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2021연극제작실습공연 <J에게...>를 중심으로
<J에게 : 전태일에 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대학로 열린 소극장
관람일시: 2021-06-10 (목) 19:30
배우/공동창작: 강병화, 김연실, 김윤후, 정지우, 구민재, 최성은, 김명준, 신아란, 곽지수, 김용오, 이수현, 윤여준, 정윤서, 이민희
악사/사운드 디자이너: 최서원
본 리뷰는 '관객과의 대화' 세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공연은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학부 수업인 2021 '연극제작실습'(줄임말: 연제실)의 발표공연이자 '제 29회 젊은연극제' 참가작이다.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는 매년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올리는 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연제실의 공연은 학과에서 그 해의 가장 메인이 되는 공연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다양한 선후배 간의 교류를 이루어 기술, 움직임, 학술적 협력을 통해 공연을 창조해낸다. 지도교수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동창작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연출가 '이경성’이 참여하여 학생-배우/학생-창작자들의 공동창작 실험을 지도했다. 그는 2020 SPAF에서 <보더라인>을 통해 '연결성(connectivity)' 특히, '정서적 연결(emotional connection)'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러한 연결성에 대한 실험은 본 공연 <J에게: 전태일에 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하: <J에게>)에도 묻어난다. 그렇다면 공동창작 형식으로 만들어진 <J에게>에서 이러한 정서적 연걸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특히, 전태일-창작자, 창작자-창작자, 창작자-사회, 창작자-관객 사이의 정서적 연결성에 대해 본고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열린 소극장의 긴 계단을 통해 관객들이 입장한다. 화이트 계열의 은은한 퍼넬 조명이 깔린 프리셋이 관객을 맞이한다. 상, 하수 양쪽에는 세로 배열로 흰색 간이 의자가 7개씩 놓여있으며, 상수의 앞쪽에는 키보드와 마이크가 설치되어있다. 하수의 한켠에는 큰 화이트보드가 뒤돌아 놓여있다. 공연은 특별한 큐 없이 배우들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모든 배우들은 마스크를 끼고 자리에 착석한다. 이때, 14개의 의자 중 하나의 좌석이 비어있다.
이민희 배우가 KTS 선언문(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1)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자 배우들이 돌아가며 규약을 읽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창작자의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유전형질, 사회적 신분, 경제력, 경력의 유무 및 정도, 식이 지향, 의복 지향, 병역 이행 여부 등은 차별과 괴롭힘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2)라는 '안전한 창작환경'에 대해 발화한다. 나아가 아무 조건 없이 인간이기에 갖는 권리 즉, '보편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 공연의 제목 <J에게 : 전태일에 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배우의 음성을 통해 발화된다. 공동창작자들은 전태일에 대한 공연의 첫머리에 왜 KTS 선언문을 연결시켰을까? 전태일 당대의 노동환경, 그리고 공동창작자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배우-노동자'의 현실을 창작의 과정에서 직시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공연은 본격적으로 전태일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이때, 전체적인 형식에 있어 '웹엑스'라는 실시간 영상 형식을 채택해 관객과의 연결성을 시도한다. 웹엑스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사용하고 있는 실시간 회의 프로그램이다. 공동창작의 주체들은 자신의 일상과 가까운 기술을 하나의 형식으로 채택한 것이다. 영상 속에는 청계천에 나가 있는 구민재 배우가 실시간으로 등장한다. 그는 특히 빗속에서 '평화시장'에 들렸다. 구민재는 셀프 영상으로 동대문 현장을 탐방하며 전태일의 흔적을 밟는다. 인터넷 연결의 불안정으로 인해 영상은 중간중간 끊기기도 한다. 관객으로서 배우와의 디스커넥트(disconnect)를 경험함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구민재의 현존을 더욱 갈망하게 한다. 동시에 '지금, 저기'에 존재하는 구민재의 존재를 더욱 상상하게 한다.
연결의 안정이 돌아오자, 구민재는 청계천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설명을 하며 관객들에게 빗소리를 들려주려 자신이 낀 이어폰을 청계천 쪽으로 가져다대지만 관객들은 들을 수 없다. 그렇게 구민재는 평화시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점차 전태일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구민재는 말한다. "무언가를 마주하고 있는데,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는 자신이 걸었던 길이 전태일이 생전 걸었던 길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한다. 생과 사의 측량할 수 없는 거리 가운데에서 구민재는 전태일을 감각한다. 길을 걸으며 궁금한 점이 생긴 구민재는 평화시장의 동시대 노동자들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현재 시각 19시 43분,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중에서 불이 켜진 곳으로 다가간다. 구민재는 묻는다. "혹시 전태일에 대해 아시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잘 모른다'는 대답이다. 왜냐하면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는 어렸을 때였고,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영상이 불안정해진다. 그동안 내용을 알 수 없는 관객은 전태일의 흔적에 가 닿기 위해 궁금증이 증폭된다. 다시 영상이 안정궤도에 들어온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던 인터뷰이는 '옛날부터 일 했던 사람들은 (전태일을) 알거지만 자신에게는 완전 시기가 다르다'는 말을 하며, '전태일 재단'이 있으니 거기 가서 내용을 들어보라는 조언을 해준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평화시장에서 좌충우돌하는 구민재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구민재는 다른 노동자와 인터뷰를 한다. "제가 연극을 하나 하고 있는데 전태일에 대해 아시나요?"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이다. 요는, 평화시장이라는 같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전태일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구민재는 발길을 돌려 시장의 골목 안을 보여준다. '명보다방'을 보여주며 전태일이 직접 커피를 마신 곳임을 소개한다. 평화시장 간판이 잡히며 무대 위의 배우들은 스마트폰을 들어 웹엑스에 접속한다. 그들은 화면의 ON/OFF를 반복한다.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배우들은 각자 전태일에 대해 발화한다. 전태일이 홀로 어머니를 안아주는 모습을 재현한다. 전태일의 글이 배우의 입을 통해 교차되며, 근로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과거-현재를 매개한다. 김용오 배우는 노란색 알바*국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는 말한다. "지금 내가 주휴수당, 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전태일의 희생"이라고. 독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머지 배우들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응시하며 독백을 하는 배우와 연결되어있다.
전태일 동상의 코가 구민재의 웹엑스 화면에 잡힌다. OX 게임이 시작된다. 이는 학생-배우들의 사적 경험에 의한 응답으로 진행된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있지만, 예를 들어, '나는 평소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공고문에 올라온 노동만큼을 한다', '나는 주휴수당을 지급받는다', '현재 일하는 작업량에 만족한다' 등 노동의 현실에 대한 유효한 질문들이 펼쳐진다. 보편적 권리를 가진 인간이자 노동자인 우리의 상식적인 기준에서 생각할 때의 정답과는 사뭇 다른 대답들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특히, ‘예상치 못한 추가 작업으로 인해 개인 일정에 차질이 생긴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어, 그것에 대해 정당한 요구를 해본 경험을 가진 자는 1명뿐이었다. '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OX 질문은 씁쓸하게 마무리될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로 이루어진 청년 배우들에게는 노동의 경험이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대다수의 응답을 이끌어내었다.
익숙한 멜로디의 키보드 반주에 맞춰 '노동가'가 시작된다. 배우들은 노래를 부른다. 이어 '노동소녀' 노래가 흐른다. 가사는 이러하다.
기업주는 회개해서
노동조건 개선해♬
인터뷰가 이어진다. 한 명의 배우가 동료 배우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공연은 '배우'이자 '자신'에 대해 무대 위에서 솔직해지는 시간으로 거듭난다. '현재 삶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노동이란 단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은 무엇입니까?'와 같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노동으로 이어지는 사유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한다. 영상에는 인터뷰이의 얼굴이 잡히고, 특정한 상황이 연출될 때는 웹엑스의 배경화면 기능을 이용해 공간을 연출한다. 키보드의 건반이 '띵-'하고 울린다. 김연실 배우에게 질문이 이어진다. '당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나요?' 이 질문에 김연실은 일상을 지내며 얻어진 동작들을 몸으로 표현해본다. 몸을 쓰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김연실은 “나는 내가 너무 좋아”라는 자기 최면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극장에 발산한다.
구민재가 극장에 등장한다. 악사의 반주가 깔린다. 구민재는 노래를 부른다.『전태일 평전』속 전태일의 그림이 화면에 나온다. 구민재에 이어 나머지 배우들이 합창을 한다.
오늘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공연은 구민재의 지원금 소식에 대해서 극중극을 펼친다. 갑자기 기쁜 듯 박수를 치는 구민재는 배우들에게 지원금을 받았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막간극 <어느 젊은 극단의 토론>이 시작된다. 지원금에서 사용될 제작비를 제외하고, 페이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 열네 명의 배우들이 의논한다. 계산해보니 개인당 10만 원 남짓한 페이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실랑이를 벌인다. 페이 지급 대신에 투자를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계약서를 쓰자는 의견이 나오자 계약서 제작 및 작성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는 김명준 배우는 반대를 한다. 페이에 대한 한 가지 안건에서도 열넷의 다른 생각들이 존재하고,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페이라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에서도 마음이 하나로 모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본 공연은 보여준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금액으로, 어떤 항목을, 어떤 합의를 거쳐 작성해야 할지 '서류'의 문제 앞에서 젊은 배우들은 거대한 산 앞에 봉착한 듯 난황을 겪으며 막간극은 끝이 난다.
본 공연은 동시대 사건 리서치에 대해서도 진행한다. 무대는 '지하철'로 바뀐다. Source Four 조명으로 네모난 빛을 만들어 무대는 지하철 칸이 된다. 2021년 3월 25일 이수현 배우의 일기가 펼쳐진다. 이는 이수현이 실제로 경험한 일이다. 장면은 대곡역에서 사고가 난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는데 필자는 이수현의 트라우마틱한 경험을 본고를 통해 불러일으키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개인의 내밀한 경험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을 적지 않을 것임을 주지시킨다. 이렇게 이수현은 무대라는 상처 받기 쉬운(vulnerable) 공간에서 불안정한 이기주의로 치닿는 사회에 대한, 불안정한 내면을 겪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유를 일기를 통해 담담하게 읊조린다.
공연에선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형식을 교차시키며 관객의 흥미를 돋우는 점이 포착된다.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한다. 화이트보드가 등장하며, 그 위에는 계약서에 명시될 법한 문장들이 적혀있다. 그러나, 명목상 적혀있는 계약서 문장 뒤에는 '노동의 현실'이 보이는 문장들이 첨가되어있다. 예를 들어, '1. 규정상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진행한다. 눈치껏' 식의 문장이다. 안전모를 쓴 현장 노동자가 등장한다. 그는 "직원 한 명이 죽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상사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회사의 적자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119 대신 경찰을 부르도록 한다. 이는 '산재'를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산재'는 실질적으로 거의 처리되지 않는 절차임을 필자는 상기한다. 산재 처리를 하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결국, 사고를 입은 노동자는 '적당한' 처우를 받거나 혹은 어떠한 처우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현장 노동자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그 현실에 순응하고, 그 현실을 거스르는 하급 노동자에게 분노하기도 하며 현실에 적응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조건에 순응하면서, 동시에 노동 조건에 분노하며 자신의 온몸과 시간을 노동에 담아내는 것이다. 본 장면에서 상사들은 이런 노동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것일까, 일말의 동정도 인간적 처우의 노력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CCTV를 튼다. 노동자의 사망장면을 보게 된 것에만 '혐오감'을 표출한 채 "저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거 같은데요?"라며 잔머리 굴리기에만 전력한다. 그런데 피해 노동자가 하청직원임을 알게 되자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기뻐하며, 사건을 보고한 노동자에게 시체를 치우고 벨트를 다시 돌리라는 명령을 한다.
이어, S사 백혈병 루머에 관한 입장문을 다룬다. S사 직원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회사가 얼마나 직원들을 위해 잘하고 있는지를 선전한다. 음악과 함께 사람들은 춤추며 환호한다. 반복되는 춤을 통해 임직원의 건강과 관련해 회사가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음을 외친다. 그 사이, 화면에는 머리가 벗겨진 백혈병 환자의 그림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여전히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반도체에 대해 열렬히 찬양한다. "근데요, 뒤에 저기 저 사람 누구예요?" 음악이 멈춘다. 넥타이 맨 직원 셋이 나온다.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서 계속 춤을 춘다. 넥타이 직원들은 회사의 입장을 밝힌다.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마치 꼭두각시가 된 듯 넥타이 직원들 뒤에서 어딘가에 홀린 웃음을 지으며 기계적인 스텝을 밟는다. 현대사회 속에서 사(社)에 종속된 노(勞)들은 영혼 없는(死) 몸짓을 통해 종(奴) 노릇을 하고 있는 철저히 자본에 종속된 노동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본 공연의 대미다.
투쟁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은 각자 1번부터 14번까지 숫자가 적힌 티셔츠를 입는다. KTS 자치규약이 자막으로 투사된다. 오디션 장면이 펼쳐진다. 이 오디션은 얼굴 없는 연출가의 음성과 함께 진행된다. 연출가의 질문이 이어진다. 'Q. 본인이 왜 전태일 연극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한 사람씩 아주 절실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혹은 자신만을 드러내기에 급급한 채 연출가에게 어필한다. 그때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Q. 페이(payment) 없어도 할 수 있어요?
배우 1번이 차비는 주냐는 물음에 '땡-' 소리가 울린다. 배우 혹은 연극계의 현실은 처참하다. 예술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붙잡아 다양한 종류의 착취들이 이루어졌음은 #미투를 통해 만연히 밝혀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배우와 스텝의 '열정 페이'는 관행이라도 되어 투잡을 뛰지 않으면 생계가 불안정해지는 현실을 겪곤 했다. 그러니 연극을 하면 '가난뱅이'라는 현실을 기반한 낙인이 찍히고, 나아가 '딴따라'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예술가를 향한 시선에는 분명 온도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보이는것(예: 수입, 명성, 스펙 등) 만이 전부가 아니다. 진정한 배우라면 공연에 임하기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들을 많이 한다. 대본을 받고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는 시간, 연습실에 나가기까지의 시간과 차비, 연습을 하는 동안의 시간과 노력, 소형 프로덕션이라면 무대 셋업 기간 동안 전문인력이 없을 때 배우가 직접 조명을 달기도 하고, 연기에만 몰두하지 못하고 다양한 잡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것이 연극계의 현실이다.
필자는 연극학교 대학원생으로서, 필자의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연극학교 대학원생들의 처우 또한 열악하다. 학교 프로덕션에 돌입할 때 배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지만, 작가 및 연출 인력이 모자람과 동시에 스탭(Staff)에 기꺼이 자원하는 사람이 부족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졸업요건으로 연기 전공자는 1회 이상 배우로 공연에 올라야하며, 연출 전공자는 1회 이상 연출 혹은 스탭으로 공연에 올라야한다. 필자의 대학원은 연출 전공보다 연기 전공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연기 전공자들은 1회 이상 무대에 서는게 가능하지만, 연출 전공자들은 코스웍 동안 1회라도 연출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필자는 다행히도 1회 작/연출을 하고 나머지 시간동안은 조연출, 조명감독, 다수의 오퍼레이팅에 참여 할 수 있었다) 연출 전공자에게 교내에서 연출을 할 기회란 '나이가 있고', '경력이 있고', '(암묵적으로) 기가 세고' 정도의 권위적 기준에 의해 주어진다. 연출 전공자들에겐 결코 평등하게 1회씩 연출을 해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경력도 부족하고, 나이도 어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마음을 갖고 연출 전공자로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간절해서 살아남는 자'만이 연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대부분의 연출 전공자 대학원생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혹은 생업의 문제로 연출 경험 없이 스탭 활동을 통해 졸업요건을 충족한다.
또한 타 연극학교 대학원은 한 학기에 대학원생만 20~30명을 뽑는다. 이는 교수자들이 전혀 핸들링(handling) 할 수 없는 수요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에서 강제적으로 결정한 숫자다. 심사시 교수자들이 지원자를 탈락시켰음에도 학교가 합격을 시킨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게 모집된 대량의 연극학교 대학원생들은 코스웍 동안 '서바이벌(Survival)'을 해야한다. 심화과정의 실기가 필요한 과정에서 혹은 지도교수의 지도 하에서 논문을 써야하는 코스웍 가운데에서 살아 남을 사람만 살아 남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수료'만 마치고 학교를 떠나는 대다수의 대학원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은 '어느 학교'에서 '연극영화전공 석사 수료'를 했다고 학벌세탁을 하고 다닐 수 있다. 특히 이는 연극 교육계에서 쉬이 행해지는데, 수료자들은 특별한 공연활동이 없는 한 티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자신의 이력에 대학 간판을 내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분야의 현실을 잘 모르는 청소년, 비전공자, 학부모 등은 간절한 마음에 어떤 방법으로든 현혹 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나아가 필자는 대학원 입시에 대한 현실을 나눠보고자 한다. 예를들어, 연극영화 학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강사의 프로필에 'OO대학교 연극영화과 석사'라고만 써있으면 정확한 졸업 여부에 대해 기망의 여지가 있다. 예를들어 진짜 석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석사'라고 표기했을 경우도 있지만, 석사학위 코스웍만 해봤기때문에 '석사'라고 표기해놓은 경우도 많다. 가장 정확한 경우는 수료를 했으면 '수료', 졸업을 했으면 '졸업'이라고 정확히 명시를 해줘야 신뢰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필로 강사의 수료/졸업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대면으로 직접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수료와 졸업의 차이를 아는 학생이라면 적어도 내가 이 선생님한테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배울 수 없겠다는 판단을 해볼 수 있다. 만약 강사가 학사 학위가 있다면 이론 및 관심분야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하는 과정이 아니었으니 즉, 강사가 직접 대학원 입시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대학원 입시과정에 대해 지도를 결코 해선 안된다. 이런 입시학원이 있다면 100% 사기다. 또한 연극 이론과 논문에 대한 감각이 없는―대학원 시절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붙이며 몸만 왔다갔다 하고 시간이 흘러 코스웍을 끝낸―수료생 강사가 대학원생 학생에게 ‘석사학위에 관련된 논문’지도를 하는것은 매우 심각한 기망의 여지가 있으며, 그러한 강사가 대학원 입시생에게 프로포절(proposal) 작성에 대해 티칭을 한다면 기망이며, 강사의 연구자적 능력을 신뢰 할 수 없다. 수료생 강사가 충실히 코스웍을 끝냈다는 전제 하에, 대학원 입시―예: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지도, 연기전공 지원자가 연기 실연을 해야하는경우 연기 지도 정도(강사가 연기전공 출신이라면)―를 봐줄 순 있겠지만, 그것도 수료생 강사가 얼마나 재학 중 연구에 심도있게 천착했느냐에 따라 논문읽기 및 이론 관련한 지도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실 이론적 탄탄함을 갖추어 연극관련 원서를 읽어내기 그리고 프로포절에 대해 심도있게 지도해주는 입시학원이 많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면접 서류심사의 하이라이트는 지원자의 프로포절 작성과정이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경험상 아직까지 한국 연극학교 대학원 입시에서는 철저한 프로포절을 준비해오지 않는 지원자들이 대다수이고, 심사자는 이보다 다른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뽑는 것 같다.
그러나 지원자들 및 현역 연극학교 대학원생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M.A(문학석사)가 아닌 M.F.A(실기석사) 과정이라도 졸업을 위해서는 학위논문이나 이론을 기반한 제작노트를 작성해야하기에 연구정신을 배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이론보다 실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자신의 연구주제를 논문이란 형식으로 지면에 풀어낼 수 있어야하는 Master 단계에서는 부적합하다. 필자의 대학원에서는 Research를 바탕으로 퍼포먼스 창작 작업을 한다. 이론과 현장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에서 연구정신에 대한 배제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입시에서 프로포절 준비를 얼마만큼 해왔느냐는 심사자가 기본적으로 학생의 연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학사 학위 이상의 글쓰기에 도전해볼 것이라는 Master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판가름 단계라고 본다. 그래서 프로포절 준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며, 그 티칭 단계에서는 반드시 지원자의 관심분야로부터 출발해야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강사가 함께한다. 지원자의 관심사를 들여다보고, 그와 관련된 이론을 리서치하고 공부하고, 지원자가 이해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보충설명해주며 프로포절의 형식을 지도해준다. 그렇게 해서 프로포절의 목차가 나오면 논리적으로 걸맞게 목차 순서를 바꿔보도록 지도 할 수 있는 능력도 강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중요한 점은, 대학원 입시는 학부 입시랑 달라서 면접장에서 실기능력의 실현보다는 학부 시험 때 보여줄 기본적인 실력은 이미 경력을 통해 갖춰져있다는 전제 하에, 기존에 가지고있는 이력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진행된다. 요컨대, 입시 학원에서 대학원 지원자에게 학부입시에서 요구하는 트레이닝을 시킨다면 (예: 학부 연출실기 시 단어 하나를 던져주고 그것을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시로 써보기, 시나리오로 구성해보기 등) 그것은 심각한 기망의 여지가 있다. 이런 트레이닝을 시킬 때는 '교수가 글쓰기를 시킬 수도 있다'라는 명목으로 시키는 것이다. 기실 글쓰기 연습을 해보는 것은 입시를 떠나 끊임없이 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학부입시 트레이닝을 하기에는 일순위로 대학원 입시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수행 할 시간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 연출 입시에서는 대개 글쓰기 시험을 보지 않는다 (한예종 제외). 왜냐하면 연출 입시는 이미 가지고있는 실적을 가지고 평가하기때문에 연출 경력, 극작 및 각색 경력 등을 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인터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모전 입상, 작품 올리기 등 관련 경력을 갖춰놓고 대학원에 도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만약 맥락없이 강사가 자신이 유명학교의 교수 아래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말 즉, 근거없이 강사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말을 한다거나, 자신이 사실은 교수라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거짓말을 한다거나, 자신의 수준이나 권위를 세우기를 한다거나, 금전에 대한 수차례의 부담되는 말, 연출은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실질적인 연출입시와 관련없는 보컬 및 무용 트레이닝에 투입시키기, 수강료에 비에 터무늬없이 부족한 입시 교육시간 등 부당함을 겪는다면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다. 입시생들은 간절한 마음에 초창기 부당함에 대해서는 의문점만 가지지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빠르게 하지 못한다.
그 때 가장 중요야하게 상기해야 할 점이 있다. 대학원 입시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결코 학원에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부당한 점이 있다면 바로 학원에서 나와야한다. 대학원 입시 비용은 학부 입시 비용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다수며, 시간이 지체 될 수록 커다란 금전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를 동시에 입을 것은 당연한 바다. 그리고 그 학원에서 나왔을 때, 합격 후 강사가 입시생에게 학원에 이름을 올려도 되냐는 연락이 온다면 단호히 거절 할 수 있어야한다. 이것은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한 사람을 이용하려는 교활한 행위이며, 거절 시 아직도 선생과 제자의 수직관계를 어필하며 만약 어딘가에 신고를 한다고 하거나, 강사에게 받았던 자료를 반납해달라는 요구를 받거나 (이럴 땐 학원에 절대 직접 찾아가선 안된다. 대면해서 또 어떤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 우편으로 붙여주거나, 기실 안 돌려줘도 그만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입시생이 적지않은 금전을 주고 학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신상 및 인격 그리고 앞으로의 연극계 종사생활에 대해 협박을 받았다면 즉시 주변에 알려야한다. 그리고 만약 합격 후 무단으로 학원에 이름이 올라갔다면 이를 발견 시 즉시 학원에 전화해 조치를 취해야한다. 그럴 때, 가해 강사가 어떤 종류의 '거래'를 통해 이름을 내려주겠다고 하면 강경히 대처해야한다. 왜냐하면 입시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을 시 학원에 요청을 해 신상 비공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측은 이를 겸허히 존중해줘야함이 마땅하다. 이를 가해자 측에 또렷히 말해야한다. 기실 합격자(가해 입시학원의 전 수강생) 이름 하나 안올라간다고 학원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동의되지않은 인권침해다. 또다른 대처법으론 만약 실질적으로 입시생의 합격을 이끌어준 강사가 존재한다면, 그 강사에게 사실을 알려 해당 학원의 가해 강사와 통화를 해서 이름을 내리게 하는 방법이 있다.
위의 사례는 실제 사례이며, 그 대처법에 대해서도 논해보았다. 본래도 만만치 않은 대학원 입시 가운데서, 잘못된 강사를 만날 시 수백 수천가지 기망의 여지 속에서 본격적인 연극 공부에 돌입하기도 전에 연극 종사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심리적 피해를 막기위해 일차적으로는 검증된 강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가장 중요한 점은 '자기 스스로 공부'해야하는 시간이 많아야하는 점이다. 특히 대학원 입시에서는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학부 수준 이상으로 되어있는지, 논문 및 해외 서적을 읽어낼 지성이 갖춰져 있는지, 연구 및 학교생활을 선구자적으로 해나갈 자질이 있는지를 본다. 그리고 기존에 현장이력이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에 다시 와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진실되게 어필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학원에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프로포절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주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답변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그 준비단계에서 자신의 연구동기의 추출과 대상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면접 과정을 견뎌내려면 연극학교 대학원 지원자는 입시기간동안 다분히 관련분야의 논문을 읽어내는 연습을 해와야한다. 그런 노력을 해오지 않는 지원자가 대학원에 붙었을 경우, 전공자던 비전공자던 상관없이 대학원의 '논문작성법' 및 전반적인 수업시간, 무수히 다가올 페이퍼 과제 제출에서 제대로 탄로난다. 특히 지원자가 비전공자일 경우 대학원에 입학하여 코스웍에 뒤쳐지지 않도록 입시때부터『연극학 개론』부터 떼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해내야는데, 필자의 경우 외국어 시험을 대비해 Richard Hornby의 『Script Into Performance: A Structuralist Approach』를 함께 정독해나갔다. 영어공부는 새로운 환경에 반응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또한 입시기간동안 자신의 프로포절과 관련된 논문을 무조건 많이 읽어가는 것이 대학원의 모든 과정에서 도움이 된다. 이처럼 대학원 입시는 그 본질을 알고 원칙대로 준비할 시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이던 학부던 입시의 허술한 면을 파고들어 기망의 낚싯대를 던지는 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대학원 지원자의 먼 미래를 바라보며 책임을 갖고 지도를 해줄 수 있으려면 일차적으로 수료생 강사는 신뢰하기 어렵다. 단, 수료생 강사가 믿을만한 대학에서 관련 학부를 졸업했고, 대학원 시절 성실한 태도를 가지고 공연미학 등 자신의 관심분야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문학에 정진해 검증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수료 후에도 이론에대한 지속적인 탐색과 현장작업을 이어나가는 사람이라면 고려 해 볼만 하다. 가장 좋은 변별법은 수료생 강사가 자신의 소논문이나 검증된 비평매체에 이론적 틀을 가지고 공연을 다룬 글을 투고한 경험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사를 구하는 단계에서 자신을 가르쳐줄 강사를 오랫동안 지켜보지 못한 학생은 그의 능력에 대해 심도있게 판단하기 어렵다. 요컨대, 엄청난 수로 연극학교 대학원생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학벌세탁이 쉬워져 누구든 '전문가' 행세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한국 연극학교의 대학원의 현실에 비추었을 때, 양 손으로 세기 힘들만큼 무더기로 입학하는 대학원생들 중 실질적인 학위가 있는 전문가가 되는 자들은 극소수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원 입시 티칭은 다수의 현장실적이 있고, 실질적으로 논문에 대한 경험과 자격이 있는 석사 이상의 '졸업생'이 해야하는것이 가장 바람직함을 재고한다. 그리고 졸업생 강사와 인연을 맺는 경우, 해당 강사의 학위 논문을 반드시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관심분야가 무엇이었으며, 대화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학위 논문 속 사례와 참고문헌들을 통해 자신의 입시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다시 대학원 프로덕션 이야기로 돌아간다. 전공자별 인원 수에 의해 생길 수 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학교 프로덕션에서 스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전반적으로 존재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교 오디션에 발탁되지 못한 연기 전공자가 스탭 인력에 배치되거나, 이미 소수의 스탭 인력이 연출 전공자에 의해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모자라 연기 전공자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배우에게 스탭 일을 부탁하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선 대학원생이 아닌 학부생에게 부탁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일면식 없는 학부생에게 직접 부탁하는 일은 대개 드물다. 그럴땐 학부생은 교수자를 매개로 대학원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부탁을 하는 대학원생과 부탁을 받는 학부생 사이의 신뢰관계를 형성해 놓은 이후의 문제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들면, 어렵게 프로덕션에 섭외된 학부생은 낯선 환경에 들어와 작업 과정 중 대학원생과의 트러블 및 불신의 문제를 겪기도 하며, 이러한 문제가 발생 시 긴밀한 협업의 관계로 나아가기도 전에 대학원생과 학부생은 서로 거리를 둬야하는 경계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같은 학과 내 창조적 연결성이 차단되는 경우로 나아간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 속 무리한 부탁은 낳지 않아도 될 '선(line)’을 만들게 된다. 연극을 할 땐 왠지 '급진적'이어야하고 왠지 '경계(border)'를 해체해야되겠다는 것에 생각을 쏟으면서, 현실에서는 같은 교내 창작자들 사이에 경계들이 두텁게 존재하게 된다. 이는 지향하는 예술과 삶이 제대로 불일치 되는 경우로 나아가게 된다. 만약 대학원 프로덕션 내에서 정말 콜을 하고싶은 학부생 창작자가 있다면 대학원생 연출가 혹은 캐스팅 디렉터가 직접 콜을 해야하며, 사람 대 사람으로 깊은 소통을 이뤄나가야한다. 비어있는 스탭의 자리 혹은 어떤 빈 자리를 고식지계(姑息之計)식으로 채우려다보면 오류가 날 수 있다. 반대로, 협업이 잘 이루어진 이후에 새로운 교류를 함께 모색하는 창작주체들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겠다. 대학원생들이 스탭 역할에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러한 학교 프로덕션의 열악함은 끊임없이 악순환 될 것이다.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기실 대학원 및 학부생의 공연은 ‘학교 공연'이기에 마땅한 페이도 없는 데다가 결국 모든 노동은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극장일에 대한 페이는 '배움의 경험'과 '프로그램북 속 이름'으로 지급된다. 이는 학생이자 공연 창작자로서 경험에 대해 감사한 것임과 동시에 공연작업에 참여했다면 이름 기재는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고, 그다음에 학생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장학금이 제공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필자는 주장해본다. 필자는 이에 대해 독일 함부르크 대학(Hamburg Universität)의 Musik und Theatre(음악과 연극) 학과의 장학제도를 리서치해보았다.
FÖRDERMÖGLICHKEITEN
ALLGEMEIN
Zweimal im Jahr können sich ausländische Studierende ohne deutsche Staatsbürgerschaft um eines oder mehrere der folgenden Stipendien bewerben:
1. Leistungsstipendium der Behörde für Wissenschaft, Forschung und Gleichstellung für Studierende mit herausragenden Leistungen
2. Abschlussstipendium des DAAD aus Fördermitteln des Auswärtigen Amtes für Studierende, die ihren Abschluss im laufenden oder dem nächsten Hochschulsemester planen
3. Stipendium für besonders engagierte Studierende (DAAD-Stipendium aus Fördermitteln des Auswärtigen Amtes für Studierende, die sich besonders für andere engagieren und gute Sprachkenntnisse haben)3)
일반적으로 독일 시민권이 없는 함부르크 대학 학생들은 일 년에 2번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으며, 뛰어난 성과를 내거나 졸업 예정이거나, DAAD(주한독일고등교육진흥원)을 통한 장학금의 기회가 있다. 그리고 독일 시민인 경우 더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그들은 1 년 동안 매달 300 유로4)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특별한 노동 없이도 자국의 '학생'으로서 학생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연극학교 대학원생이라면 미국 연극학교의 장학 시스템에 대해서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학원생이 극장에 상주하며 공연일을 할 때 그 보수를 장학금으로 받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는 노동의 유무와 관련 없이 '국민'이라면, '학생'이라면 기본적인 재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
<J에게>로 돌아간다. 공연 속 오디션이 계속 진행된다.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전태일'에 대해 표현하기를 요구한다. 전태일이 어머니와 상봉했을 때의 얼굴, 전태일이 학교를 그만두려다 아버지께 맞을 때의 얼굴에 대해서 표현해본다. 6번 최성은 배우는 연출가의 부당한 요구들에 불편한 기색을 내내 표현하고 있었다. 최성은의 표현과 표정은 지속적으로 부동했다. 디렉션은 계속 이어진다. 전태일이 화형식을 치르기 전에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의 얼굴, 전태일이 화상을 입고 어머니를 마주했을 때의 얼굴, 전태일이 지금 이 극장에 있었다면 하고 있었을 얼굴이 열네 명의 배우들에 의해 각양각색으로 표현된다. 이수현의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 고인 얼굴, 김윤후 배우의 결의에 찬 얼굴 등 열네 명의 전태일들이 동시대 무대 위에 나란히 서있다. 최성은은 한결같은 표정을 취하며 무대 앞으로 나와 평전을 집어 들어 내용을 읽는다. 결단의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 전태일과,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결단 즉,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리라는 그의 굳은 마음이 공동의 연결성을 띄며 변주되는 장면이다.
키보드의 음계가 건드려진다. 배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대는 어스름한 달빛을 받는 하루의 끝자락처럼 변한다. 청년 배우들은 각자 주저앉아있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 오디션이 끝난 후의 공허함, 어떤 결과가 올지 모를 청년 배우의 불안함, 내일은 어떤 하루가 다가올지 모르는 젊은 날의 두려움, 뭐든지 혼자 버텨내야만 할 것 같은 외로움이 물씬 풍겨 난다. 기실 청년의 시기는 불안함의 연속이고, 불안의 끝은 '사춘기'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무대 위 열네 명의 청년 배우들의 모습은 전태일 한 명의 고독으로 수렴한다. 전태일은 어떤 형상으로 자신의 삶과 내면을 직시했을까? 혹시 열넷이 취한 그 모든 모습들은 전태일이 모두 겪었던 하루들이지 않았을까.
에필로그에서는 배우들이 각각 J에게 독백을 한다. 독백을 하는 배우의 곁에서 동료 배우는 비눗방울을 불어준다. 배우들은 각자만이 가진 고충과 이야기들을 J에게 털어놓는다. 전태일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민, 외로움, 고독이 다시 한번 짙게 배어난다. 창작 중 자신만의 독백을 만들어내는 과정 동안 열네 명의 작가-배우들은 전태일에게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을 테다. 전태일이 느낀 고독은 더 이상 전태일만이 홀로 지고 갔을 짐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임을 드러낸다. 청년의 시기를 겪는 배우들 각자의 내면에 깊게 새겨진 고독과 고민들이 전태일에게 발화되며, 전태일을 가깝게 느끼고, 전태일에게 친구처럼 다가간다. 정윤서 배우는 J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친구로 만났으면 좋겠어.
다른 시대를 살며,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역사 속의 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서 속에 오롯이 누군가로 남겨진 전태일을 본 공연을 통해 감각하게 된다. 공동창작의 작업 과정을 통해 배우들은 전태일과 감정적 연결을 형성한 것이다.
J에게 모든 독백이 종료되면, 배우들은 하나로 모여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천천히 벗기 시작한다. 마치 번데기가 새로운 피조물로 부화하듯, 천천히 허물을 벗고 새롭게 비상할 준비를 하듯, 티셔츠가 얼굴 위로 쭉 펼쳐진 채 배우들은 양 팔을 위로 힘차게 뻗어낸다. 이는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지르며 온 몸을 비틀었을 모습을 슬로우모션(slow-motion)처럼 형상화 한 것 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열네 명의 청년배우들은 이를 단순히 비극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전태일이 거센 화염 속에서 치뤄낸 대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현재까지 일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새로운 내일과 희망을 향해 나아갈 청년 배우들의 기상으로 본 공연은 마무리된다.
본 공연을 관통하는 정서적 연결이 관객을 향해서 가려는 시도는 연극이 끝난 뒤에도 펼쳐진다. 필자의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조가희 드라마터그의 진행에 의해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관객들의 뜨거운 질문이 이어졌다. 필자는 관객과의 대화 세션까지 본고에서 다루고자 한다.
Q. 시대상에 대한 접근 등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배우:『전태일 평전』을 통독하고,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전태일 기념관을 방문해보기도 하고, 학술팀의 리서치로 귀한 논문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친구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윤서 배우가 전태일을 실제로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정윤서 배우: 어떤 말보다 따뜻한 포옹을 건네고 싶습니다.
Q. 공동창작의 과정에서 어떻게 열네 명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서 형식을 만들어냈나요?
신아란 배우: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표현이 나오고 그것이 취합되었습니다. 연출부와 교수님을 믿고 거짓 없이, 배우로서, 노동자로서 했습니다. 특히 워크숍을 활용했습니다. 평전을 각자 읽고, 오디션도 진행하고, 스탭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평전을 한 단락씩 소리 내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태일과 나> 에세이를 써서 토론도 했습니다. 토론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전태일) 공간에도 가보고, 가해자 탐구도 해봤습니다.
Q. 구민재 배우에게: 진짜 청계천에 갔다 오신 건가요?
구민재 배우: 네. 그런데 그 목적이 전태일을 직접 소환하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그곳의 체취들이 묻어서 관객에게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순탄치는 않지만, 그게 묘미이기도 합니다.
Q. 어떻게 마무리에 도달할 수 있었나요?
김명준 배우: 마무리나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열넷이 모여 정말 많은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좋은 형식보다는 저에게는 '가장 솔직해지자'가 모토였습니다. 포커스가 '어떻게 하면 전태일과 나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었을까?'였습니다. 마무리나 마침점은 저에게 없습니다.
Q. 연극을 준비하면서 어떤 감정이 따라왔고,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 김윤후 배우: 안타까움.(이 따라왔다) (전태일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일찍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전태일처럼) 일상적인걸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시대의 태일이 들을 만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구민재 배우: 살면서 '전태일을 아세요?'를 제일 많이 해봤습니다. 이제는 정말 태일에게 전하는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윤여준 배우: 저는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일을 만나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기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최성은 배우: 감사함. 나 스스로 떳떳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정윤서 배우: 사랑. 다양한 사랑의 형태들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자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종료-
본 공연은 공연과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순간마저 전태일과의 '연결성'에 대해 사유했던 배우이자 '자신'에 대해 솔직함으로 채워지는 시간으로 가득했다. 자기 자신이 어떤 감정을 발견했는지를 관객들과 나누며 관객에게도 어떠한 '정서'를 심어주려는 연결성을 창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태일은 자신의 낙서에서 '연극'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에 대한 대목에서 '연극'을 말한다.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고로,
될 수 있는 대로 슬픈 연기를 하지 말고,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대중을 위한 연기를 하자.5)
본 공연에 출현한 열네 명의 배우 및 모든 스탭들은 본래 이 대목에 충실하여 연극을 제작한 게 아니었을까. 솔직 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더욱 솔직 할 수 없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던 배우-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전태일과 마주했다. 전태일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교차했지만 연민에 빠지며 비극을 벌이지 않았다. 자기 양심에 맞는, '자기가 될 수 있는' 연기를 했다. 관객은 그 진정성에 연결되었고, 땅으로부터 천국(heaven)에 있는 전태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1) KTS 워킹그룹(Korea Theatre Standards Working Group)에 의해 만들어진 규약. KTS 워킹그룹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공연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며, 이들은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위계와 폭력,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공연예술 현장의 목소리에 주목하여, 현장에 맞는 자치규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KTS 워킹그룹,『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2020. 9, 9p
2) KTS 워킹그룹,『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2020. 9, 13p
3) https://www.hfmt-hamburg.de/bewerben/foerdermoeglichkeiten/4
4) 40만 5,558원 (2021-06-11, 23:00, 하나은행 기준)
5) 조영래,『전태일 평전』, 아름다운 전태일, 2010,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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