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미국 트렌드의 자화상이다. 즉, 미국 사람들이 현재 전반적으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 및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이벤트인데, 개인적으로 (1) 힙합 장르의 범국민적 대중화, (2) 90년대 OG로 구성된 라인업이 가장 눈에 띄었다.
(과거 몇번 아쉬웠던 헤드라이너들이 있었지만) 하프타임쇼에는 항상 당대 슈퍼스타들을 초빙했는데 예컨대 2021년에는 위캔드, 2019년에는 마룬 5, 2017년에는 레이디 가가 등이 있었다. 그리고 보통 아티스트들이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좀 더 팝스럽고 대중적인 노선으로 가는데, 이번 헤드라이너에는 특이하게도 닥터 드레, 에미넴, 스눕 독, 50 센트, 켄드릭 라마 등과 같은 찐 힙합 래퍼들로만 구성되었다. 어차피 여러 명의 헤드라이너를 모집하는 거면 안전하게 2016년에 비욘세 & 콜드플레이 & 브루노 마스를 초대했던 것처럼 다양한 장르/인종/취향을 섞어줄 법한데, 아예 특정 장르에 몰빵했던 것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현재 미국에서는 힙합이 더 이상 특정 인종/지역을 표방하는 서브 장르가 아닌 팝 그 자체가 돼버렸구나 싶었다. 물론 102030대 사이에서는 힙합이 당연히 가장 대세 장르이지만, 슈퍼볼과 같은 남녀노소가 보는 범국민적 이벤트에서 이런 현상이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인 것 같다.
힙합이 어떻게 팝이 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닥터 드레, 스눕 독, 에미넴이 벌써 50대다. 빌보드 차트만 봐도 이들이 전성기는 이미 지났고 대세라고 보긴 어렵지만, 미국에서 힙합의 역사가 그만큼 길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확 떠버린 트렌드가 아닌 꾸준히 쌓아올린 공든 탑처럼, 자기 자리를 열심히 지킨 레거시의 힘이지 않나 싶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역사를 보면 제대로 쌓아올린 유산과 명성은 그래도 몇 대를 거쳐 꽤 지속됐던 것 같다.
그럼에도 미국판 나는 가수다를 연상시키는 올드한 라인업이 화제성 창출에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Sports의 출범으로 전통적 스포츠 리그들의 수요가 1020대 사이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아무리 슈퍼볼의 메인 타겟층이 304050대 남성이라도 이게 맞나 싶다. 내가 00년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을 당시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 경기를 같이 보곤 했는데, 아직도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이런 문화가 남아있을까?
이번 하프타임쇼는 나를 비롯해 8090년대생에게는 너무 반갑고 전율이 흐르는 공연이었겠지만, 요즘 10대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 특히 요즘 TV 시청률도 떨어지고 있고 OTT의 영향으로 더 이상 본방사수의 의미도 떨어지고 있어서, 슈퍼볼의 위상과 천문학적인 광고 수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슈퍼볼에 이어 넥스트 범국민적 이벤트는 무엇이 될지 지켜봐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