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솅겐 조약 때문에 유럽 밖에서 일정 기간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튀르키예에서 한 달 정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9일 동안은 어디를 갈지 고민했는데요.
리서치를 좀 해본 결과 처음에는 요르단 & 사우디아라비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르단의 경우 여행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잡힌 나라라 가기 편할 것 같았고, 사우디의 경우 그 반대로 여행 비자를 푼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신선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요르단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사기와 호객이 만무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사우디는 여행 인프라가 전무해서 렌터카가 필수이며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메카의 경우 무슬림이 아니면 입장이 불가해 굳이 시간을 내서 가기 애매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B 안으로 이스라엘 & 아랍에미리트를 생각했는데요. 사실 크리스천으로서 이스라엘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성지를 직접 볼 생각에 흥분됐지만 매번 뉴스에서 언급되는 사건 사고 때문에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반대로 너무 관광지일 것 같아서 중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네요.
그렇게 고민의 고민을 거쳐 이스라엘은 도전의 의미로, 아랍에미리트는 휴양의 의미로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생각보다 안전하며 지중해와 맞닿아 있어 휴양지로도 적합하며, 아랍에미리트는 생각보다 도시가 거대하고 인상 깊은 박물관도 많아서 보고 배울 게 많았습니다.
두 도시를 다녀오고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일수록 시간을 쪼개서 빚을 내서라도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를 다녀온 소감을 털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수도는 텔아비브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70년대부터 헌법상 예루살렘을 수도로 지정했으며 예루살렘 투어를 진행했던 현지 유대인 가이드도 이스라엘의 수도를 텔아비브로 알고 있다면 그 mistake를 고치고 싶다고 할 정도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잘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기원전 6세기부터 떠돌이 생활, 즉 '디아스포라'를 경험했습니다. 디아스포라라면 고전 그리스어로 파종을 의미하는데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뜻합니다. 아르메니아인, 남중국계 화교 등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용어는 아니지만 그들이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자 단어가 생긴 계기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하면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매우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거의 2,500년 후에 이스라엘을 다시 건국하게 되는데요. 1917년에 영국의 외무부 장관인 아서 벨푸어가 유대인들에게 땅을 되찾게 해 주겠다며 '벨푸어 선언'을 발표하고 팔레스타인을 강제로 영국령으로 만들고 유대인들을 데리고 와서 나라를 건국하게 도와줍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전성기였던 솔로몬 시대 때의 땅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들어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주변 중동 국가들과의 충돌이 시작되었는데요. 거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의 등을 업고 4번의 중동 전쟁을 치르고 끝내 아래와 같이 영토를 넓혔습니다. 사실 크리스천 +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이스라엘의 시각에서만 해석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한 결과 왜 이스라엘이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미운털이 박혔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보통 서구 국가(북미+유럽)는 이스라엘에 대해 호의적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유럽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권 유린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쳐 트럼프 정권 때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으니 이 사건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을지도 짐작해 볼 수 있었죠.
아무튼 이스라엘은 무려 GDP의 6%를 국방비에 투입하며 (북한과 대척 중인 한국도 2% 수준이며, 세계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도 3% 수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의무 복무를 하는 만큼 이 나라가 괜히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유대인 가이드가 눈 깜짝 안 하면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강조하는 게 놀라웠습니다. 참고로 예루살렘은 유대교/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에게도 성지이며 '바위의 돔'이라고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는 아주 중요한 모스크가 있는데요. (메카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지 중 한 곳이죠) 때문에 예루살렘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분쟁 지역으로 동쪽은 이스라엘이 서쪽은 팔레스타인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지들이 모두 모여있는 구시가지의 경우 (1) 유대교, (2) 기독교, (3) 이슬람, (4) 아르메니아인(기독교를 처음 인정한 나라라 별도의 구역을 할당받았습니다)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요. 쉽게 말하면 종교계의 DMZ이자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죠. 가보면 알겠지만 나눠진 구역을 넘어갈 때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신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향신료 냄새와 언어가 갑자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땅을 야금야금 먹은 것도 모자라 예루살렘까지 먹으려고 하다니요. (구시가지 구역은 엄중하게 나뉘어 있지만 전반적인 치안은 이제 이스라엘 경찰이 모두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위에 언급했다시피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 모두에게 성지이며 특히 타 종교로 넘어가는 것은 더더욱 용서치 못할 텐데요.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나 세계 정서를 보아도 유대인은 참 특별한 민족인 것 같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모두 말살하려고 했으며 미국의 정치 및 금융계는 사실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대한민국의 1/5도 안 되고 (크기는 경상도 정도)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 침략으로 전 세계의 연민과 미움을 동시에 얻고 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꽤 큰 영향력을 펼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민족, 유일하게 본인들만 구원받을 거라 믿는 대표적인 선민사상의 민족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믿음이 그들을 이토록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았고 예루살렘을 대하는 그들의 강경한 태도가 이스라엘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앞서 말했다시피 이스라엘의 헌법 및 정신적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국제법상 수도는 텔아비브입니다. 성지순례의 이미지가 강한 예루살렘과 달리 텔아비브는 굉장히 모던하고 고층 건물도 많아서 서울, 뉴욕, 도쿄, 런던의 빌딩 숲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지중해에 붙어있어서 하와이나 부산의 느낌도 좀 있었네요.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지어 덴마크보다도 더 비싼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싸게 먹으려고 해도 최소 2만 원은 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나마 현지 음식인 후무스나 샥슈카 같은 음식은 사 먹을만한데 초밥이나 라멘과 같은 외국 음식은 4만 원을 그냥 넘깁니다. 아무래도 중동 국가답게 땅도 대부분 척박하고 (북쪽 지방은 생각보다 비옥하지만 나머지 지역이 사막지대) 주변국과의 관계 때문에 대부분 바다 건너 수입하고 (아주 최근에 셰일가스를 발견했지만) 석유나 천연자원도 없으니 물가가 아주 미쳐 돌았습니다.
그런데도 텔아비브는 여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도시 자체가 풍기는 바이브가 유니크합니다. 튀르키예도 이슬람 국가이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에 유럽의 느낌(특히 이스탄불)이 강하게 든다면 이스라엘에서는 중동의 느낌을 더 받을 수 있는데요. 그러면서 미국의 영향으로 서구화가 많이 되어서 영어도 잘 통하고 어느 정도 익숙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71주년 건국을 기념할 정도로 어린 나라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나라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텔아비브는 대도시 치고 지하철이 없으며 (버스는 다행히 있었어요) 드디어 이번 달부터 트램을 시범 운영할 정도로 새로운 건물과 인프라가 많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신기하고 특이한 건물들이 많은데 특히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경계가 모호해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실리콘밸리에 이어 기술과 스타트업의 성지입니다. 1인당 스타트업 개수는 1,400명당 1개로 세계 1위이며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는 비상장 기업인 유니콘 기업이 100개에 달하고 (한국은 23개 정도) 매년 1,000개의 스타트업이 창업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 수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 스타트업 & 대기업 모두 균형 있게 많습니다)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에서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현지에서도 많은 스타트업을 인수 합병할 정도로 창업 생태계가 굉장히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VC와 자본이 몰려있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잘 모르는 이유는 자국 시장이 작아서 B2C보다는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B2B 기업들이 더 활성화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아마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중동 한가운데 적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서바이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미국의 CIA나 영국의 MI6에 버금가는 정보기관인 모사드를 운영하고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부터 자국 영토를 보호할 수 있는 아이언 돔을 개발할 정도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마치 대만이 중국에 대항해 TSMC를 키우는 것처럼) 글로벌 비즈니스를 활용해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잡고 있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폭죽 쏘듯이 테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어쩌면 북한과 대척 중인 우리나라보다 더 위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텔아비브의 시내는 생각보다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콘서트홀부터 도시의 중심을 뚫고 가는 로스차일드 도보 양옆에 비치된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 펍까지 즐길 거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강한 종교적 율법이 있음에도 일반 시민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은 매우 자유롭고 세련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지중해를 해안가로 둔 텔아비브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비싼 물가와 까다로운 입국 심사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권장하기 어렵지만 (웬만한 나라는 프리패스인 한국 여권으로도 이스라엘을 입국할 때는 어머님 성함이 무엇인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지 등 꽤 많은 호구조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거나, 기독교이거나, 바다를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물론 아직 도시가 완벽하게 세팅된 느낌은 아니지만요. 지리적 어려움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저 또한 자극받아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앞서 말했듯이 두바이에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호텔과 쇼핑이라는 휴양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놀러 가는 느낌밖에 못 느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오랫동안 여행한 우리에게 보상한다는 의미로 며칠간 편하게 쉬다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일단 에미레이츠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부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카타르 항공과 함께 최고의 항공사로 알려진 에미레이츠는 UN 다음으로 다국적 기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주 큰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래서 서비스 또한 매우 프로페셔널했는데요.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유럽 항공사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딱 이동 수단으로써 기본만 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에미레이츠의 승무원은 우리나라 항공사처럼 미소와 친절이 장착되어 있으며 항공기의 시설과 기내식 또한 매우 훌륭했습니다. 비행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타고 싶은 항공사입니다.
두바이에 도착하자마자 최첨단 대형 공항이 우리를 맞이했는데요. 방금 이스라엘에서 와서 그런지 입국 심사가 너무 스무스하게 느껴졌습니다. 직원들도 많아 거의 줄을 서지 않은 채 바로 입국 심사대로 올라가 한마디도 없이 도장을 찍고 바로 입국했습니다. 대부분 공항과 달리 짐을 옮기는 카트도 무료로 대여해 주더라고요. 특히 가장 스윗했던 것은 입국 심사 후 여권 사이에 1G짜리 무료 유심칩을 꽂아준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숙소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두바이는 대부분 주차비가 무료이며 산유국이라 그런지 기름값도 한국의 1/3 수준으로 여기저기서 오일머니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가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했습니다. 물론 중동 치고 비싸지만 하와이 같은 휴양지를 생각한다면 저렴한 거죠.
두바이를 한참 구경하다 보니 도시가 생각보다 꽤 커서 놀랐는데요. 고층 건물과 쇼핑몰, 호텔, 리조트 몇 개가 몰려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은근히 글로벌 기업, 금융 기관 등 상업지구도 활성화된 듯했습니다. 하와이에 맨해튼이 들어선 느낌이었는데요. 신도시라 그런지 교통 인프라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특히 신호등보다 신호대기와 사고율이 적은 회전교차로를 많이 배치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짧게 돌아다니면서 느낀 바 이들은 아직 수익 창출보다 홍보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행객 입장에서 뽑아 먹을 게 많아 좋았죠. 부르즈 칼리파(최고 높이의 건축물), 두바이 몰(최대 규모의 쇼핑몰), 팜 주메이라(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그리고 수많은 테마파크로 휴양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은근히 좋은 박물관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갔던 박물관 중 인상 깊었던 박물관 두 군데가 있었는데요. 두바이의 '미래 박물관(Museum of the Future)'과 옆 동네 아부다비에 위치한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입니다.
물론 이미지 메이킹의 의도가 강하나 사우디의 네옴시티나 두바이의 미래 박물관을 보면 중동이 오일머니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래 박물관의 메인 주제가 우주와 환경인데요. 대표적으로 'OSS 희망'이라고 2071년에 쏘아 올릴 우주정거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 또한 매우 유니크해서 가보시길 정말 추천합니다. 루브르 아부다비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래 아부다비 편에서 더 상세하게 다루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팜 주메이라라는 야자수를 모양으로 만든 인공섬도 다녀왔습니다. 인공섬이라 무시하면 안 되고 거의 하나의 도시 규모이고 옆에 이런 걸 몇 개 더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제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두바이가 세계 최초로 7성급 호텔인 부르즈 알 아랍(공식적으로는 5성급이지만 그만큼 훌륭하다는 의미)과 팜 주메이라를 건설하다는 뉴스를 접하고 관련 서적을 사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거의 20년 전부터 두바이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그 이후 잠시 잊고 살다가 드디어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무튼 팜 주메이라에는 베컴 등 슈퍼스타들도 집 한 채씩 보유할 정도로 각광받는 휴양지입니다. 실제로 보면 CG에 가까울 정도로 모양이 특이하고 세밀하게 기획된 곳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얼마나 돈이 썩어 넘치면 이러한 휴양지를 만들까 생각했는데요. 팜 주메이라 전망대(더 뷰 앳 더 팜)에서 관련 전시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두바이 정부는 90년대부터 석유 매장량이 감소할 것을 대비해 관광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그중 팜 주메이라는 1997년에 착공했으며 12년의 공사 끝에 2009년에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두바이는 현재 오일머니에서 완벽하게 탈피했습니다.
1997년이면 우리나라 IMF 시절 때인데 그들의 선견지명에, 그리고 이를 기획하고 성공시킨 실행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많은 인력과 자원을 관리하면서 환상 같은 프로젝트를 현실화시킨 것은 정말 박수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두바이와 오일머니를 너무 우습게 생각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전에 두바이라는 도시, 아랍에미리트라는 국가를 아는 사람이 한국에 몇이나 있었을까요? 지금은 어린 꼬마 아이도 만수르가 누구인지 최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입니다. 건국된 지 51년도 안 된 중동의 자그마한 나라의 명성을 이렇게 빠르고 높게 올린 두바이의 미래가 정말 기대됩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는 옆 동네 아부다비입니다. 하지만 두바이가 초반부터 너무 앞서 나가자 아부다비도 이에 자극받고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 물론 두바이에 비하면 수도임에도 아직 들어선 건물이나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앞으로 지어질 프로젝트를 보면 충분히 기대됩니다.
일단 관광업으로는 두바이에 밀리고 진출하기에 늦은 감이 있으니 조금 다른 각도로 중동의 문화 중심지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일단 그들의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유명한 건축가와 박물관을 한 곳에 모두 유치하고 있습니다. 장 누벨의 루브르 아부다비가 먼저 지어졌고 앞으로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자하 하디드의 콘서트홀, 안다 다다오의 해양 박물관 등이 차례대로 지어진다고 합니다.
옆 나라 카타르도 현재 월드컵 유치를 통해 중동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노력을 보아 아랍에미리트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바이든보다 빈 살만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짧게 중동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꽤 일리가 있는 말로 들리는데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동유럽으로 넘어왔는데 그동안 유럽에서 몇 개월간 생활한 덕분에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지만 나라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클래식한 맛에 유럽 여행이 재밌지만요) 유럽은 몇십 년이 지나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으면 중동은 몇 년 사이에 얼마나 변해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불과 몇 년 전 튀니지를 시작으로 아랍의 봄(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요즘 중동의 젊은 청년들이 글로벌 경제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깜짝 놀란 게 사람들이 술도 마시고 히잡을 안 쓴 젊은 여성들이 많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선데이 크리스천처럼 이슬람계에서도 젊은 층일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많은 오일머니가 어디로 향할지 충분히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낮은 출산율로 고생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중동 국가들은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일부다처제의 영향도 있을 수도 있고요) 그만큼 젊고 팔팔한 국가라는 뜻입니다. 세계의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후 중동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궁금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조금 걱정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