 M을 만난 후 끊임없는 무형의 폭력을 경찰과 언론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당해왔다. 그러한 무형의 폭력이 쌓여 하나의 유혈사태 즉, 유형의 폭력을 낳게 되었다.


3.   뉴미디어 시대에 더욱 다양화되는 무형의 폭력


  또한 본 공연에서는 다른 양상의 무형의 폭력이 드러난다. 바로 ‘알려는 권력’이다. 그에 반해, 알려는 권력에 대한 저항은 끝내 유형의 폭력으로 발현된다. 극 중 K는 앵커에 대항해 말한다. “의심을 풀려면 강제로 공개 해야하나요?”, “정의로운 기자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한 개인의 삶이 난도질 되도 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앵커는 그녀의 가해자 신분을 들어 사생활을 밝혀야함을 강조한다.

  극 중 TV NEWS가 K에게 무형의 폭력을 가하는 방식은 다양한 미디어 형식을 관통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다양한 매체 형식—기존 뉴스가 취하는 라이브성이 짙은 ‘밀착 카메라’에서부터 라디오, 유튜브, 그리고 카카오톡 등—을 활용해 그 안에 황색 언론을 녹여냈다. 특히나, 뉴미디어 시대에 유튜브가 등장하며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점차 ‘팩트’는 팩트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즉, 이제 팩트는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하는 의미로서의 ‘팩트’가 되어버렸다. 또한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카카오톡이 어떠한 증거로서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앱이 가진 익명의 기능을 활용하여 유포되는 메세지의 진위여부는 더욱 흐릿해진다. 또한 이러한 익명성은 특정 인물을 성적 대상화하고 마구잡이식 신상털이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K의 졸업사진과 전남편 사생활은 기자들이 익명으로 참여한 카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심지어 K의 성관계 동영상까지 찾는 기자들도 있었다. 다양화 된 매체의 기능만큼 다양화 되는 폭력의 끝은 어디인가.

  소설 속 1974년 시대의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3]가 아닌 극 중 동시대 뉴미디어는 기사의 확산속도, 왜곡성, 독점성에 있어 마녀사냥에 더욱 치명적이다. 본 공연은 소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러한 뉴미디어의 특징을 사용했음이 두드러진다. 과거에 지면이나 공적 방송으로는 수행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K에 대한 모든 것이 빠르게 유포되며 검거 당시 K가 입고있던 녹색 목욕가운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품절로 이어지는 현상까지 다양한 뉴미디어의 성질을 연극에 반영하려는 각색의 시도가 엿보인다. 요컨대, 시대가 변하며 매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그 속에서 양산되는 무형의 폭력 또한 다양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나가며


 소설 속에 드러난 문제의식인 ‘무형의 폭력이 어떻게 유형의 폭력으로 변하는가?’를 어떻게 연극화 시키느냐는 본 공연의 핵심이다. 소설의 서사를 최대한 무대화 하였고 황색언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차별점을 두기 위해 뉴미디어의 특징을 형식화 하여 무대에 개입시켰다. 뉴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무형의 폭력도 그 다양성의 가지를 점차 뻗어내고 있다는 점을 동시대 뉴스 형식 속에서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런데, 앵커가 왜 K를 마녀사냥 하려고 했는지 그 동기가 명확히 묘사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단순히 동료 기자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황색언론의 전략을 취하였는지, 아니면 앵커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는지 모호하다. 또한 뉴스 형식의 방점을 찍기 위해 마지막 부분에 넣은 날씨 장면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뚜렷했던 메세지가 한 풀 꺾인 것 같다. 이는 본 공연이 가진 선명한 장면들의 결 위에 단 하나의 낯설게 하기와 같았다. 또한 처음과 끝까지 사용된 영상들은 현장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순간이 있었으나 연극성과 매체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도 했다. 팩트를 체크하기 위해 뉴스를 보는 대중은 이제 역으로 뉴스를 본 뒤 팩트를 체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언론에 대한 물음을 받은 우리는 다시 대중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미주


[1]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작

[2] K는 소설 속 ‘카타리나’에 대응하는 인물이다. 극 중 K는 베이비시터이자 이혼녀로 등장하며, 병원에서 투병중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3] 기존에 있는 미디어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신문, 뉴스, 잡지 등이 있다. 소설에서는「차이퉁」(Zeitung: 신문) 매체를 통해 카타리나의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지로 실험하는 애국적 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