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여러 나라를 10개월 가까이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많은데 그중 꼭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영어는 한국인의 고질병이죠. 미국에서 10년간 공부한 덕분에 크게 고생하지 않고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일을 시작할 때 한국에서는 '영어 실력'이 꽤 경쟁력 있는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유학한 게 헛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직장인들의 reading & writing 실력은 제2의 외국어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speaking도 스스로 조금 부끄럽게 생각해서 그렇지 외국인들과 비즈니스 토킹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문제는 마찬가지로 영어가 제2의 외국어인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잘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어순과 알파벳 체계 때문에 서구권 나라들보다 더 허들이 높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미드 'Emily in Paris'에서 다룰 정도로 프랑스가 영어를 못한다는 선입견은 널리 퍼져있는데요. 그래서 유럽에 여행 오기 전 언어 문제가 걱정되어 나라별로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 공부해야 하나 싶었는데 영어가 만국 공통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영어를 상대적으로 잘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죠. (스페인, 이탈리아, 튀르키예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나 그렇지 2030대 젊은 세대는 모두 영어를 무리 없이 잘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 사람들이 너무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어딜 가나 너무 당연하게 영어로 주문하는 것이 좀 오만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생각해 보니 영어는 영미권의 국어만이 아닌 그냥 글로벌 소통의 기본이었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로 유럽 자판기에서 언어를 선택하려고 미국 국기의 아이콘을 찾았는데 없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미국 국기가 아니고 영국 국기로 표시된 거였어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서는 영어란 당연히 '미국 언어'라고 생각했지만, 유럽에서는 당연히 '영국 언어'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갔던 나라 중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영어를 미국 국기로 표시했네요)
그리고 유럽 사람들도 서로 언어가 다르다 보니 만나면 영어로 대화합니다. 심지어 영국이 더 이상 EU 국가가 아닌데도 유럽 어디나 영어를 쓰는 게 좀 웃겼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른 아시아 국가를 가면 당연히 영어를 쓰잖아요. 다시 말하자면 영어는 미국, 영국 등 어느 특정 나라의 언어가 아니고 그냥 default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어디를 가나 영어를 너무 당당하게 쓰는 미국(+영국)인들을 내가 너무 아니꼽게 본 게 아닌가 싶었네요.
덕분에 우리는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특별히 언어 이슈 없이 너무 잘 돌아다녔습니다. 반대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우리처럼 잘 돌아다닐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어요.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은 글로벌 서비스인 우버나 구글맵 같은 앱도 잘 안 쓰니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여행은 꽤 허들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학자들이 말하길 한글은 참 특별하고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이유는 대부분의 문자는 상형문자로 이집트의 상형문자 혹은 중국의 갑골문자에서 비롯되었기에 알파벳 혹은 한자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글(훈민정음)만 전혀 다른 계통의 문자를 사용하는데요. 이유는 한글이 유일하게 체계적으로 개발된 문자이며, 대부분의 문자가 시각의 문자화를 기반했다면 한글만 청각의 문자를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훈민정"음"인 이유)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한글을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어의 중요성을 제2의 외국어 수준으로 저평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도달하기 어렵겠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범국민적으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외 다른 나라에 좋은 커리어 기회가 생긴다면 갈 의향이 있습니다. 근데 그건 제가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 나라들이 영어만 할 줄 알면 일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짐작하는데 보수적인 나라 몇 군데(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를 제외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생활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덴마크와 독일에서 일하는 지인이 있는데요. 일단 어느 회사든 취직하는데 영어가 필수이며 일터에 외국인이 있으면 영어를 무조건 사용하는 게 룰이라서 독일어나 덴마크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음식점에서 서빙하는데도 고객한테 영어를 써도 되고 눈치 받는 일이 아니라 하더라고요. (물론 시민권 같은 것을 따려면 현지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취직하고 일하는 데는 영어만 가능하면 제약이 없다고 합니다)
주변에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너무 일해보고 싶은데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서류 심사에서 모두 탈락하고 영어 강사밖에 할 게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고 심지어 미국/유럽을 넘나들면서 일했는데 한국은 언어 때문에 일조차 못 해보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 친구나 한국 입장에서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중국, 일본, 한국) 국가들이 유독 로컬적인 성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양성이 적고 한민족의 특성이 크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동남아 기업들은 훨씬 글로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의 좋은 인재를 더 잘 영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욕심인 것은 알지만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끌어올리는 게 한국을 위해 그리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배우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죠) 가까운 미래에는 외국인들이 영어만 할 줄 알면 한국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에서 취직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런 미래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큰 캐리어 2개, 작은 캐리어 2개, 배낭 2개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여행하는 동안 물건을 사지 않길 다짐했죠. 하지만 어느새 짐이 조금씩 늘더니 매번 공항에서 오버 차지로 고생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못 버리는 병이 있습니다. 얼마나 심하냐면 지난 숙소에서 산 물과 음식까지 전부 옮기고 다녔어요. 그래서 다음 숙소에 도착해 가지고 온 물과 음식을 꺼내면 괜한 뿌듯함을 느꼈는데 이게 쌓이다 보니 숙소를 옮기는 날에는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뻗었습니다.
여행 6개월 차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2주간 우리 여행에 합류하셨는데 짐의 무게를 보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리고 제발 물건을 버리거나 한국으로 보내자고 하셨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아무 조치를 안 취할 수 없어 캐리어를 열고 무엇을 뺄지 고민했습니다.
다 어딘가 쓸 데가 있어서 애초에 갖고 온 것이라 처음에는 하나도 뺄 게 안 보였지만, 아예 가방 개수를 줄이자는 마음으로 보니 뺄게 하나 두 개씩 보였습니다. 여분의 로션, 츄리닝, 심지어 손전등까지 작지만 한 개씩 빼다 보니 가방이 조금씩 가벼워졌어요.
한결 가벼워진 캐리어로 지금은 훨씬 편하게 도시 간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이거 빼면 안 될 텐데 했던 게 내 욕심의 무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보내버린 짐들 없이도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고 심지어 무엇을 보냈는지도 기억도 잘 안 나네요.
여행의 기본은 정해진 예산으로 최대한 누리는 것입니다. 특히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돈에 더욱 민감해지는데요. 우리는 애초에 길게 여행을 하다 보니 인생 처음으로 가계부 앱을 다운받아서 지출을 칼같이 관리하고 매달 엑셀로 예상 지출과 실제 지출을 비교 분석하곤 합니다.
마트에 가면 최대한 저렴한 PB 상품을 구입하려고 하고 물가를 따져서 다음 나라가 더 쌀 것이면 참았다가 사기도 하는데요. (물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구입합니다)
그러면서 느낀 게 더 싼 물건을 사거나 더 저렴하게 식사한다고 내 삶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행 특성상 소비보다 경험에 더 치중 두고 있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아낀 예산으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거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더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지출은 습관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5만 원을 쓰는 게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하루 3만 원을 쓰는 것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계기로 매일 3만 원씩 쓰면 그 부족함은 점점 무뎌지겠죠. 물론 택시를 타면 더 편하겠지만 저희는 애초에 대중교통으로 여러 번 환승하면서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 번씩 몸이 힘들 때 택시를 타면 돈의 힘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매일같이 bulk로 더 싸게 대중교통 티켓을 사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의 comfort zone에 살다 보면 기존의 습관도 있다 보니 소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줄일 계기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여행을 한다는 명분으로 예산을 꽉 줄여보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 습관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마트에서 비누 하나를 살 때도 매번 사던 거 말고 금액을 하나씩 비교해 보고 사려고요. 이번 여행 때문에 많은 돈을 썼지만 대신에 돈을 좀 더 귀중하게 대하는 지혜를 배운 것 같습니다.
바로 위 내용과 좀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한국에서는 내 집을 직접 가꾸니 최상의 상태로 꾸미려고 노력하죠. 청결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텐데 안타깝게도 여행하다 보면 내 기대치보다 수준이 낮은 곳을 갈 때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며칠만 지낼 테니까 참고 지내려고 하죠.
특히 에어비앤비 중 집주인과 같이 지낼 경우 집의 청결 수준을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릇은 얼마나 깨끗이 닦는지, 바닥은 청소하는지 등 그리고 느낀 바 한국처럼 집을 굉장히 청결하게 유지하는 나라는 정말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해외의 경우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바닥이 깨끗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통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해외는 빌라나 주택이 많은데 그러면 집 안에서 거미나 바퀴벌레가 나올 때도 있죠.
빌려 쓰는 입장에서 불만을 갖기도 뭐 하고, 그렇게 불만스러우면 호텔을 가야지 애초에 에어비앤비를 잡은 게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적응하는 수밖에 없죠.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니 집주인은 그 집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가는데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차피 벌레는 이 지구에 우리와 같이 서식하는 존재이며 밖에 나가면 우리가 모른 채 밟고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흙먼지야 부지런하면 걸레로 닦아도 되고 아니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 몸에 그렇게 해로울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 우리는 너무 완벽한 환경에 살려고 필요 이상으로 민감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자극이 될 때도 있지만 스스로 스트레스가 될 때도 많죠.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대응이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분별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내려놓을 줄도 아는 방법을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 극초반에 아내가 미국 ESTA 비자를 신청하지 않아서 포틀랜드행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제가 미국 시민권자라서 비자에 대해 전혀 몰라 아내에게 미국은 무비자 여행이라고 말한 게 실책이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공항에 4시간이나 일찍 도착하고 여유 부리다가 캐나다를 경유하는 바람에 캐나다 eTA 비자를 신청하는 데 시간을 쓰고, 마지막 목적지인 미국 ESTA 비자는 발급받는 데 너무 오래 걸려 비행기를 보기 좋게 놓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시기라 비행기 티켓이 한 사람당 80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두 명 합쳐서 160만 원이니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돈을 잃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돈 보다 멍청한 실수를 한 제 자신이 가장 원망스러웠어요. 아내는 항공사 측의 통보(“ESTA 비자 없으시면 미국 못 가요”)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 당시 긴 여행을 응원한다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함께 해주셨는데,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니 담담하게 이 상황을 풀어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시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가장 쉬운 거다"라고 하셨어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다음날에도 티켓은 있었습니다. 물론 날린 160만 원은 쓰라리지만 그렇다고 이 여행을 여기서 그만둘 것도 아니고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껏 인천 공항을 군데군데 구경하기도 하고 캡슐호텔도 경험했습니다. 다행히 제 부모님도 비행기를 놓친 부분에 대해 웃으면서 넘기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도 그동안 온갖 다양한 경험을 하시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하셨나 봅니다.
그 이후 다행히도 그때보다 더 큰돈을 잃은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직 서투른 여행 스킬로 좋지 않은 환율로 환전하거나 더 비싼 티켓을 사는 등 아쉬운 적이 있었고, 미국 여권 갱신 과정에서 여권이 분실되어 $160에 임시여권을 발급받아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래도 돈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