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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Oct 22. 2022

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Written by 클래미

어서 와, 덴마크는 처음이지?


북유럽 어딘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알려진 덴마크는 아마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낯선 나라일 겁니다. 저도 이곳으로 처음 여행을 오기 전까지 덴마크가 주변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혹은 핀란드랑 어떻게 다른지 전혀 몰랐는데요. (사실 지금도 잘 모릅니다) 열심히 인터넷으로 검색했음에도 '스칸디나비아 반도'라고 묶어서 부르지 각 나라별로 구체적인 차이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북유럽 한 군데는 찍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북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을 수소문한 결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 제일 좋았다는 후기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덴마크행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도착한 코펜하겐은 우리가 방문했던 가장 선진적이고 미래적인 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완벽한 도시가 존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과 한국인으로서의 좌절감(?)을 느낄 정도였네요.


지금부터 코펜하겐에서 일주일간 지내면서 인상 깊게 느낀 점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지점에 있는 듯하여 그대로 보고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큰 영감을 줄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1. 덴마크는 어떤 나라인가?


덴마크는 북유럽 5개국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 중 가장 작지만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제외한다면) 과거 나머지 4개국 + 영국의 동북부 지역까지 지배했을 정도로 강했던 나라입니다. 바이킹의 직속 후예이며, 피부는 뱀파이어처럼 하얗고, 푸른 눈의 금발 머리, 평균 키가 남성은 182cm & 여성은 170cm로 최장신 국가 중 한 곳입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유럽이라고 한데 묶어 불렀는데 앞으로 최소 동/서/북유럽으로 나눠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일본과 베트남이 같은 아시아 국가라고 묶어 부르기엔 무리가 있듯이 말이에요.


이어서 덴마크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높이기 위해 몇 가지 데이터를 찾아보았습니다.


인구 / GDP / 1인당 국민소득


인구 500만 명(109위)에 GDP 31위인 덴마크는, 인구 5,000만 명(28위)에 GDP 12위인 한국에 비해 아주 작은 나라로 면적도 한반도의 1/5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덴마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6.8만 불(10위)로, 3.8만 불(29위)인 한국보다 약 2배 높습니다. 물론 인구도 10배나 차이 나고 세율, 물가 등 여러 부문에서 다른 점이 많으니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냥 작지만 내실은 강한 나라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듯합니다. 실제로 덴마크 정부에서도 강대국보다 선진국으로서의 성장을 지향한다고 설명하네요.


주요 경제 산업


옆 나라 노르웨이처럼 연어나 잡고 천연자원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의외로 덴마크는 천연자원이 많이 없습니다. 대신 지리적으로 북유럽의 초입에 있고 북미, 영국 및 서유럽 국가들과 가까워 해운업과 첨단 공학을 바탕으로 바이오/로봇/신재생에너지/건축/디자인 분야가 매우 발달되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유명 로봇 회사인 미르(Mobile Industrial Robots ·MiR)와 유니버설 로봇(UR)이 덴마크 출신이며, 세계 최대 해운업 회사인 A.P. 몰러-머스크(A.P. MØller-Maersk) 또한 덴마크 기업입니다. 그밖에 우리에게 친숙한 글로벌 기업으로는 레고, 칼스버그, 에코 신발, 뱅 앤 올룹슨(음향기기), 노보 노르디스크(1등 인슐린), 로열 코펜하겐, HAY(가구 디자인) 등이 있습니다.


행복 지수


유엔 산하 자문기관인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에서 나라별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가장 행복한 나라로 핀란드가 1위, 덴마크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아이슬란드는 3위, 스웨덴은 7위, 노르웨이는 8위에 올랐고요.


행복이라는 게 주관적인 개념이라 얼마나 객관화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왜 북유럽 국가들은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아시아 경제 삼대장인 일본, 한국, 중국은 50~70위권에서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 봄 직한 것 같습니다.


국가 행복지수 순위 (OECD 회원국 대상), 2022년 기준

삶의 만족도 (출처)


행복지수와 언 듯 비슷하지만, 건강/교육/소득 수준/환경/고용률 등 여러 통계를 조합하여 삶의 만족도를 측정한 자료인데요. OECD 국가 41개국 중 핀란드가 1위, 아이슬란드가 2위, 덴마크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35위)은 그리스(36위), 포르투갈(37위), 콜롬비아(38위), 러시아(39위), 남아공(40위), 튀르키예(41위)와 함께 최하위권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이 최하위권으로 분류된 가장 큰 요인은 과도한 사교육과 부족한 예체능 교육으로 비롯된 교육 분야였습니다.


정치적 선진국


보통 전문가들이 정치적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A. 부패 인식 지수, B. 언론 자유 지수, C. 민주주의 지수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A. 부패 인식 지수 (출처, 2021년 기준)


독일에 위치한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세계은행, 세계경제포럼, 아시아 개발은행, 아프리카 개발은행 등 10개의 저명한 기관들과 함께 조사하여 발표한 자료입니다. 순위가 높을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고 기본권(인권) 및 정치적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를 뜻하며 덴마크/핀란드/뉴질랜드가 공동 1위를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2015년 덴마크 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85%를 기록하며 정치적 참여도가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덴마크 정치인들은 대부분의 나라들과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좋은 평판이 좋다고 합니다.



주요 국가를 위주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덴마크/핀란드/뉴질랜드(공동 1위)

노르웨이/스웨덴/싱가포르(공동 4위)

독일(9위), 영국(11위), 캐나다(13위), 일본(18위)

프랑스(22위), 미국(27위), 한국(32위)

중국(78위), 러시아(129위), 북한(170위)


B. 언론 자유 지수 (출처, 2022년 기준)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자료이며 말 그대로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보여주는 지수인데요. 헌법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지, 사법부는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는지, 정부는 언론을 통제 및 검열을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산정한다고 합니다.


자유주의 국가일수록 순위가 높고 독재 국가일수록 순위가 낮은데요. 최상위권은 북유럽이 차지했고, 하위권에는 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가 몰려있습니다. 노르웨이에 이어 덴마크는 2위를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43위로 2등급, 북한은 180위로 세계 최하위를 차지했습니다.



주요 국가를 위주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등급(Good) : 노르웨이(1위), 덴마크(2위), 스웨덴(3위), 핀란드(5위)

2등급(Satisfactory) : 독일(16위), 캐나다(19위), 영국(24위), 프랑스(26위), 스페인(32위), 대만(38위), 미국(42위), 한국(43위)

3등급(Problematc) : 이탈리아(58위), 일본(71위), 이스라엘(86위), 브라질(110위)

4등급(Difficult) : 태국(115위), 멕시코(127위), 싱가포르(139위)

5등급(Very Serious) : 러시아(155위), 시리아(171위), 이라크(172위), 베트남(174위), 중국(175위), 북한(180위)


C. 민주주의 지수 (출처, 2021년 기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에서 민주주의의 수준을 분석한 자료인데요.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Electoral process and pluralism)', '정부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Functioning of government)', '정치적 참여(Political participation)', '정치적 문화(Political culture)', '시민의 자유(Civil liberties)'라는 5개 지표에 따라 종합 점수를 매깁니다. 점수에 따라 1등급(완전한 민주주의), 2등급(결함 있는 민주주의), 3등급(혼합형 체제), 4등급(권위주의 체제)으로 분류합니다.


북유럽 5개국 모두 최상위권에 들었으며 덴마크는 6위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습니다. 참고로 아시아 국가 중 대만(8위), 한국(16위), 일본(17위)도 1등급에 포함되었습니다.


짙은 초록색일수록 순위가 높고, 짙은 붉은색일수록 순위가 낮음


주요 국가를 위주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등급(완전한 민주주의) : 노르웨이(1위), 뉴질랜드(2위), 핀란드(3위), 스웨덴(4위), 아이슬란드(5위), 덴마크(6위), 대만(8위), 호주/스위스(공동 9위), 캐나다(12위), 독일(15위), 한국(16위), 일본(17위), 영국(18위)

2등급(결함 있는 민주주의) : 프랑스(22위), 이스라엘(23위), 스페인(24위), 미국(26위), 이탈리아(31위), 인도(46위), 브라질(47위)

3등급(혼합형 체제) : 홍콩(85위), 멕시코(86위), 파키스탄(104위)

4등급(권위주의 체제) : 팔레스타인(109위), 이라크(116위), 러시아(124위), 중국(148위), 사우디아라비아(152위), 시리아(162위), 북한(165위), 아프가니스탄(167위)


상대적 빈곤율 (출처, 2018~2019년 기준)


평균 소득은 슈퍼리치 몇 명만 있어도 데이터가 왜곡되므로 중위 소득(median disposable income)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을 구하여 빈부격차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중위 소득이 200만 원인 나라에서는 이에 절반인 100만 원 이하를 버는 가구를 빈곤층으로 정의하여 전체 가구 수 대비 빈곤층의 가구 수를 나타냅니다. 즉 상대적 빈곤율이 높을수록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라고 해석할 수 있는 거죠.


지난 블로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나라로 주요 선진국 중 미국이 2위, 한국이 4위, 일본이 9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나라들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죠.


반대로 상대적 빈곤율이 낮은 나라로 아이슬란드가 1위, 체코가 2위, 덴마크가 3위, 핀란드가 4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나라들은 빈부격차가 적은 나라들입니다.


물론 빈부격차가 크다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소득이 균등하게 분배된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경쟁을 통해 기회가 많은 사회를 만들지 정부와 국민의 비전 및 운영 방침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추가 데이터


A. 환경성과지수 (출처, 2022년 기준) *위생, 대기질, 수자원 등 '환경' 관련 6개 분야   

덴마크(1위), 영국(2위), 핀란드(3위), 스웨덴(5위), 아이슬란드(10위)  

프랑스(12위), 독일(13위), 노르웨이(20위), 일본(25위)  

미국(43위), 한국(63위), 중국(160위)  


B. 세계평화지수 (출처, 2022년 기준) *범죄, 잠재적 테러, 사회적 갈등 등 '안전' 관련 23개 분야  

아이슬란드(1위), 덴마크(4위), 일본(10위), 스위스(11위), 핀란드(14위)  

독일(16위), 노르웨이(17위), 스웨덴(26위), 영국(34위), 한국(43위)  

프랑스(65위), 중국(89위), 미국(129위)  


C. 국가경쟁력지수 (출처, 2019년 기준) *'경제' 성장 능력  

싱가포르(1위), 미국(2위), 일본(6위), 독일(7위), 스웨덴(8위), 영국(9위), 덴마크(10위), 핀란드(11위)  

한국(13위), 프랑스(15위), 노르웨이(17위), 아이슬란드(26위), 중국(28위)   


D. 인간개발지수 (출처, 2021년 기준) *평균수명, 건강, 교육수준, 생활수준 등 '삶의 질' 관련 분야  

스위스(1위), 노르웨이(2위), 아이슬란드(3위), 덴마크(6위), 스웨덴(7위), 독일(9위), 핀란드(11위)  

영국(18위), 일본/한국(19위), 미국(21위), 프랑스(28위)  

중국(67위)  


물론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도 있겠지만 아무튼 단편적으로 위 데이터를 종합해 보자면 덴마크는 부유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부정부패가 없고 평등하고 공정한 유토피아 같은 나라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직접 덴마크 사람들과 대화하고 나름대로 보고 느낀 점에 대해서 하나씩 말해볼게요.




2. 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덴마크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하루 종일 해가 떠 있기도 하고 겨울에는 늘 우중충하고 얼음장처럼 춥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일조량과 척박한 기후 때문에 산업혁명 이전에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한때 유럽을 점령했던 로마 제국마저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건드리지 않을 정도였죠.


이러한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덴마크는 사회 복지 제도부터 정서적인 측면까지 여러 방면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요.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현실적이고 겸손한 마인드


A. 휘게


덴마크에서 가장 잘 쓰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휘게(Hygge)"라고 직역하자면 편안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합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휘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미 예상했듯이 혹독한 겨울 날씨 때문입니다. 겨울이면 해가 3시쯤 저물기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실내에서 안락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고, 식탁에 촛불을 켜고 가족 혹은 친구들끼리 집에서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휘게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냈던 숙소에도 여러 종류의 촛불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덴마크를 비롯해 북유럽에는 인테리어/가구/조명/생활용품 관련 브랜드가 유독 많습니다. (IKEA, HAY, 루이스 폴 센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단순한 방법이지만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해 겨울마다 따뜻한 남유럽 나라로 휴가를 떠나는 것도 한두 번이죠.


덴마크라는 나라가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추위로부터 보호해 줄 집, 맛있는 음식,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사소한 것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긍정 마인드가 치열한 경쟁과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굉장히 필요한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B. 얀테의 법칙


추운 겨울 때문에 바이킹 시절부터 공동체 의식을 굉장히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얀테의 법칙"이라는 일종의 행동 지침서인데 핵심은 '당신은 평범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잘난 게 없으니 늘 겸손하라'입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이는 차별과 극단적인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문화에서 비롯됐는데 마치 우리나라에서 '부모님께 효도하라, 연장자에게 높임말을 쓰라' 정도로 덴마크뿐만 아니라 북유럽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깊게 박힌 규칙입니다.


때문에 덴마크에서는 브랜드가 보이는 옷을 잘 입지 않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를 과시하는 행동을 촌스럽고 부끄럽게 여긴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회사원, 선생님, 의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도 겉모습만 보고 소득이나 출신 등은 전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어차피 소득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죠)


물론 개인의 개성을 지나치게 억제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상향 평준화'된 삶의 방식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만족도를 높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얀테의 법칙을 처음 읽었을 때 첫 문장부터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요즘은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지향하는데 북유럽 국가에서는 정반대를 추구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북유럽이 '높은 세율'을 기반으로 '보편적 복지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공동체주의적 사고방식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고 최소 덴마크에서는 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잘 운영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도 덴마크를 무작정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개인의 개성 및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친 자유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죠.


2. 높은 신뢰 사회


숙소로 묵었던 덴마크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독일 출신인데 고등학교 때까지 독일에서 살았고 대학생 때 덴마크로 넘어왔으며 프랑스에서도 잠시 일해 본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EU 시민들은 EU 국가 안에서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유럽 나라들을 잘 비교해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여러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A. 근무 환경


호스트 친구가 설명하길 덴마크 회사들은 독일 회사들과 비교해 상사의 터치가 거의 없고 서로를 믿어주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분할해서 쓸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느 날은 큰 계약을 체결하고 오후에 일찍 퇴근해 윈드서핑을 다녀왔고 이에 대해 상사의 눈치나 허락을 전혀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유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따른다고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서로를 잘 신뢰한다는 것은 이 친구의 말뿐이 아닙니다. 북유럽 문화가 너무 궁금해서 서점에서 영국 작가 Michael Booth가 쓴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The Truth About the Nordic Miracle'이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어보았는데요. 흥미롭게도 덴마크의 첨단공학이 잘 발달한 이유도 직원 간 신뢰가 높기 때문에 불필요한 관리 감독에 들어갈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조금 억지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덴마크에 신뢰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넷플릭스가 직원들에게 많은 자유와 권한을 부여한다고 하자 한국에서도 이를 따라 하는 회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그대로 누리는 사람들은 거의 못 봤습니다. 서로 감시하고 눈치 보는 사회에 이미 물들어 있기도 하고 윗사람도 아랫사람들을 풀어주는 데 익숙하지 않고 아랫사람도 막상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잘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갑갑하더라도 정해진 업무 스케줄이 있고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B. 일상생활


덴마크에서는 근무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신뢰가 깔려있습니다. 덴마크의 신뢰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데 '오프라 윈프리'가 코펜하겐에 와서 보니 부모들이 장을 보러 상점에 들를 때 아이가 든 유모차를 입구에 두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에 어느 마트에서 엄마가 우유를 집으려고 잠시 숙이는 순간 직원이 갓난아이를 납치하려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아무리 치안이 좋다는 한국에서도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죠. 그만큼 덴마크에서는 누가 내 아이를 해칠 걱정이 전혀 없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은 사회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은 상호 간의 신뢰가 인생을 단순하게 만들어 걱정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희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아이가 있는 채로 상점이나 카페 밖에 유모차를 두고 들어가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상점 밖에 두고 온 유모차


C. 도심 인프라


덴마크는 지하철 개찰구가 없습니다. 미리 앱 혹은 기계를 통해 교통권을 구매하면 바로 탑승하면 됩니다. 그리고 1시간 15분 동안 지하철/버스/페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개찰구를 통과할 필요가 없으니 기다리는 시간을 아끼고 자전거나 큰 캐리어도 쉽게 갖고 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요. 또한 지하철의 경우 무인으로 운영되어 24시간 이용이 가능합니다. 직원과 이용객 사이 신뢰가 구축되어 있으니 이런 편리함과 효율성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앱으로 구매한 교통권 / 개찰구가 없는 지하철역 (이미지)
개찰구가 없는 지하철역 (영상)
24시간 무인 운영 지하철, 모든 역에 스크린 도어가 설치


물론 가끔씩 직원이 교통권을 검사하러 다닙니다. 우리는 1주일간 여행하면서 딱 한 번 직원을 만났는데요. 누가 몰래 탔을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지켜봤는데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울, 뉴욕, 파리 등 어느 대도시를 가더라도 꼭 개찰구를 무단으로 넘어가거나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팔거나 취해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만날 수 있었는데요.


덴마크에서는 마치 미술관에 들어온 듯이 조용하고 쾌적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과장 안 보태고 시민 의식 수준이 전 세계 Top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밖에 대중교통 시스템 얘기가 나와서 부연 설명하자면 디자인의 나라답게 도심 인프라가 굉장히 세련되고 미래적이었습니다. 아래 3개 이미지는 지하철 입구, 계단, 엘리베이터인데 모던한 디자인으로도 클래식한 주변 건물과 조화를 잘 이뤄냈고 특히 군데군데 간접조명으로 스포트라이트 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점에서 감탄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럽 도시가 그러하듯 코펜하겐도 옥외광고를 매우 제한하는데요. 이유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강요받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건물 외벽이나 대중교통 안팎으로도 광고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덕분에 도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지하철 입구 / 계단 / 엘리베이터
도심 곳곳에 배치된 간접조명


마지막으로 아래 사진들은 페리를 탔을 때 찍은 장면입니다. 일단 도심 곳곳에 수로를 뚫어놔서 페리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전기로 운영되니 조용하고 환경오염도 없으며 무엇보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을 구경하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수로




3. 사회 안전망


아마도 모두가 가장 궁금해할 주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덴마크가 아무래도 강력한 복지 체제와 과세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덴마크는 '자유 시장경제'와 '복지 모델'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합니다.


A. 노동 모델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없이 근로자를 자유롭게 해고하거나 고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인세는 25% 수준으로 프랑스(최대 33.33%), 독일(최대 29.8%), 일본(최대 40.69%), 미국(최대 35%(federal tax) + 12%(state tax))보다도 현저히 낮으며 한국(최대 22%)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즉 국가가 기업의 '영리 활동'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정부는 실직한 근로자에게 2년간 이전 월급의 최대 90%를 실업 수당으로 지급하며 재취업 교육도 제공하는데요. 이로써 근로자의 '노동권'도 최대한 보호해 주는 편입니다. 혹시나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일부러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걱정한다면 덴마크에서는 직업윤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실업률은 3~4%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노동 시간이 적고 워라밸이 좋기 때문에 일에 대한 거부감이 적으며 사회 보장 제도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창업에도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고 하네요.


이를 덴마크에서는 노동의 유연성(Flexbility) + 고용 보장(Secutity)을 합쳐 = Flexicutity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직업 간 이동성이 높고 실직할 경우에도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덴마크식 노동 모델입니다.


이에 반해 덴마크의 소득세는 법인세와 달리 세계 최고 수준으로 최대 55%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연 9,400만 원 이상 벌면 고소득자로 분류되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합니다. 또한 물건을 살 때 붙는 부가세는 25%로 한국(10%) 보다 훨씬 높습니다. 때문에 덴마크는 GDP 대비 세금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요.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렇게 높은 세금에 대한 반발심이 크지 않을까요?


위에 언급했듯이 덴마크의 투표율은 85%가 넘을 정도로 정치적 참여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높은 세율을 주장하는 '사회민주당'은 역대 최장 집권당으로 꾸준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한때 보수 연립정부에서 세금 인하 계획을 발표했을 때 과반수가 넘는 60%가 반대했으며 찬성한 사람은 25%뿐이었다고 합니다.


강력한 과세 정책을 통해 제공되는 무상 교육 및 의료 서비스, 실업, 노후, 육아, 장애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인간의 존엄성과 불안 및 공포에서 벗어난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부에 대한 강한 신뢰와 정치적 청렴도를 바탕으로 덴마크 국민들은 정부가 '내 돈을 뺐어간다'라고 생각하기보다 '내 돈을 맡긴다'라고 생각해서 세금이 복지 혜택으로 투명하게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정부나 세금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한국과는 정반대인 점이 특이했는데요.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 시스템으로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부록) 잠깐, '사회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에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민주적 절차로 해결하자는 사회주의의 한 갈래인데요. 유럽에서 시작됐으며 현재는 북유럽/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주류 정치 시스템이기 때문에 '유럽식 사회주의'라고도 불립니다.


참고로 위 언급한 '자본주의적 문제점'이란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는데요. 자본주의 사상에서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무한에 가깝게 요구할 수 있으며 생산에 한해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더 대출을 받고 생산할 것이며 그러하면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결국 돈이 없는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물건을 사줄 수요자가 줄어들 테고 실제 수요보다 과잉 생산한 공급자는 연쇄 파산하여 경제 불황이 찾아온다는 시나리오를 뜻합니다. (실제로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Great Deression)은 과잉생산이 주원인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이념이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목표를 '최고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강조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력히 옹호하며 모든 독재 정치는 부정합니다. 기존 사회주의와 달리 사유 재산은 허용하지만 (대신 강력한 과세로 소득 재분배) 사적 독점에 대해서는 냉엄하게 비판하는 게 특징입니다.



더 나아가 덴마크는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워라밸'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요. 법정 근로시간은 37시간이며 보통 8~9시에 출근해서 4~5시에 퇴근합니다. 최근에는 주 4일제를 시험 도입하고 있다고 하네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얘기를 들어보니 덴마크에서는 일보다 가족 및 친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개인의 삶을 더 중요시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근무 시간이 짧기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쓰지 못해 오히려 업무 효율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유급휴가는 연 최소 25일을 보장합니다. 15일인 한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길 뿐만 아니라 몰아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보통 3주씩 휴가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겨울에 자주 브라질로 놀러 가서 윈드서핑을 즐긴다고 합니다.


한국은 일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상위로 일과 삶의 불균형이 커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고 분석됩니다. 또한 직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환경 및 소득 차이도 매우 분명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직장인들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의 만족도는 낮아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덴마크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벌고 복지 혜택을 받으니 "직업에 귀천이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B. 교육 시스템


덴마크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무상 지원임에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EU 국가 중 GDP 대비 교육 예산이 가장 높은 편으로 교육에는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덴마크 8%, EU 평균 5%, 미국 5%)


또한 나날이 진화하는 산업 형태 때문에 국가에서 성인 교육과 재교육에도 많은 재정을 할애하고 있는데요.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나라가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뿐만 아니라 EU 회원국 출신 학생은 모두 대학 등록금을 면제받습니다. 비 EU 출신 학생은 807~2,155만 원 수준의 등록금을 내야 하지만 유학생에게도 열려있는 다양한 장학금 제도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에게는 교통비, 식사비 등으로 쓰일 국가 교육 보조금으로 한 달 평균 108만 원씩 지급한다고 합니다. 번외로 하버드 대학교에서도 전 신입생 대상으로 소액의 식사비 제공 + 신입생만 출입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데요. 이유는 부모님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며 향후 좋은 동문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덴마크에서는 국가 단위에서 이런 투자를 벌이고 있는 것 같은데 향후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수입이 생길 경우 세금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C. 육아 및 가족적인 분위기


덴마크에서는 자가용 위에 버스가, 버스 위에 자전거가, 자전거 위에 유모차가 대접받는 나라입니다.


덴마크에서는 엄마들이 유모차가 딸린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리거나 아버지들이 공원에서 유모차를 두고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에는 임산부와 자전거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유모차와 자전거 칸이 전체의 절반씩 차지합니다) 유모차, 휠체어, 자전거 모두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맥주펍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오면 할인을 제공할 정도로 육아 친화적인 분위기가 있는데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맥주를 마실 때 옆에서 5~6살밖에 안 되는 아이가 주스를 마시는 것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여성에게 18주의 유급 출산휴가와 부부에게 32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지원합니다. 참고로 한국은 여성에게 90일의 유급 출산휴가(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 120일)를 제공하며 만 8세 혹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유급 육아휴직을 1년까지 지원하는데요.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유급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이 없는 나라이며 연방 차원에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시 고용주가 자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덴마크에서는 남자가 육아와 가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아버지도 출산 직후 2주 동안 출산휴가를 쓸 권리가 있으며 특이하게 위에 언급한 32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부부가 자유롭게 나눠 쓸 수 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근로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니 보통 4~5시에 퇴근해서 저녁 장을 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적이라고 합니다.


번외로 공원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중에 옆 벤치에 엄마와 꼬마 아이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엄마가 아이를 대한다기보다 친구와 수다 떨 듯 반응해 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 자식이라는 소유의 관점보다 분리된 인격체를 대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D. 장애인 배려


앞서 말했듯이 시민 의식이 높고 복지 수준이 좋은 만큼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많습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전용 TV 채널도 있고 장애인 취업 제도도 매우 잘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취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충분한 장애인 연금과 전용 복지 체계로 생계를 얼마든지 이어 나갈 수 있다고 하네요.


모든 지하철역에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우리같이 짐이 많은 여행객 입장에서도 아주 편했습니다.


E. 의료 시스템


교육과 마찬가지로 덴마크에서는 의료비가 무상 제공되며 병원비는 물론 수술비도 무료입니다. 약값만 내면 된다고 하는데요. 거주지 기준으로 주치의가 배정되고 덴마크 국민이 아니어도 동일한 혜택을 받습니다. 정부 지출액의 70% 이상이 사회 보장(교육, 보건, 사회 보호)에 지출되며 특히 보건 분야는 총 정부 예산의 15%를 차지하여 비교적 높은 의료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F. 치안 및 청결


치안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덴마크에는 집시도 많이 없어 소매치기당한 사람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실제로 밤중에 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럽 국가라고 합니다. 또한 보통 대도시일수록 홈리스가 많은 편인데요. 놀랍게도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한 번도 홈리스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회 보장 제도가 좋아서 그런지 유일하게 홈리스가 보이지 않았던 도시인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는 어딜 가나 쓰레기 하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깨끗했고 모든 사람들은 우측보행을 지키며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줄 예시가 있는데요. 보통 공공 화장실이라고 하면 굉장히 비위생적이잖아요. 뉴욕과 런던에는 간혹 무료 공공화장실이 있는데 정말 들어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파리 같은 경우 공공화장실이 많이 없어 카페에 들어가서 에스프레소를 하나 시키고 이용해야 합니다. 독일은 특이하게도 변기 커버를 훔쳐 가는 사람들이 많아 아예 변기 커버를 두지 않는 공공화장실도 많았고요. 그래서 많은 유럽 도시에서는 청결도를 유지하고 동시에 집시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유료로 공공화장실을 운영하곤 하는데요.


덴마크는 어떨까요? 일단 거리에 무료 공공 화장실이 꽤 많습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내 생각과도 다르게 너무 깨끗했어요. 특별한 공공화장실도 아니고 시민 공원에 위치한 일반적인 공공화장실이었는데요. 치안이나 청결 부분에서 논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4. 친환경


마지막으로 EU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분야에서 선두 주자인데요. EU 안에서도 북유럽이 압도적입니다.


A. 재생 에너지


1980년 이후 덴마크의 경제는 80% 성장했지만 총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하지 않았으며 현재 덴마크 에너지의 50% 이상은 풍력 발전과 태양열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력 생산량 대비 탄소 최저 배출국입니다. 덴마크 정부는 2050년까지 화석 연료 없이 재생 에너지만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목표를 발표하였으며 기후변화 대응 및 재생 에너지 기술 관련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재생 에너지 기술은 덴마크의 수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에어비앤비 호스트도 덴마크 최대 전력회사인 Ørsted에서 해외 세일즈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B. 자전거 생활화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나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실제로 코펜하겐 시민의 62%가 매일 자전거로 등교와 출근하는데요. (그 외 대부분은 대중교통이고 개인 자가용은 극히 미미합니다)


그래서 자전거 도로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습니다. 어떤 데는 자동차 도로보다 넓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다 보니 수신호도 발달되어 있는데 오른쪽으로 틀기 전에 자동차 깜빡이처럼 일일이 모두 오른손을 들고 커브를 도는 관경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고 돈도 아끼고 일석삼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일반적인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아무래도 한국은 언덕도 많고 자동차를 중심으로 도로가 설계되어있다 보니 자전거를 이동 수단보다는 운동 목적으로 많이 쓰이는 듯합니다. 아무튼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점에서 코펜하겐의 거리는 매우 색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이었던 점은 덴마크 의회 건물 앞에 고급 승용차는 없고 자전거가 굉장히 많이 주차된 모습이었습니다. 덴마크 정치인들의 청렴함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였습니다.



덴마크 의회 건물 앞 / 도심 시내 자전거 주차장


C. 공공 시스템


코펜하겐 도심 내 ‘아마게르 바케’라는 쓰레기 소각장 겸 발전소가 있습니다. 고체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친환경 발전소로 매년 3만 가구에 전기를, 7만 가구에 난방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각장은 첨단 정화 시설을 갖춰 해로운 공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단지 환경만을 고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을 즐기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각장의 지붕에 인공 스키장과 옆면에 등반 암벽을 설치하여 아이들과 소풍을 가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레저 활동을 위해 모이기도 합니다. 기피 시설을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하다니 그 역발상이 정말 참신했습니다. 설계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덴마크 건축회사 BIG에서 진행했는데요. 또한 '그린 카약'이라고 무료로 카약을 타면서 강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프로그램도 시간이 촉박해 이용해 보지 못했지만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관리된 강물은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수영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지하철, 버스, 페리를 포함한 대중교통은 전기로 운영됩니다. 전기로 운영되기 때문에 환경에 좋을 뿐만 아니라 마치 놀이동산에 모노레일을 타듯이 속도도 빠르고 소음이 없어서 쾌적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지하철/버스만큼이나 자주 이용하는 페리


D. 재활용 시스템


덴마크에서는 페트병 혹은 유리병을 살 때 환경보조금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빈 병을 마트에 있는 재활용 기계에 넣으면 환경보조금을 다시 돌려받습니다. 냈던 돈을 다시 돌려받는 거라 쌤쌤이지만 돈을 버는 느낌이라 재활용을 열심히 했던 기억이네요.


때문에 길거리에 버려진 빈 병이 없고 (있으면 우리가 주웠죠) 통계적으로 92% 이상의 빈 병들이 재활용된다고 합니다. 한국에 도입하면 정말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독일 및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도 운영하고 있어요.



비행기가 기차보다 저렴하더라도 탄소 배출을 아끼기 위해 기차를 이용하고 자가용보다 자전거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등 덴마크 시민들이 친환경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동참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5.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모든 나라마다 장단점이 분명 있습니다. 물론 덴마크에도 제가 보지 못한 어두운 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점을 알아서 무엇을 하나요? 제가 여행한 나라 중 장점만 뽑아서 한국에 돌아오면 어떻게 제 마음가짐과 주변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동경하는 것보다 보고 배운 것들을 종합해 자기 철학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덴마크 여행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은 휘게와 육아입니다. 덴마크의 암울한 겨울만큼 아마 한국에 돌아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주기적으로 올 텐데요. 의도적으로 나의 마음을 살피고 안정을 주는 실질적인 장치들을 삶에 잘 정비해 두는 그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또 덴마크의 육아 및 가족친화적인 분위기는 정말 천국 같아 보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면 삶의 큰 부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자녀를 낳으면 양육이 가장 큰 도전일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코펜하겐의 예쁜 모습으로 이번 블로그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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