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씩 벌 거야

아이의 꿈

by 책방삼촌

아이의 2억 원, 그리고 망각


아이들은 어른의 예상을 뛰어넘는 순수함과 기발함으로 삶에 뜻밖의 웃음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된 아이와 그런 순간이 있었다. 가끔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설파하곤 했던 때다. 아마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의 이야기 등을 그 무렵 읽으며 꿈을 키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주로 식탁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길게 나누는 우리 가족의 습관도 현이의 조잘조잘 동그랗게 퍼져가는 이야기 덕분에 생겨났다.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제 친구가 그러는데......." 같은 이야기들. 우리는 많이 웃었고, 격려했으며, 때로는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언가를 만나고, 섞이고, 헤어지고, 기억하는 과정을 겪겠구나 싶어 아이가 신통해 보였다.



어느 날은 돈 버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난데없는 모습이 자못 신기했다. 돈을 줘도 그걸로 뭘 하는지 모르는 아이. 고맙습니다, 하고선 아무 데나 던져놓고 마는 아이. 지폐의 색깔이 무엇이든 구별 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나는 이담에 훌륭한 일 해서 돈도 많이 벌 거야."

"응? 뭘 하고 싶은 건데?"

"음...... 그건 비밀이지만 암튼 많이 벌 거예요."

"오, 그렇구나. 얼마나 많이 벌 건데요?"

"2억 원씩 벌 거예요!!"

"헉! 대단하네? 그럼 한 달에 얼마나 버는 거지?"


산수, 특히 암산에 약하던 현이에게는 무리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현이의 대답은 더 놀라웠는데 암산이 안 되니 둘러댄 것일까.

"아니, 한 달에 2억 원씩 벌 건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우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하고 싶어?"

"나 사고 싶은 거 사고 나머진 엄마 아빠 줄 거야. 잘 키워줬으니까."


그랬더니 아이 엄마가 말한다.

"근데 옷 입혀주고, 머리 빗겨주고, 씻기고, 밥 먹이고 하는 건 주로 엄마가 다 했으니까 엄마한테 다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아빠도 줘야 하는데......"

"왜에? 그냥 고생한 엄마 다 줘."

"그러면 아빠가 서운할 텐데...... 아빠, 괜찮아?"


인상이 다소 굳으며 내게 물어오는 현이.

"음, 아빠는 그때도 돈 벌고 있을 거니까 꼭 안 받아도 될 거 같은데? 다른 곳에 주는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 주는 거니까 그리 서운하진 않을 거야."

"진짜... 괜찮아?"

"그럼, 아빠는 괜찮아."

"......"


느닷없이 현이는 구슬 같은 눈물을 후드득 하염없이 떨어트린다. 이런 당황스러운 결과를 낳을 줄이야. 그냥 좀 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저 가볍게 웃으며 아이를 달래는데, 내 마음속에는 은밀한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월 2억 원을 다 가져간 엄마보다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왜냐고? 어차피 그 2억은 현실에 없는 상태가 아닌가. '외면의 대상'이 아니라는 기쁨이 이리도 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놀랐다.


세월이 한참 지나 현이에게 당시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게 아빠에게도 주고 싶었어?"

"어? 기억이 안 나는데?"


아, 현이는 그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 그게 다행이다. 어린 너의 말이 아빠에게 세상 버텨낼 약이 되고, 기억보다 값진 망각이 너를 키웠구나.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저장한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 각색하며 이야기를 쌓아 가겠지.


현아, 혹시 말이다. 그 2억 벌게 되면 이젠 아빠에게도 좀 떼어주라.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