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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파랑 Sep 15. 2016

죽여주는 대한민국

<두장의 타임라인>  4월의 마지막 날에.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입니다.

대학로의 새록새록한 플라타너스 그늘 및 봄바람은 또한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향수입니다.
경성대학이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박정희 정권이 1975년 현재의 관악구로 대학을 이전하기까지, 4.19 혁명, 한일회담 반대운동 및 1974년의 유신철폐운동을 비롯한 학생운동 등의 숨결이 아직 느껴지는 듯합니다.
지금은 썰렁하게 의과대학의 건물만이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네요.
우리나라가 좋아하는 이과생들은 신림동의 깊은 계곡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나 봅니다.


금일 관람한 형제 극장 (방통대 후문 골목)에서의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는
자살을 도와주는 사이트의 "안락사"라는 이름의 사이트 회장과 어느 날 찾아온 고객 "마돈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입니다.
OECD 자살률 1의 대한민국!
그 비참한 영예를 풍자하듯 이 연극은 자살 도움 사이트를 소재로 8년의 장수를 누려온 연극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은 주원인이 주로 경제적 기울기에서 그 동기가 촉발되나 키워드는 "돈 없어"라기보다는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린 나이로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우리>라는 단어보다는 <1등>이라는 단어에 익숙하고 몇 개 안 되는 선호 직업과 대기업의 울타리에 들어가기 위해 <같이 멀리 가기>보다는 <혼자 빨리 가기>에 익숙하고, 이런 우리 아이들의 부질없는 경쟁을 위해 우린 또 허리띠를 졸라매고 월급을 모조리 아이들의 허접한 현지화를 위해 미국으로 캐나다로 어이없이 보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린 또 하나의 타이틀은 얻어냅니다. OECD 노인 빈곤율 1위라는...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알파고>들은 어렵게 들어간 그 잘난 기업에서 10%의 하위 고과를 피하기 위해  <우리>라는 단어보다는 <1등>이라는 단어의 익숙함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청춘 경쟁 속의 고립> <노인 빈곤 속의 고립>은 어쩌면 <죽여주는 대한민국>의 당연한 산물이겠지요.


아이들 시험기간입니다.
졸음이 온다고 <커피우유>를 사 가지고 오라고 하네요. 우리의 이쁜 따님이....
엄마는 부랴부랴 동네 슈퍼를 돌면서 딸내미가 원하는 브랜드의 커피우유를 찾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그 제품은 벌써 동이 났다고 하네요.
녹음이 푸르른 학교 캠퍼스에서 잠깐의 면회가 있었네요.

엄마 아빠는 컴컴한 소극장에서 오랜만에 실컷 웃고 왔지만, 아들 딸은 컴컴한 자습실에서 주말 밤 자정을 졸음과 싸우면서 또다시 자신을 <고립>시키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미안해지는 4월의 마지막 밤.
그래도 아픈 기억 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잔인한 사월은 이렇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월엔 화창한 플라타너스 녹음이 푸르른 이곳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로가 함께하는 짙은 하모니의 공연을 같이 관람해 볼까 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삼형제 극장의 <죽겨주는 이야기>,  2008년~
캠퍼스의 주말.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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