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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Jul 16. 2022

프랑스가 ‘선진국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이유

Written by 클래미

목차

1.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2. 내가 느낀 각 나라의 모습들

3. 프랑스가 '선진국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이유

4. ‘건국 배경’의 중요성과 ‘프랑스 시민 혁명’의 영향

5. 한국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지난 3개월간 미국과 유럽, 즉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선진국이란 무엇인지, 한국이 어떻게 선진국으로서 나아가야 할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선진국이라 하면 GDP(국내 총생산량)를 떠올리는데 비록 작년에 비해 2단계 내려왔지만 한국은 12위로 브라질,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Top 12 중 인구와 땅덩어리가 가장 작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꽤 선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출처 : IMF


하지만 GDP는 국내 총생산량의 합계이기 때문에 인구가 많고 외화벌이를 많이 하는 글로벌 대기업이 있다면 유리한 게임이죠. (참고로 한국은 삼성그룹이 GDP의 20%를 담당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 기준으로 선진국을 분류한다면 중국(2위), 인도(6위), 브라질(10위) 모두 세계 10위 안에 드는 최상위 선진국인데 솔직히 중국, 인도, 브라질이 "선진국"의 이미지와 좀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력이 선진국의 중요한 척도인 것은 한 나라의 "삶의 질"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삶의 질"을 보여줄 수 있는 다른 기준으로 매년 UN에서 발표하는 '행복 지수'를 가지고 순위를 매겨보면 어떨까요? 이미 잘 알듯이 여기엔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와 핀란드의 GDP는 44위와 39위로 한국보다 현저히 낮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를 두고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행복 지수'는 겨우 62위며 미국은 16위, 일본은 54위, 중국은 72위입니다. (미국 16위는 꽤 높은 순위지만 GDP 1위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데 행복하지 않은 나라, 과연 선진국이라 불러도 괜찮을까요?


출처 : UN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이어서 다른 관점에서 "삶의 질"을 볼 수 있는 '자살률'을 참고해 보면 한국은 매우 불명예스럽게도 몇 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5위고 미국은 6위네요. (*중국은 OECD 미가입 국가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 '상대적 빈곤율' 순위도 OECD 국가 중 미국이 2위, 한국이 4위, 일본이 9위를 차지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마찬가지로 선진국이라 불러도 괜찮을까요?


출처 : OECD, 2021년 기준
출처 : OECD


물론 UN에서 발표하는 '행복 지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국가 간 문화 차이의 영향도 클 듯합니다) 실제로 북유럽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선진국은 정의하기엔 꽤 복잡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을 통해 직접 다녀온 나라 중 어느 나라가 가장 선진국에 가깝게 느껴졌는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매우 "주관적인" 생각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내가 느낀 각 나라의 모습들


[미국]


꽤 오랫동안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 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심해지는 빈부격차, 총기 사고, 약물 중독, 인종 갈등 등의 이유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미국의 가장 큰 파워는 "American Dream"으로 미래와 꿈에 대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슬슬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그 뽕에 더 취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상위 1% 부자와 천재가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선진국이 맞으나 평시민의 입장에서는 사회 곳곳에 녹아든 불평등의 문제로 점점 병들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포르투갈]


강대국 스페인과 국경을 맞닿는 지리적 악조건을 기회 삼아 15세기부터 대항해시대를 열며 왕년의 유럽에서 가장 큰 해상 무역권을 갖고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세계 일주 항해를 최초로 성공했던 마젤란이 바로 포르투갈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재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이며 마치 몽골 사람들이 칭기즈칸 시절을 그리워하듯이 포르투갈 사람들도 과거 대항해시대를 염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GDP 중 관광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코로나의 타격이 매우 컸다고 하는데 물가가 싸고 날씨가 좋은 유럽의 동남아 같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현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니 요즘 젊고 똑똑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빨리 영어를 배워 임금이 높은 미국, 독일, 영국 같은 나라로 이민 가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참고로 포르투갈의 평균임금은 100만 원 수준) 안타깝지만 선진국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넘어와서 그랬는지 광장이며 궁전이며 모두 화려하고 거대한 느낌이었습니다. 중국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스페인어라고 하는데요. (영어보다도 더 많습니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가 아직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페인의 영향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ZARA, 마시모듀티 등 로컬 패션 브랜드가 많지만 경제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요. (PIIGS라고 2010년 유럽 국가부채위기를 겪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의미) 또한 더운 날씨와 느릿느릿한 문화로 서비스 정신이 확실히 미국, 한국, 일본보다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포르투갈이 대부분 영어를 잘하고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많고 놀러 가기 좋은 나라인 것은 맞으나 선진국이라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프랑스]


아무래도 파리에만 한 달을 지냈으니 보고 경험한 게 많아 좀 편향되었을 수 있겠으나 이런 나라를 두고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프랑스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3. 프랑스가 '선진국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이유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미국이 이토록 오랫동안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력, 군사력과 더불어 "소프트 파워"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매년 미국에서 쏟아지는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을 통해 "American Dream"이 지구 건너편까지 "미국이 최고다"라는 이데올로기가 뿌려지니 전 세계 인재들이 미국에 관심을 갖고 모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중국이 아무리 미국을 따라잡으려고 해도 "China Dream"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을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국가적 신뢰도가 국제적으로 낮은데 경제력, 군사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과연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요? 그만큼 한 나라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문화의 힘"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미국 못지않게 소프트 파워가 강한 국가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에펠탑, 루브르, 개선문을 보면 괜히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죠. 그래서 도시 이름만으로 브랜드의 입지를 높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글로벌하게 사용되는 도시명은 Paris, London, Tokyo, New York 정도인 것 같네요) 실제로 파리 시내를 거닐면 들어보지 못한 로컬 샵들이 많은데 다들 하나같이 Paris를 브랜드명과 함께 새겨두더라고요.


또한 바로 직전 주제에서도 설명했듯이 EU는 환경보호에 심히 진심인 듯하고 그중 프랑스가 가장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로컬 샵에서 티셔츠를 판매할 때도 100% 재활용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더라고요. 맥도널드조차 비건 메뉴를 팔 정도로 정부, 기업, 국민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세계의 트렌드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성과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저 같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프랑스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는 데 분명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명성 있는 박물관, 랜드마크, 브랜드가 참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민 공원도 걸어서 10분마다 있으며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과 로컬 소상공인 매장들이 파리 시내에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제가 느끼기엔 GDP 7위의 경제 강국 프랑스는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균형 있게 나아가고 있는 '선진국'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나라라고 느껴졌습니다.




4. ‘건국 배경’의 중요성과 ‘프랑스 시민 혁명’의 영향


사실 위 내용들은 지금 할 말을 위한 디딤돌에 불과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면 죄송합니다. 프랑스 뽕이 차오른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프랑스가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한국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가 아마 이번 주제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알다시피 프랑스는 꽤 많은 시민 혁명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공화국을 세운 역사가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 못지않게 유명한 그림이 있어요. '프랑스 7월 혁명'을 기념으로 낭만주의 작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작품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세기 이전 예술은 비싼 물감과 재료값 때문에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힘을 뽐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기에 대부분의 주제는 역사적, 신화적, 종교적 사건에만 한정되었는데요. 미술사에서는 이때를 ‘고전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을 통해 개인의 감정을 드러낸 ‘낭만주의’로 발전했는데요.


시민 혁명을 통해 이때의 시대정신이 가장 극에 도달했던 것만큼 프랑스 낭만주의의 핵심 가치는 "고통을 딛고 나선 희망, 숭고한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위 그림을 보면 가운데 여성은 자유를 상징하는 데 언뜻 보면 밝고 희망찬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지만 배경을 보면 쓰러진 시체와 무너진 건물이 보입니다. 유럽의 역사가 생소한 우리에게는 프랑스를 떠올리면 아름답고 예술적인 장면만 생각하지만 이 그림을 보니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이는 우리가 여행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느끼지 못한 정서였습니다. 두 국가는 아직도 군주제를 유지하며 과거 화려했던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만 있을 뿐 기존의 것을 내려놓고 새로움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 확실히 미래지향적인 국가죠. 아무래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보니 항상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마인드가 깔린 듯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혁신과 도전을 꿈꾸는 것을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강대국으로서의 시절이 길어 남길 수 있는 유산도 많아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려는 생각이 깊어 보였습니다. 특히 파리 시내는 건물의 높이 및 외형에 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합니다.


그럼에도 타 유럽 국가들과 프랑스의 다른 점은 유산을 지키려는 노력 못지않게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인 유리 금속 피라미드나 에펠탑의 경우 처음엔 도심의 통일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가 극심했지만 모든 편견을 깨고 지금은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잖아요?


그 나라의 ‘시작’이 그 나라의 ‘미래’를 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알고 싶다면 건국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미국도 신앙적 자유를 찾아 독립전쟁을 치른 역사가 있으니 오늘날까지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자유를 신봉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죠.


그런 흐름에서 프랑스가 가진 '도전에 대한 동경과 인정'이 ‘프랑스 시민 혁명’의 정신으로부터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프랑스의 클래식과 맞물려 문화적 선순환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고요. 평소에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진입장벽이 높고 쉽게 인정받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등장하기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퀄리티의 문물이 다시 전통이 되는 선순환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5. 한국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파리와 서울이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껴진 것은 트렌드가 어떻게 생성되고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거였는데요. 파리의 경우 큰 통일성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만의 색을 내며 사는 듯했고 특별히 잘못한 게 아니라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 생각엔 서울은 유행에 민감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유행하는 식당의 경우 사람들이 2~3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가려고 하는데 반면 유행하는 식당이 아니라면 금세 망하고 새로운 상점이 들어서곤 하죠. 프랑스의 경우 특별히 유명하지 않더라도 로컬 손님들이 단골처럼 꾸준하게 찾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 프랜차이즈보다 로컬 식당이 더 많고 현지의 셰프나 파티세리들이 자기만의 레시피를 개발하고 선보일 수 있는 게 이런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싶네요.


애초에 한국과 프랑스는 거쳐 온 역사가 너무 다르다 보니 국가와 도시를 단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운 점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르고 거의 나라를 새로 건국했다시피 굉장히 빨리 발전했잖아요. 그 결과 한국이 작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선진국의 지위도 공식적으로 받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다시피 '선진국'이라 하면 어느 한 분야에서만 특출 난 게 아닌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맞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전통과 혁신, 글로벌과 로컬 사이에서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잘 만들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가장 '선진국'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이곳 프랑스에서 조금이라도 참고할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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