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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Nov 14. 2022

왜 유럽 서비스는 친절하지 않을까? (한국 갑질 문화)

Written by 클래미

손님이 왕이다?


미국과 유럽의 문화 차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넷플릭스 드라마 'Emily In Paris'에서 재밌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에밀리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시키자 피가 뚝뚝 흐르는 너무 rare 한 상태로 나온 것인데요. 에밀리가 "손님은 왕이니까"라며 셰프에게 좀 더 구워달라고 부탁하자 친구 민디가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왕이 절대 아니다"라며 그냥 먹으라고 합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한국 사람들이 공통으로 말하길 유럽은 서비스의 질이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종업원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가벼운 눈인사나 미소도 없이 짧은 문장으로 툭툭 말하니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그래도 미국 드라마에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 보니 우리들만 차별을 당하는 것은 다행히(?) 아닌가 봅니다.




한국의 인정욕구와 갑질문화


베를린으로 이직한 지인과 식사하면서 한국을 떠난 이유와 독일의 기업 문화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테크 회사를 다니다가 높은 업무 강도로 인해 몸이 굉장히 아팠다고 했는데요.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6개월 병가를 내고 도망가듯이 해외 이직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 좋게 베를린에 위치한 미국계 테크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연고도 없이 독일로 무작정 넘어왔다고 하네요.


일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유럽 사람들은 굉장히 laid back 된 삶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높은 강도의 회사에는 대부분 아시안이 근무한다고 합니다. 독일에 위치한 미국 회사에 아시안들이 대부분 일하고 있다니...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들어보니 앞뒤가 맞았습니다. 아시안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미국보다 비자 문제가 덜 까다로운 유럽으로 옵니다. 워라밸이 좋은 일들만 찾는 현지인들 덕분에 남는 힘든 일자리들을 아시안들이 채우며 영주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결국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한편 코로나로 해고당한 직장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실업급여를 주기 때문에 일부러 상사에게 본인을 잘라달라며 이를 악용한 현지인 동료들이 꽤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 친구에게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가려고 하냐 “고 물어보니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아"라고 답변했다 하더라고요. 'Emily In Paris'에서 "프랑스인은 살기 위해 일한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라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는데 하긴 삶에 정답은 없으니 생각의 차이인 듯하네요.


명문대와 대기업을 거쳐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치로 오르기 위해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완벽한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한국과 독일에서 일해본 지인이 말하길 한국인들은 회사에서 승진하고 보너스를 받는 그 이상으로 일 자체를 통해 나를 드러내고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유독 강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독일인 친구가 당당히 실업급여를 받는 행동이 한국이었다면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비난받기 충분했을 것 같네요.


물론 한국의 인정 욕구와 근면성 때문에 여기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극단적으로 심해질 경우 ‘남들보다 잘살아야 성공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기주의와 '상대방보다 상위 계급임을 확인하려는' 갑질 문화가 생성되어 결국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무한 경쟁 사회가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높은 질의 서비스를 기대하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유럽의 서비스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왜 한국은 유럽보다 서비스의 질이 높을까요? 다시 말해 왜 한국인들은 종업원들이 서빙 그 이상으로 손님에게 굽신거리면서 왕처럼 대접해 주길 기대하는 것일까요?


결국 사회에서 상사나 거래처에게 갑질을 당하니까 못다 푼 분을 풀기 위해 식당, 상점, 술집 같은 곳에서 갑질을 합니다. 높은 질의 서비스를 요구함으로써 나의 사회 계급을 확인하고 인정 욕구를 채우려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갑질 문화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 싶네요.


다시 생각해 보니 한국의 높은 서비스 질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도 과잉 친절이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잘해줍니다. 대신에 그 대가로 음식의 15% 이상을 팁으로 주잖아요?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꽤 큰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어쩌면 합당한 등가교환입니다.


하지만 유럽은 보통 팁 문화가 없습니다. 따라서 종업원이 딱 기대하는 수준의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제공합니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매우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음식을 테이블에 던지거나 손님에게 욕설을 하진 않잖아요?


이러한 생각의 회로를 거쳐 앞으로 유럽이나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한국처럼 높은 질의 서비스를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서비스직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저도 직장에서 상사를 모시고 거래처와 일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제 인정 요구를 채우기 위해 남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기대하는 것은 서로 피곤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지경이 안 오도록 일터에서 남들의 눈치를 극심하게 보거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경쟁의식을 느끼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적당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유럽에 오면 서비스의 질이 낮다고 기분 나빠하지 맙시다. (물론 기본은 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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