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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Jul 19. 2021

육체성(die Körperlichkeit)

『수행성의 미학』을 중심으로

    본고는 2019년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연기예술학과 '현대공연예술미학'(교수자: 남지수) 수업을 통해 작성한 레포트다. 독일의 연극학자 에리카 피셔-리히테(Erika Fishcer-Lichte)의  저서『수행성의 미학』을 중심으로 '육체성(die Körperlichkeit)' 파트에 대한 요약과 단상이다. 


    저자는 배우의 현상적 신체를 강조한다. ‘현상’이란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상이란’ 탈은폐(알레테이아’)이자 ‘진리’를 드러냄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연구는 무엇보다 체현 과정과 현존의 현상이라는 육체성에 집중한다. 육체성 파트는 크게 세 가지의 소제목으로 구성된다. 첫 째, 체현(Verkörperperung), 둘 째, 현존(Präsenz) 그리고 셋 째, 동물-몸(Tier-körper)이다. 


Jerzy Grotowski, <불변의 왕자 (Książę Niezłomny)>(1965) (C) Teatr Laboratorium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1998), (C) Gruppe Societas Raffaello Sanzio


    과거의 연극에서는 하나의 인물을 완벽히 구연하기 위해 배우 고유의 현상적 신체는 무대 위에서 사라져야 했다. 텍스트에 복무하는 기호운반체로서 배우의 육체는 인식되었다. 과거의 체현이란 배우의 역할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변한다. 새로 정의된 체현 개념은 수행적 행위로 나타난 모든 것, 무엇보다 공연 중에 행위자의 신체로 드러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Erika Fischer-Lichte (C) Art50.net
Hans-Theis Rehmann (C) La Universidad Nacional de las Artes


    공연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 지금 여기의 관객에게 지각된다. 공연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현재성’, 이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절대적인 현재성 속에서 일어난다. 현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현존은 일종의 현상의 문제인데, 이것은 육체와 정신/의식의 이분법에 전혀 맞지 않은 현상이며, 오히려 이러한 이분법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배우 사이의 강하고 밀도 높은 현존은 육체와 정신/의식의 대립을 제거하면 그 배우의 현상적 신체를 체현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이 주장의 기저에는 ‘인간은 체현이다.’라는 명제가 놓여있다. 인간은 그 자신의 육체나 정신으로 축소시켜 규정할 수 없고, 정신과 육체가 싸우는 전쟁터로 규정해서도 안된다. 정신이란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신체 안에서 그리고 신체로써 표현된다. 관객은 연기자의 현존을 경험할 때 연기자의 체현을 경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체현을 느낀다. 이는 행복의 순간으로 체험된다. 수행성의 미학은 현존의 미학이지, 기술 매체가 선사하는 현존효과의 미학이 아니다. 즉, ‘출현의 미학’일 뿐, 허상의 미학이 아니다.


Marina Abramović <용의 머리 (Dragon Heads)>(1990-1992)> (C) Artsy


Josheph Beuys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은 나를 사랑한다>(1974) (C) Coub

    동물은 연출 전략으로 제어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관객에게 특별한 자극을 준다. 동물의 육체는 신비한 ‘현존’의 힘을 강력하게 발휘한다. 동물은 근원적인, 신비로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는 관객의 주목을 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동물의 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 예측 불가능성이 드러날 때 인간의 육체처럼 사건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동물은 끊임없이 창발 현상을 생성한다. 창발은 미리 알 수 없고, 동기 없이 떠오르지만, 때로는 나중에 그 설득력이 드러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배우가 동물과 동등한 관계로 교감을 수행할 때 에너지의 교환이 일어난다.


    그런데, 공연에서 행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무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배우의 현존을 느낌으로서 나의 현존을 느끼는 것만이 행복인가?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또한 지난 챕터 「접촉성」을 떠올려본다. 여기서는 관객-무대의 Frontness가 아닌 관객-관객의 sideness의 강조를 느낄 수 있었다. 육체성의 담론도 sideness의 개념으로 확장하여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 기독교적 관점과 관련하여 논의를 전개한 부분도 두드러진다. 극장과 교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그 차이는 ‘내가 현존(지금 존재)하는 자리에서 옆 사람과의 관계’이다. 대게 극장에서는 옆 사람을 공연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른 척한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옆 사람의 현존을 인식하고 관계 맺는다. 그들은 ‘성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 제의하고, 제단을 바라보는 ‘관객’이기도 하다. 공연과 긴밀히 연결됨을 다시한번 느낀다. 공연 담론은 무대와 관객에서부터 관객과 관객의 관계를 규명해주는 역할로 나아가야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Erika Fisher-Lichte 저, 김정숙 옮김, 『수행성의 미학 (Ästhetik des Performativen)』, 문학과지성사, 2017, 170-239쪽.

Gruppe Societas Raffaello Sanzio,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 Youtube, 1998,  https://youtu.be/xt1hKO2dv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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