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 어느 6월

by 책방삼촌

1년 만에 다시 맞이한 진료일. 예후가 아주 나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받은 의뢰서를 들고 급히 찾았던 종합병원에서의 첫 기억은 벌써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갖 검사 이후 몇 주 간격으로 끔찍한 주사를 십여 차례 맞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개선을 위한 치료는 어렵고, 이제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은 한쪽이라도 잘 지켜야 한다는 당부였다. 이는 사실상 치료 불가 선언이자,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과연 남은 쪽이 얼마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바람에 늦은 나이에 마음먹고 시작했던 험난한 여정의 공부를 다행히(?) 접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양서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이제 삶에 깊숙이 개입하며 늘어난 몇 대의 전자 디바이스, 그리고 수백 권 꽂혀 있는 책과 함께하면서도 묵묵히 버텨 주고 있는 나의 기능에, 이 정도면 충분히 고맙다는 마음이다.


불행 덕분(?)에 '본다는 것'의 의미를 여러 책을 통해 배우고, 나름의 생각도 정리해 보는 귀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아니 최소한 무지몽매한 나는 어쩔 도리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고서야 비로소 변화를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진정한 철학을 얻는 뒤집힌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감' 중에 어떤 감각 하나를 잃는다면 무엇이 없을 때 가장 두려울 것 같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질문에 혹 함정이 있지는 않은지 눈치를 살피면서도,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시각'이라고 답했다.


이전이라면 나 또한 당연히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사물에 부딪혀 튕겨 나온 가시광선 범위 이내의 빛이 시신경을 거쳐 전기 신호로 전달된 후 뇌가 이를 해석해 내는 과정, 그것을 우리는 '본다'라고 표현한다.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영원한 암흑에 빠진다는 의미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눈 뜨면 늘 보던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공포는 실로 거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다'는 행위가 결국 뇌에서 생성해 내는 정보이며,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형태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결론은 상실로 인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촉각'이라는 것까지 포괄한다. 촉각을 잃으면 곧바로 생존을 위협받는다.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씹을 수도, 삼킬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여기저기 아프긴 해도 나는 아직 걷고 만지고 씹어 먹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자세로 앉아 같은 톤으로 진료하던 의사 선생님에 따르면, 나는 당분간 큰 위험은 없는 모양이다. 물론 작년보다 나빠지진 않았다는 소견일 뿐이지만. 동네 병원을 다니다가 혹 상태가 안 좋아지면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9년간 이어졌던 대학병원 통원 진료의 종료를 통보받았다. 그 작은 선물은 소견서와 진료 기록 사본으로 표현되었다. 특별한 감정 교환 없이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진료실을 나섰다.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설 때면, 나는 마치 얼마간의 '시간 연장'을 허락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절차처럼, 밥을 먹는다.


병원 내 푸드코트에 들렀다. 아직 값을 크게 올리지 않은 차림표가 어쩐지 편안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이런 장면에 왠지 모르게 어울리는, 순한 국밥을 골랐다.


산동제의 약효가 아직 남아, 눈앞의 세상이 사진보다 뿌연 상태로 보였지만, 나는 천천히 밥을 삼켰다. 언젠가 어느 병원에서 지금과는 또 다른 형태의 통보를 받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이처럼 평범한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겠지, 상상하면서 부디 그날도 큰 동요 없이 담담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부탁한다.


당장 다음 달에는 또 다른 종합병원, 다른 과에서 정기 진료를 받아야 한다. 켜져 있는 여러 스위치 가운데 어떤 녀석이 먼저 툭 내려갈지 알 수 없는 법칙 안에 삶이 있다. 오늘 하루가 더욱 귀한 이유.


언젠가 듣게 될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오늘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끝은 이미 확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저 그 시점을 모를 뿐이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고, 어떤 일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곁에 있는 이들을 더욱 귀하게 대하고,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찾아 살아가자 다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