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아버지의 숙직실

by 책방삼촌


어떤 음식은 특정한 기억과 시공간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내게는 짜장면도 그중 하나다. 어린 시절 치열했던 '짜장과 짬뽕'의 갈등에서부터 아버지의 숙직실, 친구들과의 유쾌한 한때까지, 짜장면은 내 삶의 기억들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한때 나를 괴롭히던 짜장과 짬뽕의 치열한 갈등은 별다른 협정 없이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이제는 짬뽕을 거의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매운 것을 못 먹게 되는 나이 탓도 있지만, 매운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광적인 집착이 짬뽕 본연의 맛을 변하게 했다고 나는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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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은 내 기준으로 시원하고 푸짐한 음식이었지, 매운 음식이 아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이미 짜장면은 곱빼기를 먹었지만, 짬뽕 곱빼기를 먹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더 걸렸다. 해산물이 잔뜩 얹힌 개운하고 깊은 맛의 짬뽕은 생각만으로도 호화로운 음식이었는데, 그래도 막상 몇 입 먹고 나면 '아, 오늘은 짜장이었나...' 하는 유사 반성의 감정이 찾아오곤 했다. (고기 들어간 짬뽕은 그 시절엔 구경도 못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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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나선 짬짜면이 등장했을 때는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한때 번성하던 짬짜면은 짜장과 짬뽕의 유서 깊은 갈등을 정리할 해결책으로서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고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오늘 이게 아닌가... 대체 뭘 먹지?' 하는 첨예한 갈등이야말로 극대화된 짜장과 짬뽕 맛의 일부였던 것이다. 다음엔 짬뽕 먹어야겠다, 하는 다짐이 바로 이들의 진정한 맛이었다.




어느 중국집이 짜장면을 많이 주는가 별점 평가하던 가난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짜장라면이 더 맛있지 않냐"는 녀석에게 "짜장면과 짜장라면은 아예 다른 장르"라며 면박을 주던 때도 있었다.


잠시 함께 살았던 후배 녀석은 1990년대 당시 너구리를 끓여 먹고 남은 국물에 다시 짜파게티를 넣고 끓이면 그 맛이 황홀하다며 형도 같이 먹어 보자고 강력히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아까운 국물에 짜장 수프를 집어넣는 만행은 용납할 수도 없고, 그 짠 것을 대체 어떻게 먹냐며 단칼에 거절해서 애석하게도 그 유명한 짜파구리를 한참 앞서 즐길 기회를 놓쳤다. 내가 얼리 어답터와 거리가 먼 것은 전자제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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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위의 진정한 토핑은 오이냐, 완두콩이냐, 삶은 달걀이냐, 보기 드문 계란 프라이냐 하는 헛웃음 나는 논쟁도 벌이곤 했다. 아무래도 자주 배가 고프던 내게는 상큼한 오이나 고소한 완두콩도 좋지만, 포만감에 보탬이 되는 계란이 압도적인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계란을 얹어주는 집은 거의 보기 힘들었고, 주는 대로 먹으면 그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당구장에서 시켜 먹는 짜장면이 제일 맛있었다고 얘기하고, 나 역시 그에 동의한다. 자욱하던 분가루나 담배 연기가 섞여서 맛을 강화한 건 아닐 테고, 아마도 샷을 하는 중간중간 쫓기듯 한 입씩 감질나게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 역시 진화의 흔적으로 추정한다. 아직 끊지 말고 먹을 수 있을 때 더 먹어 두라고, 최상급의 단기 미각 기억으로 자극하는 것이 아니겠나. 이젠 당구장을 거의 가지 않으니 자연스레 당구장 짜장면도 먹을 일이 없어졌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짜장면은 사실 따로 있다.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회사의 당번제 숙직이 보편적이었던 시절이다. 아버지의 숙직 날이 주말에 걸쳐지면, 온 가족이 버스나 택시를 타고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아버지의 회사로 향했다. 요즘으로 치면 원룸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숙직실 방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배달 온 짜장면을 함께 먹던 그 시간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만찬이었다. 다회용 초록 땡땡이 무늬의 그릇과 신문지 식탁을 둘러싼 책상, 소파와 책장 등이 허겁지겁 짜장면을 삼키는 내 등을 천천히 먹으라며 두드려 주었다. 내 선택은 주로 짜장 곱빼기였고, 엄마의 짬뽕까지 아주 조금 얻어먹는 눈물겨운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에 준하는 만큼의 짜장을 막내에게 덜어줘야만 했으니, 혹여 양으로 손해 볼까 매우 예리하게 날을 세운 삼각 거래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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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직실을 향해 걸어가던 날의 전봇대와 나무 미닫이문 달린 점방 등 정겹던 풍경이 만들어내던 시각적 향기, 나무젓가락을 '착' 분리하던 순간의 조바심과 떨림, 욕심껏 한 움큼 '후루룩' 밀어 넣었다가 팔 할을 그릇에 다시 '툭' 떨굴 때 입술을 문지르고 추락하던 면발의 촉감까지, 그 모든 생생한 기억이 아직 내겐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구장 짜장면보다는 역시 숙직실 짜장면이 우위에 있다. '당짜'는 맘먹으면 그래도 아직 불가능은 아니지만, '숙짜'는 다시는 맛볼 수 없기 때문일까.




이제 짜장면은 어지간해선 손대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분류당했다. 물론 짜장면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관리에 실패한 내 몸이 만든 사태일 뿐. 최근 들어 좋아하게 된 고소한 맛의 유니짜장은 아주 가끔 먹을 기회가 있지만, 정작 맛있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또 다른 현실이다.


그렇다. 이건 참 심각한 사태다. 짜장면은 내게 너무나 많은 기억과 추억을 남긴 음식인 것을. 과연 나는 짜장면을 위해 몸 관리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짜장면을 완전히 포기할 것인가. 어느 쪽을 택해도 그 모양새가 고급스럽지는 않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