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드웨이 (富'roadway X 조다은
#연극 #부동산 #연극과현실 #아빠 #일상의전문가
본 연극리뷰는 공연예술글쓰기 인큐베이터 <드라마인(dramaㅅ)> 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rama-in.kr/2024/02/bou-roadway.html
아빠, 나, 계속 연극해도 서울에 집 하나 살 수 있을까?
<부로드웨이(富'roadway)>는 아로웍스 조다은 연출의 입봉작이다.
입봉작부터 연극에 대한 고민이라니, 청년 창작자로서 가장 강렬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본 공연에서는 연극하는 딸을 위해 부동산 아카데미를 여는 55세 공인중개사 조성진이 등장한다.
부동산으로 잘만하면, 네가 좋아하는 연극, 걱정 없이 할 수 있어.
비현실적인 생각과 실험을 형식이라는 현실로 만들어내는 연극.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과 고난을 비현실처럼 느끼게 되는 부(富).
이러한 대립적 가치 어느 사이를 그려내는 본 공연 속에 아버지父가 존재한다.
프리셋(preset: 공연 시작 전 무대가 세팅된 상태, 즉
관객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가장 정결한 제단과 같은 연극이란 제의의 시작)에서
윤희지(조다은을 대변하고 있는 배우. 이하: 조다은)가
핸드폰을 하며 무기력한 듯 베란다 입구에 앉아있다.
그는 부동산 프로그램으로 종로구 홍파동 일대의 집을 알아보고 있으며
이 화면은 무대 중앙 벽에 영사되고 있다.
또한 주식, 비트코인, 호갱노노 어플이 교차되며
실패한 주식과 비트코인은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 꿈꾸기엔 너무나 어려운 내집마련의 현실을 나타내며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을 단절시켜버린다.
바닥에는 게임 판을 연상시키는 무대의 중간에는 동그란 방석들이 모여있으며,
관객이 저마다의 존재를 내뿜으며 공연에 참여할 것임을 암시하듯
알록달록 무대 위를 물들이고 있다.
조성진은 조다은 연출의 실제 아버지다. 조성진은 극 중 조성진 역으로 출연하여
마치 명절에 여러 자녀들과 함께 오순도순 놀이를 하듯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년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푸근한 진행으로
부(富)루마블 게임을 벌인다.
조성진이 부루마블을 진행할 때 틈틈이 그의 성격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매매의 기회를 놓친 관객에게 "집을 빨리빨리 사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진행이 더디어질 때면 관객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의 적극적 성품이 돋보이는 요소들이 나타나는 순간에는
연기와 실제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가진 실제 당사자가
무대에 등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연기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연극학자 남지수는 이에 대해 '즉, 연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는 것이다.'(남지수. 2017. 158)
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당사자가 등장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 당사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어떻게 무대 위에 드러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관객을 직접 움직이게끔 하는 힘이 있는 참여 연극 <부로드웨이>는
부동산 즉,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이라는 개념을 다루지만
관객이 보다 능동적으로 부동산을 접할 수 있게끔 한다.
부루마블을 통해 갭투자와 부동산 경매 개념을 습득한다.
부루마블 판에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
대치 은마아파트, 압구정 현대 아파트 등
현재 재건축으로 열기를 띠는 지역의 아파트들이 존재하고
참여 관객은 주사위를 굴려 직접 판에 나열된 집을 갭투자 방식으로 산다.
게임 도중 금리가 변동될 때 미리 집을 매매하지 못한 관객은 후회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조성진은 극 중 딸과의 대화에서
담담하게 딸에게 현실을 말해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소화한다.
극 중 조다은은 연극과 생존의 고민을 넘어
부동산의 생리에 대해 분노한다.
경매라는 시스템이 결국 세입자를 쫓아내야 하는 점,
부동산 전세 사기, 연극으로는 생계를 온전히 유지하기 힘든 현실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조다은의 감정의 파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때, 조성진은 딸의 혈기를 잠재우기 위해
부동산의 긍정적 측면을 들어
세상이 어떠하게 돌아간다는 점을 설명해 준다.
이처럼 본 공연에서는 청년 연극인의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쩌면, 이러한 분노를
연극이란 형식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그럼에도 좋아하는 연극을 하고자 하는
아티스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저항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
섬세한 완급조정이 요청되는 부분이 있다.
극 중 청년 연극인의 고민 '연극으로는 내 집을 마련하기 힘든 점'
그리고 '부동산 피해에 대한 분노'를
대사만으로 압축하여 드러낸 점이 다소 아쉬웠으며,
이를 분노함에 있어서 두 인물사이의 세밀한 브레이크가 있었다면
극 중 조다은이 지닌 고민의 층위가 더욱 풍부해졌을 테다.
예를 들어, 조다은이 아버지의 근거 있는 설득에 때로는 납득하는 모습과 함께
화를 절제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현실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을 테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모습이 있음에도
그 현실에 대해 발화하고 뛰어넘고자
연극으로 저항하려는 시도 자체가
연기자의 대사와 표현을 넘어
한층 깊이 있는 암묵적 분노의 층위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성진은 아버지로서 조다은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한다.
비록 부(富)를 근거로 설득을 시도하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딸을 향한
부(父)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로서 경험한 부동산은 결코 양심과 따뜻한 세상을 지향하는
온정적 수단인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딸의 힘겨움을 덜어주고자 연극으로의 여정에 까지 동참하게 된 것이 아닐까.
조성진은 공인중개사라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일상의 전문가다.
일상의 전문가(expert in a daily life)는
동시대 연극의 경향에서 포착되는 공연자의 양상 중 하나다.
독일의 연극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은 진즉 이러한 일상의 전문가들과 작업을 해왔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일반인 배우 캐스팅은 그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Cargo X> 시리즈에서는 화물 트럭수송 기사를,
<크로스워드 핏 스탑>에서는 젊은 시절 레이싱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인들을 캐스팅하였다.
극 중의 조성진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만 있어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하기에
투잡으로 대리운전 콜이 배치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조성진에 대한 허구일까?'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그는 콜을 받으며 담담히 말한다.
위기에 움츠러들기보다
돌파하며 나아갈 때 기회가 온다.
조성진은 공인중개사라는 사회적 위치를 뛰어넘어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일상의 전문가다.
본 공연에선 조성진을 일상의 전문가로 바라볼 수 있는 두 개의 겹이 존재하는 바다.
조성진이 가장으로서 현실에 대한 위태로움과 그것을 돌파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향한 담담한 선포와 같은 대사를 남길 때
그만이 지닐 수 있는 불안한 현존은 진정성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자기 이야기' 형식을 지닌 <부로드웨이>는 특별한 연극적 사건을 꾸며내기보다
사건을 초월하는 부녀간의 삶의 한 대목을 그려낸다.
극 중 조성진과 조다은이 서로의 양손을 마주하고 두 눈을 바라보며
인생이라는 게임 로드맵의 한 좌표에 서있을 때
공인중개사라는 사회적 지위로서 조성진을 바라보는 게 아닌,
누군가의 아빠인 조성진을 바라보는 관객이 생겨난다.
딸과의 기억과 경험을 무대 위에서 드러내기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조성진은
연극에서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기보다 한 명의 공인중개사로, 아버지로
연극이란 과정을 통해 딸 조다은 연출과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 나간다.
연극이 가정, 일상, 관계 곳곳에 침투하여 그 일상을 더욱 공고히 기억하게 한다.
일상을 새롭게 세우고 있다. 이것이 <부로드웨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연극의 힘이다.
<부로드웨이>는
부(富)를 말하고 있으나,
부(父)를 말하고 있다.
[ 부로드웨이(富’roadway) X 조다은 ]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연극을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을까?
창작/연출 #조다은
드라마터그 #한지혜
무대 #박동수
조명 #권서령
음악 #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