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그 일회성 능력

by 책방삼촌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물에 뜨는 법을 아무리 듣고 배워도, 내 몸이 물 위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쉽게 가르쳐 주겠다며 나를 물속으로 이끌던 물귀신 같은 친구들의 손길도, 결국 물속에서 우웩거리고 쿨럭대는 한심한 내 모습 앞에서 좌절되고야 말았다. 답답함과 난감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녀석들은 결국 '자기네들도 놀아야 한다'며 내게 튜브를 내밀었다.


'쥬부'만 끼고 헤엄치면 친구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냈지만, 맨몸이 되면 여지없이 꼬르륵 가라앉았다. 그 병적인 증상을 친구들은 '맥주병'이라고 불렀다. 요즘도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


몸이 더 자라면서 나는 자연스레 수영장을 회피하게 되었다. 다 큰 어른이 튜브를 끼고 놀 수는 없지 않겠나. 내가 아무리 상관없다고 해도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영영 수영과 절연한 채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가족의 물놀이는 육아에 있어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다. 나의 '맥주병' 시대와 달리,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루를 꼬박 물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 온갖 놀이 시설과 예쁜 조경이 가득했고, 먹거리 걱정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물놀이를 진정으로 즐거워했다.


유수풀, 파도풀 등에서는 어른들도 구명조끼를 빌려 입고 노는 것이 자연스러워, 내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맥주병 시절의 기억을 뭉개며 실컷 물놀이를 즐기고 나면, 혼자 조용히 사우나까지 하고 나올 수 있으니 더없이 개운했다. 덕분에 워터파크를 비교적 자주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이가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루 다녀오더니, 구명조끼 없이도 물에 둥둥 뜨기 시작했다. 역시 친구의 존재는 용기가 되는 법이었다.


평소 다른 상황에서는 엄마를 주로 찾지만, 유독 심심하거나 다이내믹하게 놀고 싶을 때면 "아빠! 아빠아!" 하고 나를 불렀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내 모습에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힘을 뺀 채 맨몸을 물속으로 밀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뜨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 내가 맥주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니!' 마구잡이로 헤엄을 치며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물놀이를 이어갔다.


어느 날은 현이가 겁도 없이 물속에서 내 등 위에 올라타려고 시도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할 겨를도 없이, 등에 찰싹 붙어 엎드린 아이를 그대로 얹은 채 헤엄을 쳤다. 얼굴을 물 밖으로 뺄 수가 없어 자연스레 잠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다... 마치 등에 토끼를 업고 잠수하는 거북이가 된 듯했다. 계속하다 보니 잠수 능력도 점점 좋아졌다. 우리의 물놀이는 내게 커리큘럼 없는 특별한 훈련인 셈이었다.


워터파크보다 훨씬 더 넓고 깊고 두려운 세계, 바로 바다였다. 현이는 아직 바다에서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얕은 물에서 겨우 다리를 적시다가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마치 매미처럼 내게 매달려 찰싹 붙어 있었다. '대체 아빠를 뭘 믿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휴가철이 막 지난 8월 중순의 외옹치 해변. 현이는 이날도 물에만 들어가면 여지없이 매미가 되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바다에서도 물놀이 한 번쯤은 해보자!' 하는 각오를 다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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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는 튜브를 끼고 물속으로 들어가며 나를 끌어당겼다. 튜브에 끈을 매달아 내 허리에 묶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모양이 우스웠는지 현이는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해달라고 먼저 조르고서는 막상 그 모습을 우스워하는 모순적인 상황이었지만, 나는 기꺼이 희생양이 되었다.


허리에 안전(?) 끈을 묶은 채, 우리는 튜브 하나로 너른 바다를 누볐다. "이제 나도 아빠랑 해수욕해 본 아이야!" 현이의 그 한마디에 '그렇구나, 그럼 됐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 물놀이가 되었다.


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 지금껏 워터파크도, 해수욕도 더 이상 원치 않았다. 거북이는 등을 내줄 일이 없어졌고, 물속에 잠겨 숨을 참을 일도 없어졌다.


그때 생겼던 어설픈 수영 능력은, 오롯이 육아의 시간을 위해 잠시 부여받았던 일회성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시절 잠시 물에 떠 있었고, 지금도 그 기억만으로 오래도록 들뜬다.


아이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눈망울이 내게 부력을 주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 들뜬 마음이 나를 띄웠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초보 아빠의 육아를 마치며, 나의 초짜 헤엄도 자연스레 끝이 났다. 문득 그리워 돌아보면, 현이와 함께 첨벙대던 물살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