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진심', '진정성', '신념'같은 단어들이 본래의 무게를 잃고 가볍게 부유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기 위해 이런 말을 꺼내든다. 이 말의 뻔한 뜻보다는 뒤에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진심'이란 건 존재 유무도 의문이지만
허무로 흩어질 우려가 있는 말에
수식어로 헐겁게 부착한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나의 고결한 선의가
산화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용도로 쓴다.
'진정성'이란 말은
텍스트보다 콘텍스트,
문장 하나보다는 태도에서
주로 읽어낸다.
울분을 토하면,
무릎이라도 꿇으면,
힘 주어 분명하게 확언하면
진정성이란 게 어딘가에서
마법처럼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신념'은 대체로 아름답게 포장된다.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 선택은
결국 옳다고, 당신이 무조건 옳다고
영악하게 감싸주는 말이 잘 팔리는 시대다.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신념을 품었다는 그 자는 누구인지
우선 궁금해 해야 한다.
진심이란 수식은
진심이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진정성이란 빳빳한 옷을
비틀어진 몸에 걸치는 건 위험하다.
신념은 제대로,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자가 품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 말들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