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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Nov 04. 2016

정치와 행복

<두장의 타임라인> 11월 5일

2016년 <한국시리즈>는 허망하게 끝났지만 치맥을 계속 필요한 가을밤입니다. 시시각각 검찰과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그 어느 드라마 보다도 다이내믹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에 뜨겁게 불붙은 전 국민의 관심으로 분노의 촛불은 횃불이 되어가고 있지만, 우리의 여왕님은 두 번의 간결한 허리 숙임에 의해 이 국면이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무서운 청소년

집사람은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저와 연예를 하던 시절에 학원과 과외교사로 제가 벌고 있는 월급의 3~4배를 넘는 페이로 <교육 선진국?>의 특혜를 톡톡하게 누리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은 가르치는 일을 접었지만 어떤 계기로 해서 다시 중학교 임시교사로 일하던 것이 아마 3~4년 전쯤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중학교 수학선생님으로 근무를 했고 집사람은 김정은도 두려워한다는 <중딩>들의 질풍노도에 매일매일 힘들어서 하소연 하기가 일쑤였지요. X같이 Seabal은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기본 접미사였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다른 선생님 욕하는 아이들의 난폭함은 남선생님 같은 분의 포스가 아니면 웬만한 여선생님들은 그 상황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주검이 되어

어느 날은 시험기간이었습니다. 한 아이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엎드려 눈을 감았습니다. 집사람은 크게 꾸짖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답니다.  

"모르면 최대한 찍기라도 해야지..."

친구는 선한 눈빛으로 씩 웃으면서 빈 시험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와의 마지막 조우였습니다. 다음날 관내에는 어느 어느 아파트에서 아이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뉴스가 화제가 되었고, 그 학생의 싸늘한 주검은 아파트 1층 정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믿지 못합니다. 게임을 하는 것, 성적 문제로 약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우리 아이가 이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맞벌이 부모는 끝내 아이와의 정신적 교감을 만들지 못하고 이별을 한 것입니다.


행복의 조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행복할까요?  돈이 많아서 승마를 가르치고 특기로 일류대학에 입학을 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큰 회사를 가지고 있어서  사내 수백 명의 판검사 출신의 법무팀을 운영해서 복잡한 법률 망을 잘 뚫고 물려주는 방법은 어떨까요? 제가 벌고 있는 한 달 월급으로는 명마의 사료와 오물을 치우는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입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하러 가는 길에 감색과 검은색 정장을 한 입사지원자들이 면접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게 해서 일류대학 보내고 대기업 취직시켜서 <저녁이 없는 삶>으로 열심히 일하고 100:1이 넘는 확률의 임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몰고 있는 법인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흐뭇하게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행복한 풍경일까요?


민주시민교육

지난 3개월 동안 많은 좋으신 선생님들과의 가르침과 토론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한 차원 깊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필구 YMCA 사무총장님은 독일의 민주교육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민주교육은 정치교육이며 정치와 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참여하고 토론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독일은 1976년 <보이텔스 바흐 협약>의 제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원칙에 의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1) 강제성의 금지 (강압적인 교화 또는 주입식 교육의 금지)

  2) 논쟁성의 유지 (수업시간에도 실제와 같은 논쟁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

  3) 정치적 행위 능력의 강화 (학생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한 실천 능력을 기를 것)


김종철 연세대 법학 대학원 교수님은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정치 관련 법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1) 선거법 - 사전 선거운동 금지법에 의해 기존 정치세력은 신규한 정치세력의 진입을 제한한다.

  2) 정당법 - 청소년들의 정당활동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하여 그들의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고 정치와 가까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지구당 설립과 인원에 대한 제한으로 소수정당의 설립을 막으며, 지역정당 금지를 통해 지역의 여론이 정치에 반영되는 루트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3) 정치자금법 - 자발적 정치자금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여, 자본가만이 손쉽게 정치를 하도록 하는 등

정치의 새로운 목소리와 시도에 대해 손과 발을 묶고 있는 현 법률의 후진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님은 현재 <Trickle down 경제>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더이상의 불평등은 성장의 저해요소' 라는 내용, 그리고 우리의 사교육 구도는 자본이 필승하는 게임이며 멈출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이며, <사슴사냥론>등으로 신뢰의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구조의 중요성 대해 강의하셨고 강하게 공감했습니다.


금주의 최혜자 문화디자인자리 대표님을 통해 선진국 캐나다의 <생활문화>에 대한 경험을 들었습니다.

  1) 지역 정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주민 (민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원칙이고

  2) 공무원은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면서 감독과 제재가 아닌 지원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3) 민간과 공공영역의 경계가 없고 모두가 자발적인 행정을 기획하고 토론하는 선진 문화

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현장에서 뛰는 학자겸 활동가의 강한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활 정치

4년 전 12월 추운 겨울 어느 날. 강원도 선자령의 눈 덮인 아름다운 능선을 트래킹 했습니다. 정치권이 주는 유일한 기쁨 <대통령 선거일>에.  물론 투표는 하지 않았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지금의 이 사태를....  

투표를 했다고 해 보지요. 그리고

'알아서 하겠지. 정치하는 놈들 다 그렇지 뭐.'

그렇게 살아온 세월들이었습니다.  영혼이 비어있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이 나라는 바뀌는 것일까요?

올해 저는 부쩍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싫어라 합니다. 그렇지만 투표를 했다고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표현해야 하고 좀 더 나아가서 행동도 해야겠지요. 정치가 바뀌어야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학벌로 그리고 인맥으로 먹고사는 세상이 아니고 신성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우리는 이 미친 듯한 치킨게임에서 우리들의 아이들을 탈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시민들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마를 중단해야 합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다시 우리의 공동체를 이야기해야 하며 생산적 자치는 논의되어야 하겠지요. 공무원은 공무원 짓을 멈추고 진정한 봉사와 지원을 해야 하며, 공공예산으로 연말마다 갈아엎거나, 화려한 지역 문화센터에서 써리원 아이스크림 고르 듯 전국 어디에나 있는 획일적 강의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형식적 문화활동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미래의 아이들은

우선 표현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두장의 타임라인>으로 늙은 군인은 노래를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약속을 한 것 같은 사명감이 듭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길고 긴 숙제를 끝내는 초등학교 아이의 심정입니다. 아는 것도 없는 알량한 지식으로 글을 쓰고 누구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벌거벗고 거리를 나가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나, 적어도 저는 누가 써 준 글은 영혼 없이 읽어 내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우 김여진 씨의 유세 지원 연설문을 옮겨서 적어 봅니다. 제가  이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어른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은 것,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저는 미래의 제 아이가 살면 좋을 것 같은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봅니다. 아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보다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친구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그 무서운 세상만은 절대로... 절대로 아니기를 바랍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경제학
선자령의 겨울. 2012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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